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 서게 되면 깨고 나올 결심"

[인터뷰] '국정원 과거사위' 오충일 위원장

등록 2005.01.26 15:00수정 2005.01.2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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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일 출범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거사위)를 이끌어나갈 오충일(64·목사) 위원장을 지난 21일 세종문화회관 커피숍에서 재외동포신문 강성봉 편집위원장과 함께 만났다.

“대통령이 임명하면 안 맡았을 텐데 시민사회단체가 결의를 해서 추대해 제의를 수락했다”는 오 위원장은 “들러리 서는 단계가 되면 언제라도 깨고 나온다는 결심"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임명하면 안 맡았을 것"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오충일 위원장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오충일 위원장김진이
- 과거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에 목사님은 중정이나 안기부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조사를 받으신 걸로 알고 있다. 이제 조사를 받던 입장에서 조사를 하는 입장으로 국정원에 나가게 된 감회가 남다를 것으로 보이는데.
"안기부 신세를 많이 졌지. 86년인가 한 며칠 가서 잠도 자고 그랬지. 처음 과거사위 일을 나보고 하라고 할 때 만감이 교차했지. 세상이 한바퀴 돌았구나, 많이 변했구나. 국정원이 과거사 진실규명을 한다니, 민주화가 되가는 걸 실감하는 계기가 됐지."

- 위원장 제안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됐는지.
"처음에 내가 어디 가서 장례식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 위원장 맡아달라고. 나는 과거사 규명하는 데에 적절치 않으니 다른 사람을 해보라고 했지. 내 생각엔 법학이나 사회과학하는 사람이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서.

과거사위가 대통령이 임명하는 거면 내가 안 했을 텐데 시민사회단체가 추대하는 형식으로 안에서 합의를 했더라고. 민변, 학계, 시민단체, 민중단체, 기독교, 불교, 가톨릭 등 각 분야의 사람들이 3개월 전에 모였지.

국정원장이 이들을 만나서 ‘과거의 사건을 전부 규명을 하고 과거에서 벗어나서 국민들 가슴속에 다가가는 국정원이 되려고 그런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사 의혹을 낱낱이 규명을 하고 국정원의 악명높은 이미지를 벗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국정원이 되겠다’ 뭐 이런 얘기를 했지.


나는 개인적으로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 땅을 좀 얻어서 산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던 참이었는데. 아직은 쉴 때가 안 됐나봐."

- 어려운 일을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지.
"이번 국정원 일은 국민과 함께 풀어가야 되는 일이라 언론과 함께 가려고 해. 그래서 어떤 일이든 다 풀어내려고. 하나도 감추지 말고. 자칫 내가 들러리 서는 단계가 되면 언제라도 깨고 나온다는 결심이거든."


"국내는 주사파, 해외는 간첩으로 몰아"

- 중정, 안기부, 국정원은 축적된 정보를 활용해 국내뿐 아니라 동포사회에 불신풍조를 조장하고 동포사회를 분열시켰다. 때로는 무고한 동포를 간첩으로 만들기도 해서 국정원 직원들에게 시달리며 짓눌려서 산다고 할 정도로 동포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5·16은 정권찬탈이지. 국민의 동의 없이 정권을 뺐었으니까. 다들 반대를 하니까 국민통치의 수단으로 중앙정보부를 만든 거야. 정상적인 국가기관이 아니라 군사독재를 마지막까지 끌고 온 본산이지.

군은 보안사, 민간은 중정이지. 이들이 안의 민주세력 뿐 아니라 밖의 민주세력도 탄압을 했지. 도시산업선교회 등 사례처럼 해외에서 민주화세력을 돕는 일은 순수하지 못한 빨갱이라고 몰아세우고.

안의 세력을 주사파로 몰고 밖은 간첩으로 몰고. 그런 맥락에서 동백림사건, 윤이상 교수 사건들이 일어난 거지. 빨갱이가 해외에도 있고 안에도 있으니 철저하게 반공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 거지.

우리나라 국시가 한때 반공이었어. 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북에서 쳐들어온다고 하면 멈출 수밖에 없었어. 가장 잘드는 약이 반공이고 국보법이야. 항상 먹혔지."

- 과거 중정, 안기부는 정권이 위기이다 싶으면 대규모 공안사건을 조작해 내곤 했다. 동백림 사건이나 유럽 광부 간첩단사건처럼 유학생이나 재외동포가 중심 구성원으로 되어 있는 사건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만들어낸 거의 대부분 공안사건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유학생이나 재외동포가 그 하부에 포섭되어 있었다. 재외동포가 관련된 사건으로 위원회에서 조사예정인 사건들로 어떤 사건들이 있는지.
"85년인가 내가 김성만씨 구명 때문에 한 달 동안 미국에 간 일이 있어. 가서 엠네스티하고 지역교회, 인권단체를 만났지. 국무성도 갔었고. 김성만씨가 일리노이 주립대학 출신이라고 에반스, 사이먼 등 하원의원 만났지.

당시 그 사건은 이종찬씨가 풀었어. 여당의 정무장관을 지냈던 이씨를 만나서 사람 살리는 일이라고 도와달라고 했지. 이종찬씨가 자기도 사형폐지론자고 감리교 신자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바로 무기로 돌려졌지."

- 과거사위 진상조사에 어디까지 기대를 할 수 있나.
"우리 위원회가 할 일은 객관적인 실체를 드러내는 것, 진실이 말하게 하는 것까지가 우리의 일이야. 거기에 해석을 하거나 벌을 주거나 말거나 하는 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야. 안기부, 국정원이 개입한 사건에 한해. 군사정권 때는 안기부가 개입되지 않은 사건이 없지만.

사람들이 그러지. 우리 벌주려고 하는 거 아니냐. 그건 아니고 역사바로잡기가 돼야지 어느 편향된 것으로 가면 더 어려워져. 청산을 해야 화해가 오고 그래야 새로운 세대를 함께 열어갈 수 있어.

그게 독일 아닌가. 얼마나 창피하겠어. 600만명이나 죽인 아우슈비츠를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어린이들에게 가르치지. 일본은 그걸 못해서 아시아에서 아직도 앙금이 있는 거 아니야.“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이번에 맡게 된 과거사위가 맡고 보니 과거에 내가 살아오는 거에 대한 뒷정리도 되더라고. 알다시피 국본 상임대표 했던 사람인데 나를 추천한 단체들이 다 그때 그 단체들이잖아. 같이 걸어온 사람들이 하라는데 그걸 반대할 수 없잖아.

89년도에 김영삼씨가 정치하라고 해서 목사하고 장로하고 3번이나 술을 먹었지. 그래도 안했지. 김대중씨도 그런 제의가 있었지. 하지만 나는 정치보다는 역사의 진보에 관심이 있었지. 내가 굳이 정치를 직접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지.

오충일 목사 걸어온 길

황해도 봉산 1940년 출생
63년 연세대 신과대 졸
75년 동연합신학대학원 졸
82∼85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이사장
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장 겸 사무처장
94∼96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
99년 기독교사회선교협의회 의장
2001년 노동일보 대표이사 사장
2004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장(현)
내가 재야운동을 오래 한 건 그 시대에서는 뭐랄까 양심의 증언, 도덕성 때문에 한 것이지 정치적인 역량이나 기술이 있는 건 아니잖아. 예를 들면 평민당 해체하고 전국당으로 만든다고 했었지. 그때 이부영도 들어오고 노무현도 들어와 7인위원회가 있었지. 그때 내가 소집책이었지.

평민당 해체하고 신민주당 만들 때 내가 사무총장이었어. 창당대회하고 나오니까 사람들이 바보라고 해. 사무총장이면 당 서열이 굉장히 높은데 그걸 버리고 나온다고. 한 면만 보면 내가 정치하는 거처럼 보이지만 당시는 민주화를 이루려면 평민당 밖에 대안이 없었다는 판단이었거든.

나중에 보면 역사의 진보를 위해서라면 가리지 않고 한 것뿐이지. 그런 전력이 있으니까 시민단체에서 ‘저놈’은 순수한 재야라고 본거지. 3개월이나 워크숍을 한 걸 나는 몰랐지. 이건 기분이 괜찮더라고."

덧붙이는 글 | <재외동포신문>에도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재외동포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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