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녹색 피라미드 (23회)

등록 2005.01.18 10:35수정 2005.01.1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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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택시는 특이하게도 운전석과 손님이 타는 좌석 사이에 투명한 플라스틱 막이 쳐져 있었다. 그 막 사이로 돈을 주고받는 구멍이 작게 뚫려 있는 게 보였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미국 택시를 보는 것 같았다.

김 경장이 채유정을 돌아보며 물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겁니까?"


"류허우성 교수가 안 박사님과 함께 갔던 곳을 알아내려고요."

"그 둘이 갔던 곳을 어떻게 안다 말입니까?"

"잠자코 절 따라와 보세요."

택시는 북릉 공원을 지나 918기념비를 거쳐 시내 외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택시 회사였다. 회사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주차장에 대어 있는 택시의 숫자만 해도 족히 수백 대는 넘어 보였다.

택시에 내려 회사 건물로 걸어가면서 채유정이 말을 건넸다.
"류허우성 교수는 자동차가 없어요. 안 박사님과 함께 어디로 갔다면 택시를 이용한 게 분명해요. 여기 교통수단은 대부분 택시를 이용하거든요."


"그렇다고 여기 택시 회사에 온다고 해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는 건 아니잖소?"

"김 경장님의 힘만 조금 빌리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지도 모르죠."


그녀는 눈을 찡긋 해 보이며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그녀는 곧바로 건물 2층에 있는 사장실로 향했다. 사장실 앞의 사무실에서 비서로 보이는 직원이 둘을 맞이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채유정이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우린 국가 안전국 정보과에서 나왔습니다."

그러자 직원의 표정이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국가 안전국에서 무슨 일로……."

채유정은 직원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곧장 사장실로 들어갔다. 안에서 바깥의 이야기를 들었던지 사장이 선 자세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그는 두 사람의 모습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공안국에서 나왔다는 증명서라도 보여 주시죠?"

두 사람이 사복을 입고 와 의심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채유정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 사람이 아직 우리를 몰라보는 군. 우린 국가 안전국 정보과라 말이오. 은밀히 내사 하는 정보과."

옆에 있던 김 경장도 채유정을 도왔다. 그는 뒷주머니에 찬 수갑을 슬쩍 앞으로 내보였다. 그러자 사장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둘은 책상 앞에 놓인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채유정이 다리를 꼰 채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보였다.

"혹시 이 사람을 아시는가요?"

사장이 잠시 사진을 쳐다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글쎄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김 경장이 류허우성 교수의 사진을 건넸다.
"이 사람도 좀 봐주시죠."

사진을 받아든 사장의 눈이 커졌다.
"이 분은 류허우성 교수님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어제 밤에 살해되셨습니다."

사장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두 분은 그 범인을 잡기 위해……."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사장님이 협조를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물론이죠.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될까요?"

김 경장과 채유정 둘이 서로 돌아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진 속의 두 사람이 얼마 전 함께 택시를 타고 어딘가에 간 적이 있습니다. 우린 이 두 사람을 태운 운전기사를 찾고 있소이다."

"글쎄요. 찾을 수 있을는지……, 아시다시피 심양시내에만 해도 워낙 많은 택시가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장님께 도움을 청하는 겁니다. 죽은 류 교수는 하얼빈에 살고 있습니다. 확률적으로 보아서 그곳과 가까운 여기 회사의 택시를 탔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장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제가 찾아보도록 하죠."

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섰다. 두 사람도 함께 사장의 뒤를 따라갔다. 사장이 간 곳은 택시회사의 통신실이었다. 이 회사의 모든 택시에는 무전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회사와 각 택시 간에 무전기 통화가 가능했다. 사장은 통신실의 무전기를 잡고 감도를 확인하고는 느린 문어체로 천천히 일렀다.

"기사들 중에 며칠 전 두 노인을 함께 태운 사람이 있으면 즉시 연락 바랍니다. 두 노인의 인상 착의는……."

그렇게 자세하게 일러놓고 통신실에서 기다렸다. 그러자 잠시 후 무전이 하나 날아왔다. 며칠 전 노인을 태웠다는 기사가 응답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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