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치 없으면 만년 소수당 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김동춘 교수의 '인정사정 없는' 쓴소리

등록 2005.01.26 23:27수정 2005.01.2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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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6일 오후 5시 진보정치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린 '쓴소리X' 간담회.

26일 오후 5시 진보정치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린 '쓴소리X' 간담회. ⓒ 권박효원


"민주노동당은 지역구 당선 가능성이 대단히 낮아 만년 소수당이 될 가능성도 높다. 지역정치가 없이는 또 선거 때만 나타나서 표 달라고 하는 철새정당으로 갈 것이다. 기존 정당은 정책 없어도 힘과 돈으로 밀어붙이지만, 민주노동당은 정책이 없으면 성공 못한다. 노조는 경제만 대처하면 되지만 당은 모든 문제에 대처해야 하는데 현재 대처 못할 쟁점이 반도 넘지 않나."

"인정사정 봐주지 말라"는 김범석 진보정치연구소 사무국장의 주문에 대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는 확실한 쓴소리로 답했다.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가 26일 오후 5시 연구소 회의실에서 주최한 '쓴소리 X' 간담회에서 김 교수는 "의회 내에서 제기한 문제가 참신하지 않았고 (정책 역량 부족으로) 현재 대처 못할 쟁점이 반도 넘는다"며 당에 매를 들었다. 김 교수는 지역정치 부재를 강조하면서 "만년 소수당이 될 가능성도 높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인사말에서 "94∼95년부터 노동자 대상 강연을 할 때마다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창당 과정에서 강령작업에도 참여했다"며 '동지애'를 나타내며 "나중에 인정도 해달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지만, 발제에 들어가서는 '봐주는 것 없이' 1시간 가까이 비판을 이어나갔다.

이날 모인 당직자들은 주대환 정책위 의장을 비롯한 정책위나 진보정치연구소 소속 당직자, 의원 보좌관 10여명. 이들은 대부분 발제문에 메모를 해가며 김 교수의 말을 주의깊게 들었고, 발제가 끝난 뒤에는 "당의 지역조직이 어떻게 지방정치를 해야 하냐", "'거대한 소수'라는 당의 개혁 네트워크 전략을 어떻게 평가하냐"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서민들의 고통을 원내 의제로 만들 책무 있다"

이날 김 교수는 "1년 동안 심상정 의원이 제기한 의제들을 봤는데 정말 참신한 의제는 거의 없었다"며 "서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고통을 원내 의제로 만들 책무가 있다"고 의회내 의제설정 역할을 강조했다.


또한 김 교수는 "진보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나타나서 '옛날에 운동도 했으니 뽑아달라'고 하면 철새나 다름없다"며 "민주노동당이 지역 대중정치에서 성공하지 않으면 고정된 의석수에서 만년 소수당, 철새정당이 될 가능성도 높다"고 일침을 가했다.

최근 윤종훈 정책연구원 사직으로 불거진 '정책위 사태'에 대해 김 교수는 "운동한 분들이 얼마나 전문가의 기여도를 평가하는지는 회의적"이라며 "노조는 경제만 대처하면 되지만 당은 모든 문제에 대처해야 하는데, 현재 대처 못할 쟁점이 반도 넘지 않냐"고 꼬집었다.


또한 당내 정파갈등에 대해 "이념을 갖고 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80년대식으로 문건이라도 만들어서 설득해야지 목소리 높은 사람이 이겨서는 안된다"며 "지금은 '끼리끼리 분파'지, 노선 싸움은 90년대에 없어졌다"고 정책과 노선 중심의 정파경쟁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여당의 우경화 경향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입지가 넓어질 수도 있지만 준비를 해야 넓어진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며 "2월 임시국회가 시험대일텐데 반드시 통과시킬 법과 저지시킬 법에 대한 메시지를 다른 당보다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진보정치연구소는 이후에도 매월 세째주 수요일 오후 5시 당사에서 '쓴소리 X'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이는 "쓰지만 약이 되는 소리를 듣고 성찰을 통한 혁신과 비판을 넘어선 대안을 찾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간담회다.

다음은 김동춘 교수의 발제문 내용 요약.

a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가 26일 오후 5시 연속기획으로 마련한 '쓴소리X' 간담회에 첫번째 주자로 나선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가 26일 오후 5시 연속기획으로 마련한 '쓴소리X' 간담회에 첫번째 주자로 나선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 권박효원

"민주노동당은 계급정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의 지배계급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전략이 있나. 90년대 이후 자본과 계급의 지배는 훨씬 더 공고화됐다. 현재 노동계급은 누군가. 대기업 사업장이 투쟁력은 높지만 계층적으로는 중산층이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을 표방했는데 어떤 노동인가. 어떤 노동자인가. 그런 면에서 비정규직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다.

정체성과 관련해서 당내 갈등이 있는 것으로 안다. NL경향이 있고 PD경향이 있다.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자유주의적 의제에서 나뉘는 게 현재 의식의 지평이다. 사회경제를 둘러싸고 국민들이 한번도 계급적 관점의 고민이 없었다. 과거 운동권 사람들이 민주화나 분단 문제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복지·조세 등 사회경제적 의제에 대해서 감각이 둔하다.

민주노동당은 지역구 당선 가능성이 대단히 낮다. 고정된 의석수에서 만년 소수당이 될 가능성도 높다. 지역운동·지역정치가 민주노동당의 살길이다.

92년 민중당 이후 진보 정치인은 철새와 다름없다고 본다. 선거 때만 나타나서 '옛날에 운동도 했으니 뽑아달라'고 하고 번번이 떨어진다. 현재 지역에서는 토호세력이 더 많이 권력을 장악했고 운동권 프리미엄도 거의 끝났다. 민주화 경력으로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4.15 총선 정도로 마무리됐고, 최근 기아차 노조 문제가 계속되는데 노동운동 경력 프리미엄도 대단히 힘들 것이다. 결국은 민주노동당의 지역 대중정치가 성패를 좌우할텐데 지역정치 성공사례를 잘 모르겠다. 이 상태로 보면 또 철새정당으로 갈 것이다.

사회적으로 다루지 않은 의제를 의회에서 제기해야 한다. 1년 동안 심상정 의원이 제기한 의제들을 봤는데 그동안 시민단체나 열린우리당이 제기한 것 말고 정말 참신한 의제가 거의 없었다. 서민들이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 고통을 의제로 만들 책무가 있다. 의회활동의 상상력이나 현장의 파악능력에 문제가 있지 않나. 외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사례라든지, 각종 노동 관련 사안만 해도 노조가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민주노동당이 제기해야 한다.

기아차 노조에 대한 보도가 공정하다고 보진 않지만 노동자들이 사회적 권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기업별로 권력을 가졌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성격이 약하다. 노동조합이 부당하게 취급당한 점 100% 공감하지만 노동운동이 성역이 될 수 없다. 정당이 어떻게 개입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민주노총과는 다른 방식으로 민주노동당이 개입해야 한다.

윤종훈 연구원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기존 정당은 정책 없어도 힘과 돈으로 밀어붙이지만 민주노동당은 정책이 없으면 성공 못한다. 과연 그동안 운동한 분들이 얼마나 전문가의 기여도를 평가하는지는 회의적이다. 전문가·지식인들은 사실상 전면 투쟁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기회주의적이거나 별 볼일 없다고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책없이 정권을 잡은 것은 범죄에 가깝다.

노무현 정권이 교육·복지 정책을 뭉개고 2년 갔다. 이렇게 무책임한 정부가 어디 있냐. 민주노동당도 다르지 않다. 노조는 경제만 대처하면 되지만 당은 모든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 현재 대처 못할 쟁점이 반도 넘지 않나.

내부 분파문제는 나도 다 겪은 것인데 이념 갖고 싸우는 것 당연하다. 다만 룰을 지키면서 싸워라. 지면 승복하고 이기도록 노력해라. 룰을 안 지키면 대단히 더티해진다. 80년대식으로 문건이라도 만들어서 설득해야지, 목소리 높은 사람이 이겨서는 안된다. 지금은 '끼리끼리 분파'지, 노선 싸움은 90년대에 없어졌다.

전통적 노동의 가치 뿐 아니라 여성·환경·인권의 가치를 품어야 20대 끌어들일 수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과도기인 것 같다. 시민운동의 경험에서 배우지 않으려 한다면 굉장히 많은 오류를 할 수 있다. 반면교사도 받아야 한다. 시민없는 시민운동의 딜레마를 당원가입 문제에서 민주노동당도 똑같이 겪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노동당과 시민운동은 같은 배를 탔는데 세를 얻은 이후부터 오만해진 측면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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