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막내 동생의 게임기 사기 작전

등록 2005.01.23 23:05수정 2005.01.2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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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 살 때 아침에 일어나 마루며 부엌이며 다 돌아다녔는데 엄마 아빠가 없었다. 한적한 시골 양옥집에 아침부터 엄마 아빠가 없으니 나는 슬슬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불안함이 서서히 극도로 다다를 즈음,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선미야, 일어났니? 아침에 엄마가 남동생 낳았다!"

아빠의 전화내용은 아주 짧았다. "남동생 낳았다!"라는 아빠의 상기된 목소리. 아빠는 곧 있으면 집에 갈테니 여동생이랑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하고 이내 전화를 끊었다.

1989년 10월 28일. 우리집의 금쪽같은 막내 아들은 그렇게 태어났다. 나와 열살 터울의, 아들을 낳아보겠다는 엄마, 아빠의 기대로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 동생, 막내 아들.

a 호섭이 머리 막내동생.

호섭이 머리 막내동생. ⓒ 이선미

그 막내 동생이 어느덧 고등학교 입학을 할 덩치 큰 소년이 되어 있다. 내 여동생과 나는 내 막내동생을 '돼지감자'라고 부르는데 덩치가 산만 해서 아빠보다 훨씬 큰 175cm 키에 몸무게도 심각하게 불었지만 얼굴은 어렸을 때랑 별반 다르지 않아 몸만 어른이고 얼굴은 아직도 아이다.


오늘 일기장을 뒤적거리는데, 일기장 사이에서 우연히 우리 막내동생의 어렸을 적 사진이 튀어나왔다. 춘천에 와 자취생활을 하면서 동생의 사진을 쭉 가지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보니 세월이 무상하다. 호섭이 머리에 발갛게 상기된 볼, 호돌이와 펭돌이(호랑이 인형과 펭귄인형의 이름) 친구를 데리고 살던 내 동생이 이제는 175cm의 한 덩치가 되다니.

어렸을 적부터 별 욕심이 없고 소심한 구석이 있어 행여 학교에 가서 왕따를 당하지는 않는지 노심초사하며 막내 동생을 학교에 보냈다. 막내 동생이 1학년 때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우리집은 막내동생에 대한 애틋함이 더하다. 나 또한 맏이로서 막내동생에게 그동안 해준 것이 없어 못내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고는 한다.


두 달 전, 막내동생이 메일을 보내왔다. 자기가 꼭 사고 싶은 게임기가 있으니 협조를 해달라면서 게임기를 사기 위한 계획서를 한글 파일로 무려 3장이 되는 장문으로 보내온 것이다. 나는 그 계획서를 보고는 한참 배꼽을 잡고 웃었다.

돈을 모으기 위한 동생의 노력은 이러하다.

a 호돌이와 함께

호돌이와 함께 ⓒ 이선미

"우유급식을 한다고 거짓 보고를하여 이 돈도 횡령하는 방법이 새로이 떠오르고 있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이발비와 미용실 비용의 차이를 이용한 방법도 있다. 가장 성공 확률도 높고 적어도 3000원을 매달 확보할 수 있다. 허나 머리모양이 심하게 망가진다는 치명적 단점이 존재하므로 실행하기는 가장 어려운 계획일 듯하다."

"-11월의 작전 [공부하는척]-

이 작전이 전개되면서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험을 잘 봐야 할 것이다. 공부하는 척이 가장 좋을 듯하다. 이 방법이 부모님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다. 아니면 아버지께 '안전 운전 하세요'와 같은 말로 기분을 업 시키도록 하자."


물론 내 동생은 소심해서 우유 급식 돈을 횡령하지 못한다. 결국 미용실에 간다고 하고 3000원 싼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한번 깎은 것이 전부였다. 그 후 그동안 모아 놓았던 장난감 로봇을 학교 친구 동생들에게 여러 개 팔아 3만원을 모았다.

동생이 돈에 집착을 보이고 자기 힘으로 모아 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른들이 돈을 줘도 그대로 엄마, 아빠에게 상납하고는 별 이야기 안 하던 막내 동생이 자기 힘으로 돈을 모아 보겠단다.

물론 게임기를 사겠다는 것이지만 그런 집념이 내 동생에게 생겼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중학교 사춘기 시절도 있는 듯 없는 듯 무기력하게 지내온 동생이, 학원비가 없어 학원도 끊고 집에서 공부를 하다가 스스로 낙담해 버린 동생이,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도 생기고 공부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동생은 그렇게 돈 십만원을 모았다. 그러나 그 비싼 게임기는 20만원대였다. 동생의 노력은 알지만 우리 집은 사 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동생이 낙담할까봐 괜히 속상했다. 물론 게임기 하나가 뭐 대수냐 싶지만, 동생이 자신이 노력해서 갖고 싶은 것을 갖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동생은 부모님께, 두 누나에게 게임기 살 돈을 달라고 떼쓰지 않았다.

a 막내동생이 그림판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막내동생이 그림판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 이선미

그런데 최근 우연치 않게 모 인터넷 통신을 신청하면 사은품으로 그 게임기를 반 값에 준다는 광고를 보게 됐다. 이사를 하고 10만원짜리 중고 컴퓨터 본체를 사서 인터넷을 하게 된 나는 별 고민없이 그 인터넷 통신을 신청했다. 상업성이 다분한 사은품이고 인터넷 사용료가 조금 비싸기는 했지만 인터넷도 하고, 동생이 원하는 게임기도 얻고 일석이조였다.

조금 있으면 그 게임기가 고향집에 도착한다. 내 막내 동생은 한창 들떠 있다. 동생이 들 떠 있으니 나도 기분이 좋다. 내 동생이 질풍노도의 고등학교 시절을 무사히 잘 마쳐야 할텐데…. 우리 순박한 돼지감자에게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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