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치즈는 과연 안전할까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등록 2005.01.20 09:38수정 2005.01.2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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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을 파라’는 옛말이 있다. 대체로 한 곳에 꾸준히 있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마구 옮겨 다니는 사람을 책망할 때 사용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인내심을 보유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면 이는 현대와 같이 다변화·급변화 시대에는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딱 좋은 말이라 생각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이에 관련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줄 것이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삶의 방법서 곧 처세서라 생각한다.


지은이 스펜서 존슨 박사는 저명인사임에 틀림없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정평이 나 있는 학자이다. 단순한 진리로 인생의 핵심을 통찰해 현대인의 내면과 정신세계를 치유하는 데 천부적인 글재주와 학식을 겸비한 사람이기도 하다. 남가주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왕립외과대학에서 의학공부를 했고, 이후 미네소타 메이오클리닉(미국 최고의 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단다.

유명한 저자이지만 필자에게는 생소하다. 솔직히 처음 보는 이름이다. 우연히 들여다 본 책에서 만났다. 책의 여기저기에 씌어 있는 독자평이 현란할 정도로 많아 나의 호기심이 발동한 것 같다.

슬쩍 넘겨보니 마치 어린이용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 볼품없이 보였다. 내용을 조금씩 읽으며 빠져들자 놓을 수가 없었다. 얼마 되지 않는 분량이라 금방 읽어버리고만 꼴이 되었다.

전체는 모임·이야기·토론 등의 세 개의 장으로 나뉜다. 줄거리는 고등학교 동창모임에서 동창 중 한 사람인 마이클이 들려준 이야기로 모두가 토론을 벌이는 과정이다. 마이클 자신도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그가 사업상 큰 위기에 봉착했을 때 들었던 한 짧은 우화인 것이다.

전체 내용의 화두는 ‘변화’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편안함이 주는 유혹에 빠져버리기 일쑤다. 문제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삶에 있어 변화는 항상 존재한다는 데 있다. 우리 모두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해결책은 변화를 지혜롭게 맞이하는 것이다.


우화에는 4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두 꼬마 인간과 두 마리의 쥐이고, 각각의 이름은 허, 햄, 스니프, 스커리 등이다. 작지만 복잡한 두뇌구조를 가진 인간인 허·햄과 단순무식한 동물인 쥐 스니프·스커리 등이 펼치는 변화의 극복 유형이 무척 흥미롭다.

안주의 유혹에 빠지지만 얼마 후 C창고를 탈출하는 허, 안주의 유혹에 함몰해버린 햄, 단순하지만 감각이 뛰어난 스니프, 동작이 민첩한 스커리 등이 쏟아내는 이들만의 성격은 주시해볼 만하다. 단순한 동물인 스니프와 스커리는 변화에 잘 적응하지만 복잡한 두뇌구조를 가진 인간인 허와 햄은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이야기의 공간은 미로이다. ‘미로는 우리 각자가 바라는 것을 찾기 위해 머무르는 장소를 의미한다. 장소란 우리가 현재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지역사회나 우리 삶에 등장하는 어떤 관계일 수도 있다’고 한다. ‘미로를 찾아가는 것이 본 우화의 매력이라’고도 한다. 네 주인공은 미로 찾기를 통해 각자가 좋아하는 치즈를 찾는다.

치즈란 무엇을 의미할까는 내가 처음부터 궁금해 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얻고자 하는 직업, 인간관계, 재물, 근사한 저택, 자유, 건강, 명예, 영적인 평화, 조깅이나 골프 같은 취미활동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고 한다. 특히 여기에서 오래된 치즈란 구태의연한 생활태도나 시대에 뒤떨어진 삶의 방식이나 낡은 사업방식 등을 의미한다.

몇 번 읽고 나니 어느 순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하마터면 나도 책의 대강만 보고 양서를 놓칠 뻔했다. 양서 중 양서라고 생각한다. 아니 가방 속에 늘 있어야 할 책임에 틀림없다.

삶이 힘들고 외로우며 답답할 때 큰 힘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해도 읽을 때마다 다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항상 읽어야 할 책으로 선택해두어도 좋을 것 같다.

낡고 찌그러진 냄비 속에서 열심히 끓고 있는 라면을 요즘도 학교주변 영세식당에서 가끔 보곤 한다. 냄비를 보면 선뜻 젓가락을 집고 싶지 않지만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보면서 일단 약간 맛을 보고 나면 생각이 싹 달라진다. 모든 체면 따위를 잊게 된다.

땀인지 콧물인지 모를 무엇이 입으로 들어오는 것도 모를 정도다. 코를 훌쩍거리기도 하며 급기야는 마지막 남은 국물을 마시는 소리와 젓가락으로 낡은 냄비 바닥을 긁는 소리까지 내고 만다. 주위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다. 할 수 없다. 맛있기 때문이었다.

겉만 보고 속단했다간 평생 한 번 느낄까 말까한 짜릿한 맛 경험을 놓치게 된다. 마찬가지다. 책의 외모만 보고 외면했다간 평생의 처세술이 담긴 고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될 테니까.

아직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위가 변하길 바라는 햄처럼, C창고 주위만을 맴도는 사람은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도 나의 치즈는 과연 안전한지 살펴봐야겠다. 유통기한이 지나지는 않았는지. ‘비전공과목 강의에 불평’하기도 했던 얼마 전 일이 갑자기 바보스럽게 느껴진다. 그것이 바로 나의 치즈였군.

덧붙이는 글 |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저, 이영진 번역, (주)진명출판사, 2003. 12. 31). 값 7천원.

덧붙이는 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저, 이영진 번역, (주)진명출판사, 2003. 12. 31). 값 7천원.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진명출판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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