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광주공장에 다니는 아들에게

광주의 한 아버지가 보내는 편지

등록 2005.01.26 17:15수정 2005.01.2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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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오랜만에 눈이 많이 내려서 좋구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걱정이겠으나 나같이 농촌, 시골 출신인 경우는 우선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라는 옛사람들의 말이 떠올라 아무래도 좋구나. 그동안 겨울가뭄이 너무 오랫동안 계속되었는데 논밭에 저렇듯 흰눈이 소복소복 내려 쌓여서 일단은 안심이 된다.

아들아. 그런데 오늘 나는 너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아침 7시30분경에 출근하여 밤 9시, 일이 밀려 늦을 때는 10시를 넘어서 퇴근하는 너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동시에 요즘 거의 매일같이 신문과 TV, 라디오에 톱뉴스로 오르내리는 '기아자동차 생산직 채용비리' 사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오늘은 너한테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털어놓고 싶은 게 아빠의 솔직한 심정이다.

"아빠, 내가 만든 ‘스포티지’가 수출이 잘되고 있어요. 경기가 좋지 못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아요. 열심히 만들어 놓고 다음날 출근해서 보면 모두 팔려나가 재고가 눈에 안 보이니까요."

그런 너의 말을 들은 나였는데 최근 '채용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기아자동차 회사를 보며 나 또한 마음이 우울해짐을 속일 수가 없단다. 네가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기아자동차가 혹시 수출과 국내 내수에도 타격을 입지 않을까 해서 은근히 염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물량의 경우 올 연말까지도 많은 양을 예약 받아놓고 있다는 등 지난해부터 급상승하고 있는 '기아자동차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훼손될 것 같아 내 마음도 여간 안 좋단다. 그렇지 않아도 좋은 이미지를 보다 세계적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야 할 판국인데 말이다.

현대계열 기아자동차는 국내경제에는 물론 '광주권 경제'에 상당한 플러스요인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광주 제조업의 30%를 차지한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내려온 삼성전자 일부시스템과 더불어 사실상 광주 경제의 30∼40% 이상의 몫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싶다.

현재 기아자동차의 하청업체만도 400개 내지는 500개가 되는 걸로 파악되는데 어쨌든 광주지역에서 기아자동차가 창출해낸 일자리가 약 5만개(5만명)라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다.

이렇게 계산을 해놓고 볼 때 광주광역시 경우는 이에 따른 세수(稅收) 증대에 많은 덕을 보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20만명(5만명 근로자×4인 가족) 이상의 가족들(시민)이 생계 및 생활을 꾸려나간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여담 삼아 한 마디 해볼까나. 네가 기억하고 있듯이 이 아빠는 지난날 13년간을 고등학교에서 외국어 선생을 한 다음에 1980년대 중반부터 광주지역 신문사에서 경제부장으로 종사했지.

그 무렵 강릉 경포대에서 가진 언론인연수에선가 나누었던 이야기인데 경남지역 한 지방신문사에서 데스크를 맡은 L부장이 나에게 한 말이 새삼 며칠 전 얘기처럼 떠오른다. L부장은 너의 아빠처럼 시인이기도 한 사람이다.

현재 부산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L부장의 애정이 섞인 말씀인즉 "김준태 부장, 광주에 뭔 '경제'라는 게 있어요?! '경제'가 있어야 경제면 만들기 쉽지, 경제가 없으면 힘들 텐테… 하하하 핫핫핫!" 하는 농담 아닌 진담을 너털웃음으로 듣다가 괜히 우울해진 적이 있었던 너의 아빠가 아니었더냐.

하기야 내 경우 1960년대 그 시절 ‘베트남전쟁’에 다녀와서 잘 아는데 10여년 동안 이 전쟁에 참전한 대가로 한국은 부가가치를 포함하여 총 250억달러(월남참전 당시 우리나라 GNP는 한 자리 숫자)를 벌어들였지. 그 결과 한국은 경부고속도로 하며 여타 공단들이 줄줄이 들어섰고 이른바 근대화란 큰 삽을 뜰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980년 '김대중 내란사건' 최후진술에서 이문영 전 고려대 교수가 "전라도에는 월남전쟁의 경제특수효과를 전혀 부여하지 않았다!"고 한 것을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아무튼 그 시절 전라도 인구는 타 지역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루럴 엑소더스(Rural-Exodus; 농촌대탈출)’ 현상이 가속화되었던 것이지. 그리하여 전라도 농촌사람들은 정든 산 고향을 떠나 서울로 부산으로 마산으로 수출단지로 떠나 '공장노동자' 혹은 '산업전사'가 되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가난한 시인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로 유학을 가서 H공과대학 자동차기계공학과를 졸업, 지금은 밤늦도록 고향 광주의 기아자동차에서 땀흘려 일하는 아들아. 아빠는 여태까지도 운전을 못하는 차맹(車盲)이지만 언제나 너의 자동차회사가 번창하기를 빈단다. 클라이슬러 회장처럼 도전과 응전 정신으로 말이다.

제레미 리프킨의 <수소혁명> 책을 읽는 등 미래를 위한 '대체에너지'에 대하여 무척 관심도 많은 반면에, 일단은 기아자동차가 광주경제, 나아가 한국경제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에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들아. '채용비리'로 이미지가 실추된 기아자동차가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병가상사(兵家常事)하는 마음으로 거듭나서, 보다 활기차고 의연한 모습으로 새롭게 일어서길 아빠도 바란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관행, 타성, 도덕불감증, 사회부패의 고리를 끊고 당당하게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위상을 높일 것을 당부하고 싶다.

광주시민들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하루빨리 사건을 마무리, 기아자동차가 정상을 되찾아 주기를 비는 것이다. 물론 오늘도 기아자동차의 대다수 일반 근로자들은 수출물량과 국내 주문생산의 날짜를 맞추기 위해 너처럼 한눈을 팔 겨를이 없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다행으로 여기지만 말이다.

아들아. 그리고 다가오는 '우리 설날' 연휴엔 아빠의 고향 땅끝 마을 해남도 갔다와야 되고 너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살고 있는 섬진강 저 건너 삼천포 외가도 다녀와야 한단다.

푸른 파도 넘실거리는 박재삼 시인의 고향, 삼천포도 네 엄마의 고향이라 빠뜨리지 않고 같이 가야지 않겠느냐. 고향은 누구에게나 있어서나 따스한 어머니의 젖가슴이요 영원히 잊지 못할 근원이요 뿌리요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아들아. 끝으로 네가 이번 설날을 계기로 담배를 끊길 바란다. 고대희랍 신화에서 나오고 있는 이야기인데 담배연기는 SOS(구조신호) 상징이라지만 우선 너의 엄마부터 그 연기를 좀은 싫어하지 않더냐. 그러니 하루빨리 담배를 멀리해야지.

자아, 그럼 우리 모두 건강하자! 그리고 큰 호흡으로 가슴을 활짝 펴자.

2005년 1월 26일

아빠의 작은 학교 '금남로 리케이온'에서.

덧붙이는 글 | 김준태 기자는 1948년 전남 해남 출생. 1969년 전남매일, 전남일보 신춘문예를 거쳐 <시인>지로 한국문단에 나옴. 

시집으로 <참깨를 털면서> <국밥과 희망> <불이냐 꽃이냐> <지평선에 서서> 등 다수. 지난해 팀 오브라이언의 베트남전쟁소설 <그들이 남긴 것들>을 우리말로 펴냈다. 현재 조선대학교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준태 기자는 1948년 전남 해남 출생. 1969년 전남매일, 전남일보 신춘문예를 거쳐 <시인>지로 한국문단에 나옴. 

시집으로 <참깨를 털면서> <국밥과 희망> <불이냐 꽃이냐> <지평선에 서서> 등 다수. 지난해 팀 오브라이언의 베트남전쟁소설 <그들이 남긴 것들>을 우리말로 펴냈다. 현재 조선대학교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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