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들춰 메고 오르내린 백아산 마당바위

아직도 허벅지 풀리지 않은, 험난하고 특별한 산행

등록 2005.01.25 10:21수정 2005.01.2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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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된 표정의 아내와 두 아이가 백아산 마당바위에 서 있다. 여기까지 오르는 데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내려가는 길은 얼마나 막막했는지 모른다.
상기된 표정의 아내와 두 아이가 백아산 마당바위에 서 있다. 여기까지 오르는 데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내려가는 길은 얼마나 막막했는지 모른다.김규환
아내는 지난 연말부터 주문하는 게 꽤 늘었다. 올해 들어서는 더 심해졌다. 얼마나 남편이 말을 듣지 않으면 그럴까. 여자 이야기 들어서 손해 본 적 없다는데 고쳐서 사람 되려면 당당 멀었단 말인가.

담배를 끊어라. 술을 적당히 마셔라. 12시 이전에는 귀가하라. 운동을 하라. 매주 산에 가자. 음식을 전부 당신이 하라. 차를 타지 말고 걷자….


몸에도 좋은 이런 말이 잦아지자 가끔은 잔소리로 들릴 때도 있다. 아내 말을 곧이곧대로 실천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건 확실하다. ‘갑자기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는 말도 있지만 바뀌긴 바뀌어야 내침을 당하지 않고 건강하게 함께 잘 살 수 있을 게 아닌가.

올해 들어 유일하게 지킨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건 산행 약속이다. 아이들 둘이 있으니 정상을 밟는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산을 찍고 오는 게 목표지만 2주 전 청계산에 오르며 시험가동을 했다.

시골에 맡긴 아이들을 찾으러 내려가면서 “산에 꼭 오르자”고 누차 조른다. 하는 수 없이 해강이와 솔강이, 두 조카 녀석, 형님과 함께 집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솔강이는 세 사람이 업고 올랐다. 어서 다리가 튼튼해지길 바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솔강이는 세 사람이 업고 올랐다. 어서 다리가 튼튼해지길 바란다.김규환
백아산 마당바위로 오르는 길이 세 곳이 있는데 우리는 늘 다니던 북사면 송단 목장 쪽으로 길을 잡았다. 차로 오를 수 있는 데까지 가서 솔강이는 아내가, 해강이는 내가 맡아 물과 먹을 것을 챙겨 소나무 밭에 접어들었다.

초입에 들어서자 며칠 전 호남에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았다. 아무도 오르지 않았다. 평소 어른들 걸음으로 40분이면 오를 수 있는 가장 편한 코스여서 웬만한 어린이들도 뛰듯 쉽게 오르는 길이다. 별로 벅차 보이지 않아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나는 설 때마다 올랐지만 아내는 백아산 마당바위에 오르기는 처음이다. 그래도 아내는 다음 일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듯 신나있다.


오를 힘이 아직 없는 솔강이는 느릿느릿 오른다. 비탈길이라 해강이도 느려졌다. 답답한 형네 가족은 먼저 저만치 가있어 보이지 않는다. 간신히 끌 듯 올라가니 양지바른 데서 쉬고 있다. 우리 일행은 잠시도 쉬지 않고 출발했지만 곧 뒤쳐지고 만다. 20~30분 올랐을까 솔강이는 벌써부터 업어달라고 한다.

무동을 태워 올랐던 청계산 산행이 생각이 났다. 걷자 걷자고 해도 오늘도 마찬가지다. 가파르기는 덜하지만 눈길이라 쉽지 않다. 업어도 주고 무동도 태워보지만 엄마만 찾는 통에 한바탕 실랑이가 있었다. 짐을 번갈아가며 지고 솔강이를 어른 셋이서 업고 올랐다. 해강이는 막대기를 꺾어 앞에서 끌어주니 더디지만 군말 않고 따라온다.


손을 잡고 걷다가 길이 좁아 막대기를 잡고 따라오라고 했더니 힘내서 잘 오르는 다섯돌 갓 지난 해강이는 왕복 산행을 걸어서 무사히 마쳤다.
손을 잡고 걷다가 길이 좁아 막대기를 잡고 따라오라고 했더니 힘내서 잘 오르는 다섯돌 갓 지난 해강이는 왕복 산행을 걸어서 무사히 마쳤다.김규환
조릿대 밭을 지나 경사가 급해진다. 으름덩굴이 겨울에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이제부터는 숨을 할딱거리며 올라야 하는 가파른 길이다. 오르막길은 느릴 뿐 위험하지는 않다. 양쪽으로 바위 병풍이 이어지고 우린 가운데 흙길을 따라 올랐다.

오른쪽은 마당바위 능선이고 왼쪽은 정상으로 향하는 주능선인데 멀리서 보면 흰거위(白鵝)가 언제고 날아오를 채비를 하는 형상이다. 매번 오르지만 마당바위 능선에 가려 그늘진 이곳은 겨울 산의 느낌을 오롯히 호흡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응달이다.

미끄러져 넘어지고 일어섰다 다시 넘어지길 반복하니 해강이 손은 곱아간다. 장갑을 끼워주자 견딜만 한지 눈을 먹는다. 솔강이도 내려달라고 해서 눈을 먹으려고 한다. 예전 눈은 과자보다 깨끗하고 맛있었다. 겉만 흴 뿐 산성(酸性) 눈이라 먹지 말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럴 땐 길을 나서는 수밖에 없다. 재촉하여 조금 오르자 점점 더 오르기가 벅차다. 칡넝쿨이 치렁치렁 나무를 감고 있다. 잠시 바위에 올라 쉬며 바라본 담양과 곡성 아랫녘 준령은 희뿌옇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의 입김이 모아진 것일까?

마당바위 바로 밑은 온통 철쭉단지다. 매년 5월 초 우물 근처에서 화순북면 청년회 주관으로 위령제가 열린다.
마당바위 바로 밑은 온통 철쭉단지다. 매년 5월 초 우물 근처에서 화순북면 청년회 주관으로 위령제가 열린다.김규환
산골짜기뿐인 저 봉우리. 호남 민중이 숨죽여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듯 쉬지 않고 달리는 줄기마다 내 마음 머물게 한다. 그래 저쪽은 추월산이다. 이쪽은 통명산이렸다. 저 멀리엔 섬진강 맑은 물 허투루 쓰지 않고 모아서 강줄기로 흘리고 마침내 남해로 가려는 해맑은 썰매 타는 아이들 힘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이들 몸이 식기 전에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상념을 떨쳐 재촉하여야 오를 수 있다. 저기 하늘 보이는 곳까지 오르면 된다고 하니 졸졸 따라 오는 다섯 살배기 아이는 아직 수월한 길이 없다. 고산철쭉단지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어 억새밭이 은근슬쩍 비벼대며 힘내라 한다.

평원에 억새와 철쭉이 어울리기나 하는가. 이런 평시에 보면 이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락한 평온이 떠오른다. 잠시 누워 편히 쉬고 싶은 유혹에 빠져 스르르 잠들고 싶다. 병풍 두개가 가려있으니 이곳엔 솔바람만 하루 한두 번 오를 뿐 샛바람은 넘지를 못한다.

마당바위 정상에서 한컷 찍었다. 바람에 날아갈까 두려운 곳이다. 오른쪽 끝 하얀 눈이 있는 저수지 바로 아래가 화순군 북면 방리 양지마을 내가 태어난 곳이다.
마당바위 정상에서 한컷 찍었다. 바람에 날아갈까 두려운 곳이다. 오른쪽 끝 하얀 눈이 있는 저수지 바로 아래가 화순군 북면 방리 양지마을 내가 태어난 곳이다.김규환
불과 50년 전에는 이곳이 피아간(彼我間) 매복하여 밤새 덜덜덜 떨고 있었을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잠시 졸면 내 목숨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동지를 모두 죽음으로 내모는 각축전이 있어 총탄이 빗발치듯 날리고 탄피 나뒹굴던 쑥대밭이었다.

“고지를 점령하라!”
“저 몰랭이는 절대 빼앗기면 안 된다. 고지를 사수하라.”
“종간나새끼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박살내버려!”
“소대장님….”
“미제국주의 비행기가 떴습니다.”
“퇴각하라.”
“안됩니다.”
“반드시 저 자리를 찾고야 말거야.”
“어머니….”

끝 모를 남과 북, 북과 남 이념전쟁의 마지막 전투가 치열하게 펼쳐졌던 남한 최대 격전지에 우린 앉아서 쉬고 있다. 피비린내 하나 나지 않고 무엇 하나 발견되는 것 없다. 그냥 자연일 뿐이다.

명당이라고 소문이 나자 매년 주인이 바뀌는 마당바위 북쪽 언덕에 자리잡은 묘. 아래는 암반이고 위엔 천연 잔디가 깔려 있다. 현재는 밀양박씨들 묘로 되어 있을 뿐 진짜 주인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중학교 소풍 때는 800명 가량이 이곳에 올랐는데 여유가 많았다. 족히 2000명은 모일 수 있는데 묘지 우측 중앙에 헬기장이 있다.
명당이라고 소문이 나자 매년 주인이 바뀌는 마당바위 북쪽 언덕에 자리잡은 묘. 아래는 암반이고 위엔 천연 잔디가 깔려 있다. 현재는 밀양박씨들 묘로 되어 있을 뿐 진짜 주인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중학교 소풍 때는 800명 가량이 이곳에 올랐는데 여유가 많았다. 족히 2000명은 모일 수 있는데 묘지 우측 중앙에 헬기장이 있다.김규환
누군가는 풀어줘야 한다. 한쪽이 아닌 양쪽의 원한을 풀어줄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역사의 산은 어렵게 올라 다시 내려다보는 것이다. 굽어보고 샅샅이 뒤져 응어리진데 어혈 풀어주고 한서린데 따스한 기운 북돋우고 무성히 잡초 자라면 사람 손길 미쳐 골라주는 일이다. 물에 흙이 섞이고 자갈이 굴러 맑은 시내 만들고 움푹 팬 곳은 메워주며 도드라진 곳은 더 빼어나도록 가꾸는 작업이다. 모난 돌도 세월을 견디면 무디게 닳아져 어울린다.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 지리산 노고단이 보인다. 섬진강을 건너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 지리산 노고단이 보인다. 섬진강을 건너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김규환
아군인지 적군인지 마당바위에서 사람소리가 들렸다. 아이들도 하늘이 보인다고 좋아한다. 아래를 굽어보니 바로 아래인 것을 두 시간 반을 어렵사리 기어올랐다. 한 아이는 아예 업고 왔고 한 아이는 거북이걸음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

두 줄기를 이어주는 밋밋한 한가운데에 올라 서있다. 여기는 화해할 수 없는 곳인가 아니면 화합하기 위한 회합의 자리인가. 떨어져 있지만 떨어져 있는 두 줄기를 만나게 하는 교차점(交叉點)이 바로 이곳인데 서로 차지하려고 내리 3년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수많은 피땀을 흘렸다. 죽기 살기로 덤볐으니 누군들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비탈길을 돌면 여전히 응달쪽으로 마당바위에 암벽을 기어올라야 한다. 밧줄이 놓이고 계단이 없었더라면 엄두도 못 낼 험악한 곳이지만 마지막 기운을 쏟는다. 0.1km니 100m 오르면 된다. 절벽이다. 사방이 100에서 300m 낭떠러지 절벽 그 자체인 바위에 뭐가 있을까 마는 북한산 인수봉과 사뭇 다르다.

길도 아닌 길을 따라 발동기를 올려 방아를 찧어 군량미를 비축했던 전후 3년간 산사람들의 요새 중 철벽 요새를 오르고 있다. 오로지 비행기만 점령할 수 있는 아지트.

마당바위에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본 주능선. 움푹 패인 곳에 샘이 하나 있는데 사철 마르지 않는다. 오를 때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마당바위에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본 주능선. 움푹 패인 곳에 샘이 하나 있는데 사철 마르지 않는다. 오를 때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김규환
가까스로 정상에 오르자 아이들은 내쳐 달음질을 한다. 행여 절벽으로 떨어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100미터 달리기를 해도 까딱없을 바위 위에 흙과 천연잔디가 잘 다듬어져 있다. 늘 바람막이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곳 지형을 잘 알고 있는 나는 현기증이 일었다.

가까운 곳은 쉽게 쳐다보지를 못하고 먼 곳부터 다시 가까운 곳으로 시선을 옮겨 왔다. 정 동쪽으로 지리산 노고단, 남쪽으로 조계산을 끼고 도니 백운산이 어렴풋이 보이고 모후산이 가깝다. 화학산을 스쳐 지나자 70여km 뒤에 아직도 누워 있는 운주사가 아른거린다.

까만 화순탄광이 흐릿하고 너릿재를 올라 민둥산 줄기 쫘악 훑어가니 지척이 무등산이로세. 한 뼘이요, 한걸음인데 우린 돌고 돌아 몇 시간을 허비했구나. 담양 추월산이 서북쪽에 버티고 있다. 한 자리에서 더 돌자 강천산 너머로 회문산에 사람들 작당을 하고 있는 건가.

장면 장면이 떠오르는 걸 애써 참았다. 한없이 보고만 있으면 세상 시름 잊기에 충분하나 마냥 내 생각만 할 수 없어 아이들을 챙겼다. 756m 이 낮은 백아산 마당바위에는 여전히 지금도 주봉인 백아산 상봉(上峰, 810m)보다 사람이 많다.

몸이 식자 발이 시리다며 우는 솔강이 발을 내 뱃속에 넣어 데웠다. 뜨끈한 국물을 마시고 아래로 서둘러 내려왔다. 처음부터 오르는 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위험하다. 어른도 다리가 후들거려 똑바로 걷기가 힘든데 각각 한명씩을 업고 내려가려니 맥이 확 풀린다.

마당바위 근처에서만 잠시 말똥말똥 할 뿐 졸리는지 업어달라고만 하는 솔강이 탓에 고생깨나 했던 산행이다. 한 살 차이가 이렇게 큰 지 몰랐다. 내년엔 조금 나아지겠지.
마당바위 근처에서만 잠시 말똥말똥 할 뿐 졸리는지 업어달라고만 하는 솔강이 탓에 고생깨나 했던 산행이다. 한 살 차이가 이렇게 큰 지 몰랐다. 내년엔 조금 나아지겠지.김규환
다시 철쭉과 억새밭을 지나 눈길에 이르러 보니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이 신바람이 나있다. 해강이는 몸집은 솔강이와 같지만 발걸음이 가볍다. 솔강이는 아직 평길이면 몰라도 오르고 내리는데 둔하여 한 걸음 걸음이 갓 태어난 송아지만도 못하다. 십여 분 즐기다가 포근한 기운에 스르르 잠이 오는지 업어달라고 보챈다.

아내가 먼저 업었는데 1분도 채 되지 않아 잠에 곯아떨어진다. 스스로 가누질 못하니 눈길에서 몸뚱아리를 꼭 잡고 걷느라 힘이 부쩍 들어가 있다. 형님과 두 조카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 내가 업겠다고 할 때 이미 아내 다리는 풀려 있었다. 나도 두 번째 업었을 때는 다리는 물론 어깨 힘마저 죄다 빠졌다. 목도리로 단단히 묶었지만 걸음 딛기가 온전하지 않았다.

20분이면 내려올 길을 2시간 걸려 한 아이 동행하고 자는 솔강이 열댓 번 번갈아 업고 내려오니 맥이 탁 풀린다. ‘웬수덩어리’ ‘당분간은 아이들과 산행하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나보다 더 고생하는 아내 앞에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참고 있을 뿐이었다.

소나무밭이 나오는 걸보니 거의 다 내려온 듯 하다. 아내에게 넌지시 한마디 했다.

“솔강이 발걸음이 제대로 되려면 최소 7~8개월은 걸리겠는데.”
“그래요. 아이구 힘들어.”
“담부턴 우리 이런 생고생 하지 맙시다.”
“당분간은 산만 찍고 오는 게 좋겠네.”

기진맥진한 두 사람의 대화는 곧 끝이 났다. 대견한 해강이는 그래도 완주를 했다. 아래에선 차 소리가 부릉부릉 들린다. 우리가 쉽게 내려오지 못한다는 걸 알고 최대한 산자락에 차를 몰아 올라오고 있는가 보다. 허기지고 목마르고 다리가 풀리고 어깨 힘이 고갈된 아내와 나는 짐을 내동댕이치듯 차에 올렸다.

“엄마?”

잠에서 깬 솔강이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 웬수!”
집으로 가서 닭 한 마리 삶고 돌판 삼겹살을 구워 배불리 먹으니 꿀맛이었다. 밤새 내린 눈에 소복소복 쌓여 온 세상이 설국(雪國)이 되어 기분 좋은 아침을 맞았다.

벌써 나흘째지만 우리 부부는 허벅지 통증이 심해 걷기조차 힘들다. 이런 특별한 산행은 당분간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남으리라.

내려와 거나한 식사를 하고 일어났더니 모처럼 눈다운 눈을 보았다. 고향에 가면 이렇게 푸근하다. 소나무 가지가 휠 정도로 내린 눈이 제일 아름답다.
내려와 거나한 식사를 하고 일어났더니 모처럼 눈다운 눈을 보았다. 고향에 가면 이렇게 푸근하다. 소나무 가지가 휠 정도로 내린 눈이 제일 아름답다.김규환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2년 남짓 써왔던 고향이야기 600여 편 중 몇 개를 묶어 <잃어버린 고향풍경1>을 냈다. 고향의 맛을 찾는데 열심인데 올 2월에 음식과 홍어를 다룬 책이 따로 나올 계획이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대표이며 올해 말에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채원(山菜園)>을 만들 작은 꿈을 꾸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규환 기자는 2년 남짓 써왔던 고향이야기 600여 편 중 몇 개를 묶어 <잃어버린 고향풍경1>을 냈다. 고향의 맛을 찾는데 열심인데 올 2월에 음식과 홍어를 다룬 책이 따로 나올 계획이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대표이며 올해 말에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채원(山菜園)>을 만들 작은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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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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