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은 경연을 마친 후 오후의 집무를 뒤로 한 채 일찌감치 퇴청해 집으로 향했다. 최명길의 아우인 최만길은 형이 오는 모습을 보고 마침 잘 됐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가 작은 함을 들고 나왔다.
“형님 오셨습니까? 그런데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경연에서 논쟁이 좀 있었네.”
최명길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며 아내를 불러 관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자리에 정좌했다. 그동안 최만길은 함을 든 채 제대로 말을 걸 핑계를 찾기 위해 최명길의 표정을 살필 뿐이었다.
“그건 무엇이기에 받쳐 들고 있느냐?”
최명길의 말에 최만길은 기다렸다는 듯이 함을 열고 낡은 두루마리를 꺼내 보였다.
“제 식객 중에 안첨지라는 자가 있사온데 귀한 물건을 힘겹게 구했다고 하며 싼 값에 이것을 주더이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라 쓰여 있는지 몰라서….”
최명길은 어처구니가 없어 최만길의 말 중에도 한참 동안 혀를 찼다.
“쯧쯧쯧… 넌 언제나 철이 들려는 게냐! 무엇이라 쓰여 있는지도 모를 두루마리인데 귀한 것인지 하찮은 것인지 어찌 안 단 말이냐!”
형 최명길에 비해 동생 최만길은 학문에 뜻이 없어 집안에서 무시당하는 터였고 성품이 물러 주위에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이 자주 드나들곤 했다. 형 최명길은 이런 동생을 안타깝게 여겨 어리석은 행동을 했을 때는 냉혹하게 꾸짖고는 했다.
“하오나… 형님. 정녕 알 수 없는 노릇 아니옵니까?”
최만길은 엉거주춤 두루마리를 펼쳐 최명길에게 놓아 보였다. 최명길로서도 무슨 글자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보다는 동생의 앞날이 걱정될 뿐이었다.
“정 궁금하다면 내가 알아볼 것인 즉, 놓고 가거라. 그리고 다신 이런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거라.”
넋 빠진 표정을 지으며 나가는 최만길의 뒷모습을 보며 최명길은 한숨을 쉬었다. 더불어 삭아 바스러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낡은 두루마리를 보니 구태의연한 조정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아마 사간원에서 경연의 일을 꼬투리 잡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릴 것이겠지. 김상헌은 본의 아니게 잠시 물러난 것이니 다시 조정에 들어올 터이고….’
최명길은 두루마리를 조심스레 말아 함에 집어넣은 뒤 침상 위에 놓고 낮잠을 청했다.
“네 이놈!”
최명길의 눈앞에 낯모를 노인이 범상치 않은 옷차림을 하고서는 호통을 치고 있었다. 최명길은 그 위엄에 눌려 무엇을 따질 겨를도 없이 서둘러 엎드려 예를 취했다.
“국사가 막중하거늘 신하된 자가 집에 와 낮잠을 자고 있다니! 이러니 이 나라 사직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 작대기 하나 들 힘없는 선비들이 새치 혀만 놀리며 국정을 논하니 참으로 한스럽구나!”
최명길이 식은땀을 흘리며 잘못을 빈 후 고개를 들자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얕은 잠을 자며 꿈을 꾼 것이었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다시 입궐할 채비를 갖추어라.”
최명길의 아내가 의관을 들고 들어와 아직도 식은땀이 마르지 않은 최명길의 얼굴을 보고서는 가슴이 철렁하여 만류했다.
“집에 들어오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입궐이라니요. 게다가 낯빛이 좋아 보이지 않사옵니다. 그냥 쉬소서.”
“아니외다. 내 괜찮으니 어서 의관이나 주시오.”
최명길의 아내는 마지못해 의관을 갖추어 주었고 문지방을 나서려던 최명길은 아우가 가져온 함에 눈길이 멈추었다.
“집에 근본을 알 수 없는 물건이 들었으니 그런 것인가? 허허허.”
최명길의 아내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최명길을 바라보았고 최명길은 두루마리가 든 함을 들어 소맷자락에 넣고서는 다시 대궐을 향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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