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뗏목탐사대, 7주기 추모제 행사

23일, 인사동 놀이마당에서... 유가족 참여 및 거리행진 예정

등록 2005.01.22 12:50수정 2005.01.22 17:12
0
원고료로 응원
a 1997년 12월 3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항에 접안한 발해1300호.

1997년 12월 3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항에 접안한 발해1300호. ⓒ 김윤배

1997년 12월 3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항. 뗏목 한 척이 서서히 동해를 가르기 위해 돛을 올리고 있었다. 뗏목에는 장철수 대장(사고 당시 38세)을 비롯한 이덕영 선장(49세), 이용호 대원(35세), 임현규 대원(27세) 등 4명의 대원이 앞으로 펼쳐지게 될 거친 겨울 동해를 고즈넉히 바라보고 있었다. 뗏목의 이름은 발해1300호. 1998년은 고구려 후예 대조영이 698년 만주, 연해주 땅에 발해를 건국한지 꼭 1300년이 되는 해였다.

그로부터 24일 후. 1998년 1월 24일 자정 무렵. 발해1300호는 일본 오끼섬 근처에서 접안을 위해 닻을 내리고 정박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장에는 4~5m의 높은 파고와 강풍이 몰아치고 있어 대원들은 접안 협조를 요청했던 일본 해상보안청의 연락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새벽 7시. 지원단에게 비보가 날아왔다. 발해1300호가 전복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장철수 대장의 시신을 포함한 4명의 대원의 시신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a 장철수 대장이 직접쓴 사고직전의 항해일지. '청년에게 꿈과 지혜를 주고 싶다 '는 글귀가 눈에 띈다.

장철수 대장이 직접쓴 사고직전의 항해일지. '청년에게 꿈과 지혜를 주고 싶다 '는 글귀가 눈에 띈다. ⓒ 김윤배

시신과 함께 해안가에서 발견된 유품 속에는 '항해일지'가 있었다. 그 속에는 준비과정에서부터 시작하여 24일간의 항해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누구보다도 기록을 중시했던 장철수 대장. 항해 직전 사고로 오른손을 다쳐 여간 신경쓰지 않으면 읽기 힘든 글이었지만, 거기에는 왜 그들이 세상사람들이 비록 무모하다고 까지 혹평하더라도 찬 겨울 동해를 건널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가 담겨 있었다.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성에 위치한 상경유지 박물관의 진열실에는 '발해국(698~926)은 당 왕조에 예속되어 있었으며, 속말말갈을 주체로 건립된 지방 민족정권이다'라는 안내판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랬다. 발해는 더 이상 고구려 후손들이 주체적으로 세운 독립국가가 아닌 당나라의 일개 지방 정권으로 오늘을 맞고 있었다. 더 이상 한반도 중심의 역사에서 만주와 연해주로 우리 역사인식을 넓힌 발해가 아니었다.

발해1300호는 고민하였다. 어떻게 당당히 발해를 세울 것인가? 그들은 실증적인 증명을 택하였다. 발해가 대내외적으로 성장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던 무려 34차에 걸친 일본과의 사신교역 해상항로를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재현함으로서 우리 역사의 뒤편에서 서성거리던 발해사 연구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였다.

34차에 걸친 공식 사신왕래. 3번을 제외하고 모두 10월 중순∼2월 하순에 일본 도착시기가 집중되어 있었으며, 19차 항해부터는 12월~1월이었다. 겨울철 북서계절풍을 이용하여 일본에 건너가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것이 발해 1300호가 겨울철 동해를 건넌 이유였다. 발해사를 가장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재현하기를 원했던 발해1300호의 당연한 선택이었다.

a 발해1300호 항해도.항해일지와 교신일지를 참조로 실제 위치를 표시하였다. 그래픽은 이용호 대원의 작품이다.

발해1300호 항해도.항해일지와 교신일지를 참조로 실제 위치를 표시하였다. 그래픽은 이용호 대원의 작품이다. ⓒ 김윤배

항해일지에는 발해만 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그들이 건넌 동해와 독도가 있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도연구회를 주도적으로 창립했던 장철수 대장. 푸른독도가꾸기모임 초대회장으로서 독도에 나무심기 운동을 펼쳤던 울릉도 사람 이덕영 선장은 평소의 지론을 고스란히 뗏목에 담았다.


비록 마지막 접안과정에서 뗏목이 위험한 암초가 널린 해안가에서 사고를 당해 4명의 대원이 당당히 우리 앞에 서서 항해보고를 하지는 못하였지만, 발해의 동해해상교역항로를 실증적으로 재현한 항해였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러시아 극동대학교 전체교수회의에서는 "발해인들이 연해주에서 한반도 남부와 일본을 왕래했음을 증명해 해양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라는 이유로 장철수 대장에게 해양학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였으며, 부총장은 직접 장철수 대장의 영결식에 참가하여 고인에 대한 깊은 애도를 표명하였다.


이제 그들이 우리 곁을 떠난 지 7년.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넉넉히 노는 마당이 마련되고 있다. 발해1300호 기념사업회(사무국장 권용인) 주최로 23일 인사동 놀이마당에서 7주기 추모행사가 개최된다.

a 2004년 1월 광화문에서 열렸던 6주기 추모제. 권경업시인이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2004년 1월 광화문에서 열렸던 6주기 추모제. 권경업시인이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 김윤배

이번 추모행사에는 유가족 분들이 특별히 초청되었으며, 타악그룹 야단법석, 한국외국어대 한알 풍물패 동아리 등의 추모공연이 펼쳐진다. 자연미술작가 김기중씨가 직접 제작한 솟대가 행사장에서 참가자들을 기다린다. 행사장 주변에는 발해1300호 사진전 및 자료전시회가 동시에 열린다. 행사 후에는 참가자들과 함께 만장을 앞세우고 거리행진을 진행하면서 발해1300호 추모의 의미를 뭇사람들에게 알릴 예정이다.

사고 이후, 한국해양대 재학생 및 동문모임, 장철수 대장의 모교인 마산상고(현 용마고) 동문회, 농심마니, 통영 시민단체, 한국외국어대 동문모임, 독도수호대, 인사문화원 등이 주도하여 매년 추모행사를 진행하여 왔으며,2001년 4월에는 장철수 대장의 유고집 '바다의 노래, 땅의 노래'가 출판되기도 하였다.

발해1300호 항해에 대한 자세한 소식은 발해1300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http://www.balhae1300ho.org)

발해1300호 대원약력

▲ 좌로부터 이덕영선장,이용호대원,임현규대원,장철수대장
장철수(발해해상항로학술뗏목대탐사대 대장)

1960. 경남 통영 출생 (2월 9일, 사고당시 38세 )
1981.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 입학
1987. 한국외국어대학교 독도문제연구회 발족
1987. 울릉도-독도 뗏목탐사 참가 (한국탐험협회 주최)
1987. 1회 한국외국어대학교 독도종합영상제 개최 (11월)
1988. 독도사진전개최 (7월, 장소: 울릉농협)
1995. 21세기 바다연구소 창립 및 소장역임
1996.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해사법학과 석사과정 입학
1996. 경남신문 주최 독도와 거북선 사진전 개최(4월)
1997. 발해1300호 탐사대장
1998. 탐사도중 일본근해에서 사망
경남 통영에서 통영시민장으로 영결식
러시아 극동대학 명예 해양학 박사학위 수여

이덕영 (발해1300호 선장)

1949.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태어남 (2월 25일,사고당시 49세)
1967. 대구 경북공고 졸업
1983. 울릉산악회 11대 회장 (~1986)
1987. 울릉도-독도뗏목탐사 참가(7월,주최:한국탐험협회)
1988. 푸른독도가꾸기모임 초대회장
1993. 4H연맹 울릉도 회장
1996. 전국자연보호 봉사단 중앙회 울릉지회장
1996. 푸른국토가꾸기 운동본부 본부장
1997. 서울시 27개 구청에 구절초 3만본 기증
1997. 발해1300호 선장
1998. 발해항로 뗏목탐사 도중 사망
유족으로 아들 이병호와 딸 이한나가 있다.
부인 김임숙 씨는 교통사고로 사망하셨다. (98.8)

이용호 (촬영담당)

1963. 경남 마산에서 태어남 (12월7일,사고당시 35세)
1982. 경남 진해상고 졸업
1984. 창원대학교 미술학과 입학
1989. 경남 미술대전 공예부분 최우수상 수상
1990. 경남 미술대전 공예부분 우수상
가야 미술대전 시각공예부분 특선
전국 대학생 미술대전 은상
환경보전협회 포스터 공모전 은상
1991. 창원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한국 현대미술 대상전 입선
1993. 봉림회전(창원,마산)
1996. 15회 창원시민의 날 기념행사 총괄기획(디자인팀장)
1997. 바다의 날 기념 독도해상 선상세미너 참가
1997. 발해1300호 촬영담당
1998. 발해항로 뗏목탐사 도중 사망

임현규(통신담당)

1971. 전남 구례출생 (사고당시 27세 )
1990. 순천 효천고등학교 졸업
1990. 한국해양대학교 해운경영학과 입학
1997. 한국해양대학교 아마추어 무선국 활동
1997. 발해1300호 통신담당
1998. 탐사도중 사망
한국해양대학교 졸업 (사후)
유가족으로 아버지 임광진, 어머니 이오순, 형 임재규 씨등이 계시다.
/ 김윤배

덧붙이는 글 | 김윤배는 발해1300호 7주기 추모제 집행위원과 독도수호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동해해수순환을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윤배는 발해1300호 7주기 추모제 집행위원과 독도수호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동해해수순환을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