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 선생님, 정말 늦었습니다"

문익환 목사 11주기 기념 사진 및 유품전을 다녀와서

등록 2005.01.20 16:54수정 2005.01.2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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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통일을 보았네!"

고즈넉한 정적이 흐르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는다. 서울 시청역에 내려 그가 있는 곳까지는 고작 11분이 걸리지 않을 터. 그러나 그의 영혼의 발자취에 이끌려 11년을 돌아온 느낌이다. 그가 있는 곳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매서워 지고 전경의 눈초리는 사뭇 진지해진다. 정동의 겨울은 너무도 차다.


a 전시관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

전시관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 ⓒ 김선경

겨울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19일 오후 4시, 기자가 찾아간 곳은 ‘통일맞이문익환목사기념사업’에서 준비한 늦봄 문익환 선생님의 11주기 기념사진 및 유품전시회였다.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시립박물관을 끼고 돌면 언덕 위에 세련된 건물이 보인다. 그 곳 배재학당 건물 1층에 그의 사진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도봉도서관이었고, 13살의 나이였다.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무엇일까라는 철없는 고민에서 나에게 삶의 방향과 희망을 준 사람이 나타났다.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한 삶이 아닌 끊임없이 자신의 욕심과 사심을 없애는 사람, 그리고 많은 사람 속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사람을 만났다. 바로 그 분은 바로 문익환 목사님과 장준하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장준하 선생님의 발자취를 좇고자 다녀왔던 중국 6천리 길에서 분단된 조국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온몸으로 받은 내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가슴 속에 품어 놓았던 문익환 선생님을 찾아가게 되었다.

a 늦봄 문익환 선생님과 장준하 선생님 그림

늦봄 문익환 선생님과 장준하 선생님 그림 ⓒ 김선경

‘선생님, 정말 늦게 찾아 왔습니다.’


전시회 입구에 들어서자 문익환 선생님과 장준하 선생님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민족의 통일을 위해 평생을 싸워왔던 두 분의 모습은 가장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0.75평 독방이 전시되어 있었다. 수많은 민주화 운동 인사를 모질게 가두고 고문했던 그 좁은 공간은 통일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글들로 입혀 있었다.

a 전시관은 조용했다.

전시관은 조용했다. ⓒ 김선경

전시장은 조용했다. 선생님의 무게가 전해져 오는 까닭일까? 글자들이 함부로 입 밖으로 뱉어지지 않고 입 속에서 머물다가 뱃속으로 녹아들어 갔다. 선생님께서 받으신 상패와 훈장은 유난히도 빛이 났다. 그리고 선생님의 삶을 기록하는 것 같았다.


a 사진을 바라보는 대학생

사진을 바라보는 대학생 ⓒ 김선경

벽면에는 선생님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삶의 기록은 사진으로 남길 수 있지만 선생님 당시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선생님의 마음은 시 속에 수놓아져 사진의 기록 보다 더 깊이 있게 다가왔다. 평양 숭실학교 시절 찍은 선생님의 사진에는 윤동주 시인도 함께 하고 있었다.

a 평양숭실학교 시절, 가운데 문익환 선생, 오른쪽 윤동주 선생

평양숭실학교 시절, 가운데 문익환 선생, 오른쪽 윤동주 선생


동주야

- 늦봄 문익환

너는 스물아홉에 영원이 되고
나는 어느 새 일흔 고개에 올라섰구나
너는 분명 나보다 여섯 달 먼저 났지만
나한텐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너의 영원한 젊은 앞에서
이렇게 구질구질 늙어가는 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할 수야 있다만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너마져 늙어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

(중략)

넌 영원한 젊음으로 우리의 핏줄 속에 살아 있으면 되는 거니까
예수보다도 더 젊은 영원으로

동주야
난 결코 널 형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니



선생님의 사진에는 수많은 민중들이 있었다. 대학생, 종교인, 농민, 노동자, 빈민 이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그들의 편에 계셨다. 그리고 그 곳에는 역사가 움직이고 있었다. 역사의 흐름 앞에 당당한 모습으로 통일을 이야기하고 계셨다. 선생님은 그렇게 역사의 흐름 속에서 민중들과 함께 통일을 만들어 가고 계셨다.

a 늦봄 선생님을 기리며

늦봄 선생님을 기리며 ⓒ 김선경

전시장에서는 늦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글들이 적혀있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늦봄 문익환 선생님은 이름뿐만 아니라 사람의 가슴에 뜨거운 열정을 불타게 했다.

그것은 민족 분단을 해결하지 못한 조국의 현실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것이냐 하는 물음이었다. 사람들은 문익환 선생님을 기억하며 자신의 결심과 다짐을 되새기고 있었다.

a 늦봄 문익환 선생님을 바라보며

늦봄 문익환 선생님을 바라보며 ⓒ 김선경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살겠다’라고 말씀하셨던 장준하 선생님의 억울한 죽음이 올해로 30년을 맞이한다. ‘통일은 됐어!’라며 민족의 통일을 외쳤던 늦봄 문익환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11주년이다. 세월은 흘러도 선생님들의 정신은 겨울의 찬바람을 타고 한반도를 휘감아 돌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하고 계신다.

a 늦봄 문익환 선생님

늦봄 문익환 선생님

분단 60년의 세월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통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2005년, 우리는 하나였고 지금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www.1318virus.net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www.1318virus.net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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