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대통령, 물병 세례를 받다

[세계사회포럼] 갈라진 브라질 진보진영... 룰라의 미래는?

등록 2005.01.28 08:49수정 2005.01.29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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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27일 세계사회포럼에 참석, 빈곤 문제에 관한 연설을 했다. 행사장 안에는 그의 지지자들이 환호했지만, 밖에서는 그를 반대하는 옛 동지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룰라를 지지하는 시민(왼쪽)과 부시와 악수하는 룰라 사진을 들고 그를 비난하는 시민(오른쪽). 연설하는 룰라(가운데).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27일 세계사회포럼에 참석, 빈곤 문제에 관한 연설을 했다. 행사장 안에는 그의 지지자들이 환호했지만, 밖에서는 그를 반대하는 옛 동지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룰라를 지지하는 시민(왼쪽)과 부시와 악수하는 룰라 사진을 들고 그를 비난하는 시민(오른쪽). 연설하는 룰라(가운데). ⓒ 민주노동당

브라질 최초의 좌파 대통령, 노동운동가로서 대통령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룰라(Lula; 본명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룰라는 지난 2002년 빈민층과 서민의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강력한 개혁정책과 실용주의 노선으로 브라질을 경제 침체의 수렁에서 건져냈다.

이쯤이면 룰라의 인기가 대선 당시보다 더 높을 만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27일 오전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의 한 행사장에서 룰라는 자신에게 등을 돌린 '과거의 지지자들'과 만나야만 했다.

룰라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세계사회포럼(WSF) 행사 중 하나인 G-CAP(세계적인 빈곤퇴치 운동단체) 연석회의에 참석, 브라질 경제 현안과 빈곤 문제에 관해 연설했다. 룰라의 연설은 행사장인 지앙띠뇨(Giangtinho) 체육관을 가득 메운 브라질 시민들로부터 환호와 찬사를 받았지만, 밖에서는 그만큼 야유 소리도 높았다.

정치적으로 룰라 대통령을 반대하고 있는 P-SOL, PTSU와 같은 정치단체,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연석회의가 열린 지앙띠뇨 체육관 밖에 모여 룰라를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며 그를 조롱했다.

이들은 커다란 붉은 천에 "룰라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자일 뿐", "배신자" 등의 구호를 써놓고, 깃발을 흔들며 룰라를 비난하는 노래를 되풀이했다. 룰라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연설자들도 "룰라가 노동자들을 배신했다"고 목청을 높였다. 시위대는 전날에도 개막행진을 하며 룰라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을 싸잡아 비난하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a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한 시민들과 활동가들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룰라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한 시민들과 활동가들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룰라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 김영균

브라질 경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대통령이 이처럼 '비난'을 받고 있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룰라 대통령은 취임 뒤부터 안팎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을 삭감하는 등 강력한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 룰라의 정당인 '브라질 노동자당(PT)'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등을 돌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PT를 탈퇴해 자신들만의 정당을 만들고 있다.

룰라가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는 사업들 중 일부도 룰라가 '노동자의 배신자'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하고 있다. 27일 '반룰라 시위'에 가담한 시위대 중 환경단체 관련자들은 최근 브라질 정부가 추진중인 2기의 원자로 건설사업을 맹렬히 비난했다. 이들은 체육관 밖에서 원자로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갖가지 풍자를 동원해 룰라 대통령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한 시위자는 룰라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나와 시위대에 웃음을 제공했으며, 다른 환경단체 소속 무리들은 '축구 왕국'인 브라질에 빗대 룰라 대통령이 핵연료로 만든 공을 몰고 가는 모습을 그린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시위대는 이날 오전 11시께 대형 화면을 통해 방영된 룰라 대통령의 기조연설이 끝나자, 야유를 퍼부으며 체육관 담장 안으로 플라스틱 물병을 집어던졌다. 이날 시위에서 큰 충돌은 없었지만, 시위대 중 일부가 체육관 담장 위 철조망에 올라가거나 철망을 뜯어내려 해 경찰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Green Peace)는 전날인 26일 성명서를 내고 "룰라 정부는 전 국민의 2%도 만족시키지 못할 전기를 얻기 위해 온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며 원자로 건설 중단을 촉구했다.

a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룰라의 원자로 건설 추진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룰라를 풍자한 모습들.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룰라의 원자로 건설 추진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룰라를 풍자한 모습들. ⓒ 김영균

룰라 '전지구적 빈곤퇴치운동' 제안, 반대 시위자들도 박수

정치적 반대자들의 시위에도 불구하고, 이날 행사에서 룰라 대통령은 여전히 많은 지지자들이 남아있다는 점을 과시했다. 룰라 대통령이 연설한 기앙띠뇨 체육관 내에는 약 2만여명에 이르는 시민들과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브라질 시민들은 룰라 대통령의 연설이 끝날 때마다 박수와 환호성을 질렀다.

한편 룰라 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통해 세계가 '전지구적인 빈곤퇴치운동(Action Against Poverty)'에 들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룰라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빈곤 퇴치를 위한 전세계적 운동에 돌입하자"고 제안했으며, 자신은 즉석에서 G-CAP 회원으로 가입했다.

아울러 룰라 대통령은 현재 브라질의 경제 상황을 설명하며, 앞으로 경제 부흥과 대학 지원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룰라 대통령의 이같은 연설에 대해서는 그를 반대하던 시위대들 사이에서도 박수가 터져나왔다. 또 일부 참가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기도 했다.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온 에리카(22)는 "그는 여전히 우리의 대통령(he is our president)"이라며 "정말 감격했다(so emotioned)"는 찬사를 연발했다.

룰라 대통령이 참석한 G-CAP 연석회의는 이날 오후 2시께 끝났으며, 회의 종료와 함께 시위대도 해산했다.

a 시위대는 담장 밖에서 룰라 대통령을 비난하며 물병을 집어 던졌다. 경찰과 시위대가 담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시위대는 담장 밖에서 룰라 대통령을 비난하며 물병을 집어 던졌다. 경찰과 시위대가 담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 김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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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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