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돼지 삼형제 사건의 가해자, 늑대의 진실

<그림책 속 인생이야기4>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

등록 2005.01.28 15:55수정 2005.01.28 18:16
0
원고료로 응원
a 겉그림

겉그림 ⓒ 이선미

대학교 시절, 대학언론 기자 활동을 할 때 친구들과 후배들은 이런 논쟁을 자주 하고는 했다. '기사는 객관적이어야 하지 않느냐? 우리는 너무 일관되게 한 쪽의 입장만을 다루고 있지 않느냐?'

사실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동기들은 대학언론의 진보성과 관련해 '자주언론'이라는 기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편 후배들의 경우에는 양쪽의 입장을 다 들어 봐야하고 우리는 그냥 사실만 전달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 아니냐는 소극적 입장으로 기자활동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런 부분에 있어 나 또한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아는 것도 없고, 이들을 설득하는 방법도 모르고 많이 부족했던지라 나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동기들을 많이 떠나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전공수업으로(필자는 언론전공을 했다.) 기사쓰기에 대해 배우는 데 사실(fact)과 진실(truth)에 대한 구분이 나왔다. 이것을 보는 순간, "아, 이것이었구나!"하고 퍼뜩 머리가 깨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였다. 동기들은 이미 졸업 준비를 할 때였다.

대학언론은 사실(fact)이 아니라 진실(truth)을 알리는 소임이 더 막중하다. 그 동안 대학언론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학우들에게 정세이야기와 학원자주화에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알려내고 같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하되 그 형식과 틀은 시대가 거듭날수록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대학 언론이 진실은커녕 사실 자체도 발 빠르게 알려내지 못하고 역량이 약화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우리 주변에서 TV 뉴스를 통해서 듣는 단발성 기사만을 접하다보면 뭔가 목마를 때가 있다. 그래서 이것저것 책을 사보기도 하고 선후배들과 간헐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목마름을 채우기도 한다.

최근 읽게 된 그림책,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는 사실(fact)과 진실(truth)에 대해 다시 한 번 반문하는 그림책이다.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에서 나온 사실(fact)만 고스란히 남긴 채, 또 다른 진실(truth)을 이야기 해준다.


이 책에서 누구의 말을 믿어야할지, 그 진실은 무엇인지 하는 문제는 사실, 논외다. 인간의 시각에 비추어 현실성을 운운하기보다는 어차피 등장인물들이 '야생동물의 세계'에서 빚어진 상상의 인물들이기 때문에 가타부타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늑대가 그렇게 항변하고 있는 신문의 오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지. 아니면 적어도 알고 있다고 생각할걸. 하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비밀을 하나 알려줄게. 사실은 아직 아무도 진짜 이야기는 몰라. 왜냐하면 늑대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는 아무도 들은 적이 없거든."

늑대는 먼저 늑대라는 동물은 토끼나 양이나 돼지 같은 동물들을 잡아먹는 육식동물이라는 것을 명제로 깔아둔다. 그리고 이렇게 사건이 커진 원인은 바로 '재채기와 설탕 한 컵'때문이라고 말한다.

감기에 심하게 걸린 늑대가 할머니의 생일케이크를 손수 만들다가 설탕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웃집에 있는 돼지네 집에 가서 설탕을 빌리기로 한다. 그런데 집이 지푸라기로 되어있어 아주 위태위태해 보였단다. 늑대는 집 앞에서 주인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어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갑자기 재채기가 나와 집을 홀랑 날려 보냈다. 집을 날려 보내고 보니 돼지가 죽어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단다.

"눈앞에 커다란 치즈버거가 있다고 생각해봐. 너희도 그걸 그냥 내버려두지 못할걸."

늑대는 이런 방식으로 둘째 돼지의 집도 재채기로 날려 보내고 그 돼지도 먹어치우게 된다. 그리고 셋째 돼지네 집도 가게 되는데 그 곳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경찰들에게 늑대는 잡힌다.

"나머지는 너희가 알고 있는 대로야"라고 늑대는 말한다.

"신문기자들은 내가 돼지 두 마리를 먹어치웠다는 걸 알아냈어. 그들은 감기에 걸린 늑대가 설탕 한 컵을 얻으러 왔다는 이야기는 독자의 흥미를 끌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코를 벌름거리며 숨을 들이마신 다음, 입김을 세게 불어 집을 부숴버렸다는 이야기를 꾸며낸 거야. 나를 커다랗고 고약한 늑대를 만들었지."

늑대의 이야기가 다소 짜임새가 부족하기는 했지만, 작가의 상상력에서 '아, 이럴 수도 있구나.'하는 여지를 남겨주었기에 필자는 재미있게 글을 읽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신문기자들이 늑대를 '커다랗고 고약한 늑대'로 만들었다는 것에 있다. 사실(fact)을 모두 알리지 않고 꼬랑지를 떼어버리니 늑대는 과실치사가 아닌 의도적 살해를 저지른 범인이 되어버렸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이 많다. 보수언론의 대북 관련 기사들이 대부분 이런 사례가 아닌가 싶다. 아니, 사실을 편집해서 알린다기보다는 없는 사실을 만들어 진실을 왜곡하는 일도 빈번하니 이 그림책에 나오는 신문기자보다 더 하다.

늑대가 고발한 언론! 우리 사회에서도 진실을 왜곡하는 보수 언론이 썩 물러갔으면 한다.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 - 3~8세

존 셰스카 글, 레인 스미스 그림, 황의방 옮김,
보림, 1996

이 책의 다른 기사

늑대는 억울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4. 4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5. 5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