<장편소설> 녹색 피라미드 (24회)

등록 2005.01.19 10:53수정 2005.01.1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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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은 서쪽의 낙조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비행기가 선회함에 따라 심양의 불빛들이 비스듬히 꼬리를 끌며 미끄러졌고, 이윽고 시야에 가까이 밀려왔다. 사내는 독일에서 있었던 일들이 한낱 백일몽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를 나서자 그의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 한쪽에 양복을 입고 서 있는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가자말자 한 줄로 서 있는 그들의 무릎을 구두 끝으로 세게 걷어찼다.


"어이쿠."
하며 부하들이 소리를 지르다가 얼른 자세를 바로 했다.

"어리석은 놈들. 그런 일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나!"

그중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한 작자가 앞으로 나서면서 고개를 숙였다.

"면목 없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바로 우리 중국의 운명이 달려 있는 문제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한국 경찰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금, 그 자는 어디에 있나?"


그러자 다른 부하가 앞으로 나섰다.
"방금 택시 회사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택시 회사라… 그렇다면…."

문득 사내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를 뒤쫓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그쪽으로 가자. 이번 일은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사내는 얼른 차에 올라탔다. 차는 낡은 벽돌로 만들어진 심양공항을 나서 도심으로 향했다. 그러자 사내가 기사를 향해 말했다.

"무순으로 가자. 그들은 무순의 장당에 갈 것이다."

뒷좌석에 올라탄 사내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가늘게 시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黃河入海流 欲窮千理目 更上一層樓(바다로 흘러가는 황허의 물줄기를 보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

당대(唐代)의 시인 왕지환(王之渙)의 이 시구를 몇 번이나 중얼거리며 사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15년 전의 그날의 천천히 떠올리고 있었다.

1987년. 당시 사내는 티베트에 가 있었다. 조직의 저지른 일을 혼자서 뒤집어 쓰고는 수배를 받고 있다가 티베트로 몸을 피했던 것이다. 처음에 사내는 티베트의 높은 고도에 적응을 하지 못해 고생을 했다. 고산병을 얻어 병원에 입원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특유의 강인한 체력과 인내를 바탕으로 거기서도 조직을 구축해나갔다.

자신이 속한 조직은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 그물처럼 뻗어 있었다. 하지만 유독 티베트에만 그 조직망이 없었다. 그걸 사내가 구축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오래지 않아 티베트를 완전히 장악하여 이 지역 최고 권력자인 티베트 공산당 서기와도 안면을 터는 사이가 되었다.

다음해인 89년 3월 수많은 티베트인 들이 라싸 인민광장에 몰려들고 있었다. 티베트 국기인 '설산사자기(雪山獅子旗)'를 든 군중들은 "달라이라마가 돌아와 티베트를 통치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외쳤다. 중국의 티베트 강점에 반발한 무장 봉기 30주년을 앞두고 고조되던 긴장이 마침내 폭발한 것이었다.

독립요구 시위는 사내가 티베트로 온 87년부터 간헐적으로 벌어졌다. 그러다 베이징에 사실상 연금 상태로 있다 89년 초 티베트로 돌아온 제10대 판첸라마가 51살의 나이로 1월28일 입적하자 심각해졌다. 티베트인들 사이에는 "독립요구 발언을 하던 판첸라마가 암살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퍼져나갔다.

티베트에 흉흉한 소문이 돌며 대규모 충돌이 있을 거라는 소식이 나돌았다. 그때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선 인물이 바로 그분이었다. 그분은 당시 티베트의 최고 책임자를 맡고 있었다.

그분은 1985년부터 1988년까지 구이저우의 당서기를 지냈다. 그러나 구이저우는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곳으로 당서기라고 하지만 힘은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1989년 1월 가족들을 베이징 두고 티베트에 단신 부임했던 그분은 고산병을 얻어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그 전의 티베트 당서기는 리(黎)족 출신 소수민족이었다. 그는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티베트 당서기 직에서 물러났었다. 자칫 하면 그분도 쫓겨 나야할 판이었다. 그런 와중에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것이다. 시위가 발생하자 그분은 사내를 직접 찾아왔다.

"이번 시위만 잘 진압해 준다면 자네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걸세."

사내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즉각 자신이 구축한 조직을 모두 가동시켰다. 그 조직들을 시위대 사이에 풀어놓은 것이다. 시위대 속에 들어간 조직은 곤봉과 각목으로 무차별 그들을 진압시켰다. 또한 사람들이 모이려는 것을 사전에 감지하고 모임을 흩어내기도 했다.

3월5일 흥분한 군중들은 중국 무장경찰과 충돌했다. 20여대의 소방차와 경찰차가 불에 탔다. 하지만 시위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이에 경찰과 군이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시위대를 향해 화염방사기와 기관총을 난사했다. 무장경찰들은 거리를 휩쓸며 시위자들을 수색했다.

그 수색에 사내의 조직이 많은 협조를 했다. 시위를 주동한 사람들을 잡아내고, 그들의 은신처를 급습했다. 잡혀 많은 사람들은 진압 곤봉에 맞아죽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시위는 완전하게 진압되었고, 티베트의 라싸 거리에는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영리하지만 과단성이 없다"는 꼬리가 따라붙었던 그분은 티베트 사태의 처리 뒤 최고지도자로부터 "그는 원칙문제에 있어 입장이 분명하다. 절대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음해 그분은 진급해 베이징으로 향했다.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은 몇 년 뒤 베이징에서였다. 그분은 만나자말자 이번에도 어떤 부탁을 해왔다. 이번은 티베트에서의 그 일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그분이 강조를 했다. 자신은 이 일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도 되어 있었다. 자신의 일은 곧 이 중국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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