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좋아하는 아이들이정은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4일이라는 시간 동안 저희는 준비한 프로그램 이외에도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계속 알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알려주면서 아이들과 친해져야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공기놀이’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놀이를 알려주며 아이들과 함께 하면 친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그러나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그런 놀이들을 알려주기란 쉽지 않았고, 게다가 수줍음이 많은 그 아이들을 함께 놀이에 이끌어 내기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왜 저희는 그 아이들의 놀이를 배우면서 우리가 고산족 아이들의 놀이문화에 동화되어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3일째 되는 날 아이들의 놀이를 함께 배우면서 그제서야 비로소 저는 아이들을 대하는데 있어서의 저의 미숙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늦은 깨달음이었죠.
잘못된 출발 전 마음가짐 … 아이들이 나를 변화시켜
비록 어린 아이들이었지만 이 곳 아이들과의 생활 속에서 저는 너무나도 많은 삶의 재산을 얻었습니다. 처음 라오스로 떠날 때, 솔직히 저는 이곳 아이들이 굉장히 불쌍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잘 먹지도, 입지도, 배우지도 못하는 이곳 아이들이 우리를 부러워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한 첫 날, 저는 그런 저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단지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의 눈으로 저희들을 바라볼 뿐이었지, 그 아이들의 눈망울에서는 저희들에 대한 동경이나 부러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문화 상대주의’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어떤 문화건 간에 모든 문화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고 존중받아야 하지, 일관된 하나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이론상으로만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을 나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깨달았고, 저는 이번 우돔싸이 고산족 아이들의 생활을 보며 그 이론을 절실히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아이들과 헤어지던 나흘째 되던 날,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앞에 두고 중얼거리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은 ‘이 언니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거지?’ 이런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며 마냥 웃고 있었지요. 저는 ‘앞으로 이 아이들에게 내가 과연 어떤 존재로 남을까?’ 라는 생각에 차마 아이들을 등지고 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와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저 역시 아직까지도 저의 질문에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제가 그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로 남길 바랬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 아이들에게서 오히려 제가 잊혀지기를 바랬던 것일까요?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가 그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로 남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오히려 제 자신을 변화시키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모두를 같은 눈높이에서 사랑하고 대하며 그들의 삶의 방식에 나를 물들이는 것. 이것이 라오스 고산족 아이들이 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정은 기자는 지난 1월 9일부터 20일까지 라오스 봉사활동 및 관광을 다녀왔습니다. 이 내용은 봉사활동을 기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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