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이 움텄으니, 봄이 멀지 않았다”

눈 덮인 천주산을 다시 찾다

등록 2005.01.25 22:13수정 2005.01.2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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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입니다. 토요일 하루 종일 등산을 해서인지 몸이 찌뿌드드해서,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비가 왔는지 땅도 젖어 있습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오후 1시를 넘기고서야 아이들과 한 약속대로 천주산을 향합니다.


시내를 거쳐서 천주암 입구까지 가는데, 도로가에 개나리꽃 몇 송이가 피어 있습니다. 차는 쌩쌩 달리고, 우리는 산길보다 힘든 보도를 일렬로 서서 걸어갑니다.

30여분을 소요하고서야 등산로 입구인 천주암에 당도하였습니다. 한 달 전, 산을 오를 때 보았던 개나리꽃을 찾았으나 도로가의 개나리처럼 시든 꽃 몇 송이만 겨우 붙어 있는 것이, 날씨가 그 동안 꽤 추웠나 봅니다. 우리는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재촉합니다.

“반갑습니다. 아침까지 눈이 와서 사람들이 없더니만 오후가 되니까 등산객들이 좀 늘어나네요.”

내려오던 등산객이 인사하는 말을 듣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밤부터 아침까지 눈이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보니 점점이 묻어 있는 눈이 지난 주에 내린 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지팡이로 쓸 나무막대기를 주우려다가 빠알간 찔레꽃 열매를 발견했습니다.

까치밥 열매
까치밥 열매한성수
어릴 때 우리는 이 열매를 까치밥이라고도 했는데, 입에다 넣으면 약간 단맛은 있는데, 까끌까끌 해서 먹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고개에 당도해서 잠시 앉아서 물을 마시고,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휴식을 취합니다. 왼쪽으로 올라가야 정상인데 등산로가 너무 질퍽거려서, 아이들은 올라가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함안 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걷습니다. 길바닥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고, 응달이어서인지 바람도 제법 쌀쌀합니다. 혹시 진달래라도 피어 있을까 둘러보지만 진달래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오리나무의 색깔이 초록입니다.


새싹의 움이 튼 오리나무
새싹의 움이 튼 오리나무한성수
아! 오리나무 가지에 새싹이 움트고 있습니다. 내가 사진 찍는 것을 본 아들이, 무슨 나무인지 묻습니다.

“응, 이 나무는 오리나무라고 하는데, 베어서 주로 땔감으로 사용했단다. 우리가 아는 ‘방귀 뀐다. 뽕나무’, ‘십리 절반, 오리나무’할 때의 바로 그 오리나무란다. 그 노래는 아마 옛날사람들이 오리마다 거리를 표시하기 위해서 심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새싹이 움텄으니, 이제 봄이 멀지 않았나 보다. ”

임도에는 계곡에서 내려온 물이 꽁꽁 얼어 있어, 오리나무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전히 겨울인 얼음
여전히 겨울인 얼음한성수
임도가 끝나는 고갯마루에서 정상까지는 0.5㎞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등산로 주변에는 큰 키의 진달래 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길은 질퍽거리고 미끄럽지만, 한발씩 오를수록 눈앞을 가리는 장애물이 없어지고 탁 트여, 눈이 시원해 집니다. 정상부분에는 헬기장이 있고 용지봉이라는 푯말이 있습니다.

해발 640m인 이 봉우리의 동쪽은 창원시, 북서쪽은 함안군, 남서쪽은 마산시로 정상에서 3개시군이 만난다고 합니다. 나는 천주산과 이웃해 있는 작대산 자락에서 나서 자라다가 천주산 기슭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이 일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산을 해야 합니다. 마누라는 다리를 삐끗해서 내 등을 의지해서 겨우 걷고 있습니다. 딸아이는 제동생과 손을 잡고 앞장서 걸으면서, 산자락에 있는 소계동 제 이모에게 통닭을 시켜두라고 전화를 합니다. 아들은 여태껏 아껴 두었던 초콜릿을 슬며시 제 어머니에게 건넵니다.

우리는 진달래꽃이 만발한 봄날에, 다시 이 곳을 찾자고 굳게 약속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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