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자가 남해로 간 까닭은

이순신을 가슴에 담는 가족여행

등록 2005.01.28 17:44수정 2005.01.2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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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3학년 두 아들 녀석을 데리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남해로 출발.

어제 저녁부터 두 아이는 들 떠 있습니다. 제대로 여행 다녀본 지 오래니 마구 들 떠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집사람이 아는 선배 농장에 일하러 집을 비운 터에 아이들은 겨울방학이라 집에만 있는 것이 아쉬워 제가 제안을 하고 아이들 스스로 계획을 짜서 집을 떠난 것입니다. 우리 여행의 테마는 이순신 장군으로 잡았습니다.

경남 거제도를 한바퀴 돌고 통영 피시방에 앉았습니다. 큰아들은 아빠와 함께 피시방에 한번 앉아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게임을 잘 하는 아빠와 피시방에서 무언의 교감을 하는 것이 부럽다고 했습니다. 그런 아빠는 매일 몇 시간씩 게임을 해도 관용을 베푼다고 하면서 은근히 그러지 않는 아빠를 협박조로 으르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원없이 게임을 해보라고 하고 함께 피시방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사실 피시방에 처음 와 봅니다. 그리 들어올 일도 없기도 하거니와 게임을 잘 못하거든요. 아이들에게 피시는 게임기가 아니라고 누누이 말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요.

한창 열심히 게임에 빠져 있습니다. 옆에 제가 앉아 있는 것만 해도 흐뭇한 모양입니다. 뭐 저도 이런 문화 한번 접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아들 덕분에. 멍석을 깔아놓으니 1시간밖에 하지 않습니다. 컴퓨터가 후졌다나 어쨌다나.

제일 먼저 우리가 찾은 곳은 거제도 박물관을 거쳐 옥포 전승기념관입니다. 옥포대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처음으로 대승을 거둔 곳이지요. 이곳에서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a 이순신이 첫승을 한 옥포앞바다에서. 이 바다는 원균이 패배하여 거북선을 다 잃은 칠천량 바다와 이어져 있다.

이순신이 첫승을 한 옥포앞바다에서. 이 바다는 원균이 패배하여 거북선을 다 잃은 칠천량 바다와 이어져 있다. ⓒ 이우성

옥포는 경치가 뛰어난 곳입니다. 눈과 비가 섞여내려 아름다운 경치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런 대로 한 눈에 조망할 수는 있습니다.

제일 처음 승전을 기록한 곳이긴 하지만 원균이 거북선을 다 잃고 참패를 한 칠천량 바다도 바로 코앞에 있습니다. 그 바닷가에 서니 꼬막을 캐는 아낙네 둘이 도란도란 일에 열중입니다. 바다는 함박눈을 맞으며 옛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거대한 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오늘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영웅은 난세에 태어나는 법인데 그 영웅이 오늘날 다시 새롭게 조명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지금 이 시기를 벗어나려는 심정이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인지도 모르지요.

이순신 장군을 가슴에 담는 작업은 뭐 그리 대단한 작업은 아닙니다. 발자취를 한번 찾아보고 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 분을 대하고 싶었습니다. 성웅이니 영웅이니, 별스런 신격화의 모습을 찾자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바라보면 누구나 다 외로울터. 혼자 삭히고 있을 그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그 분 앞에 서서 위로해 드리고 싶은 조금 엉뚱한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지요.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습니다. 큰 아이는 내 옆자리에 앉아 가이드 역할을 하고 뒷자리에 앉은 작은 아이는 하루 동안 쓴 비용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곳곳에서 접하거나 일어난 일들은 각자가 느낌으로 적어 나중에 정리하기로 했구요.

구두쇠 작은 아이는 벌써부터 점심을 라면으로 떼우거나 굶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놈 구두쇠 작전은 아무도 못 말립니다. 휴게소에서 간단히 점심을 떼우고 저녁은 통영에 나와 싼 농어 한 마리 잡아 함께 웃으며 맛있게 매운탕으로 떼웁니다.

첫날은 값싼 여관방에서 셋이서 손잡고 잤습니다. 옛날 이야기도 해주고 무엇이 요즘 고민인지 들어도 보고, 이렇게 집 떠나 붕 떠 있을 아이들 기분도 한껏 맞춰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처럼 자유롭게 떠난 가족 여행이 우리 땅의 소중함도 알고 서로 옆에 있어 즐거운 가족의 소중함도 느꼈으면 하는 소망도 나누었습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시간이 아까운 우리는 일찍 일어나 통영 부두에 나섰습니다. 부산한 부두의 아침 풍경은 우리의 신발 끈을 졸라매게 합니다. 시장은 항상 삶의 의욕으로 힘솟게 합니다. 갈매기의 비상하는 몸짓과 이제 찬 바다 한가운데 서게 될 통통배의 시동을 들으며 우리도 지난날 게으름을 싹 물리칩니다.

'한국의 베니스'라 불리는 항구도시 통영은 '삼도수군통제영'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이곳 한산도는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근무하던 곳이며, 여수까지 이어지는 한려수도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통영은 조선 수군과 이순신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사당인 충렬사와 이순신이 탄핵을 받아 서울로 끌려가기 전까지 지냈던 한산도 제승당, 전쟁 이후 통제영이 옮겨간 세병관까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a 이순신을 모시는 사당인 통영의 충렬사. 동백이 곱게 피었다.

이순신을 모시는 사당인 통영의 충렬사. 동백이 곱게 피었다. ⓒ 이우성

통영 충렬사에 올라 이순신 장군 사당에 참배하고 곱게 피어난 동백을 가슴에 담고, 바닷길을 뚫은 해저터널도 구경했습니다. 저녁 때 아이들 엄마와 천안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터라 시간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우린 상의 끝에 남해를 생략하고 여수로 곧장 가기로 했습니다.

오는 도중에 만난 고성 공룡박물관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여행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이곳을 테마별로 잘 꾸며 관광단지로 꾸미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잘 구성해 놓아 아이들과 즐겁게, 많이 배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삼천포를 지나 남해고속도로에 올랐더니 아이들은 곯아 떨어집니다. 일찍 길을 나선 때문에 모자란 잠을 실컷 보충하라고 점심시간을 늦춰 이동합니다.

여수화학단지를 지나 흥국사에 잠시 들렀습니다. 고려 명종 때 세운 고찰인데 조선 선조 때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인조 때 중건한 비보 사찰입니다. 비보란 ‘돕고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절이 잘되면 나라가 잘 된다고 하여 국가와 절이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한 사찰입니다.

전쟁이 끝나고(1598년), 그토록 그를 미워하던 선조의 명으로 세운 충민사는 여수 마래산 기슭에 있습니다. 잘 가꾸어 놓았는데 큰 도로에서 들어가는 입구가 좀 비좁습니다. 선조 34년(1601) 체찰사 이항복이 왕명을 받아 임진왜란이 끝난 뒤의 민심을 살펴본 후 통제사 이시언에게 명하여 건립한 것입니다.

선조가 직접 이름을 짓고 그것을 새긴 현판을 받음으로써 이충무공과 관련한 최초의 사당이 되었는데, 통영의 충렬사보다는 62년, 숙종 30년(1704)에 세워진 아산의 현충사보다는 103년 전의 일입니다.

근처에 있는 진남관은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해인 1599년, 충무공 이순신 후임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시언이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것을 진해루 터에 세운 75칸의 대규모 객사입니다. 객사는 성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관아와 나란히 세우는 중심 건물로, 지방 관리들이 임금을 가까이 모시듯 선정을 베풀 것을 다짐하던 곳입니다.

조선 후기 전라좌수영 내에는 600여 칸으로 구성된 78동(棟)의 건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진남관만 유일하게 남았습니다.

a 세 남자가 현충사 앞에서 참배를 마치고.

세 남자가 현충사 앞에서 참배를 마치고. ⓒ 이우성

여수 오동도에서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길가에 동백꽃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자목련도 움을 틔울 생각인지 망울망울 곧 터질 기세입니다. 아이들은 회덮밥과 초밥을 맛있게 먹습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나요.

오동도에서 돌산대교로 건너갑니다. 아치가 화려한 돌산대교를 지나자마자 실제 거북선과 똑같은 크기로 바다 위에 거북선 모형이 떠있습니다. 개인이 관광객을 위해 만들었다는데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봅니다. 내부를 실제와 같이 만들어 놓고 인형모형으로 사람까지 만들어놓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와 돌산대교를 돌아나오니 풍물 어시장이 보입니다.

함께 오지 못한 엄마에게 선물을 사자는 내 제안에 아이들도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둘에게 5천원을 주고 사고 싶은 거 사오라 하니 머뭇머뭇 한참만에 나오는 아이들 손에 떡이 들려 있습니다. 꿀떡과 떡국 떡입니다. 값 비싸지 않은 것으로 함께 나누어 먹을 것으로 사는 아이들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집니다.

이제부터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천안으로 달립니다. 작은아이는 잠이 들었고 큰아이와 이번 여행의 의미를 나눕니다.

이순신이 지금 살아있으면 성웅이니, 영웅이니 신격화하여 맘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고 내가 얘기했습니다. 아이는 효심 많은 이순신 장군이 노모를 자신의 근무지까지 모셔올 정도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무명의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하였던 유성룡, 이순신이 하옥되었을 때 구명 운동을 하였던 정경달, 이순신의 수군을 지원하며 후원하였던 한효순, 옥중의 이순신을 극력으로 구원하여 죽음을 면하게 하였던 정탁, 그리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장렬하게 싸우다가 죽었던 수많은 조선의 수군들이 아니었으면 이순신 장군이 시대의 어려움을 구출한 큰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세상을 살면서 드러난 모습보다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눈길, 손길을 보내자는 얘기를 해봅니다.

a 이순신의 묘소. 겨울이라 인적은 드물고 햇살만 가득 내려앉았다.

이순신의 묘소. 겨울이라 인적은 드물고 햇살만 가득 내려앉았다. ⓒ 이우성

많은 시간동안 아들과 얘기를 합니다. 가장 감동 깊게 읽은 책도 서로 나눕니다. 아이는 <삼국지>보다 더 감명 깊었다는 <초한지>에서부터 <그리스 로마신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등 여러 책들을 줄줄이 읊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이의 독서열에 불이 붙었습니다.

드디어 천안에 도착합니다. 엄마와 며칠 안 본 탓인지 서로 부비며 정을 나눕니다. 차안에서 상의한 끝에 찜질방으로 가자고 결론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산 근처 찜질방을 뒤진 끝에 온양온천으로 가서 한 찜질방에 들어갑니다.

생전 처음 그런 곳에 갔습니다. 우선 남녀 각자 사우나에서 목욕재계하고 찜질방에서 만났습니다. 돗자리 하나 깔고 아이들이 사온 꿀떡을 나눠 먹습니다. 꿀맛입니다. 그곳 대나무방에서 꿀맛처럼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마지막 코스로 현충사와 이순신 장군 묘소 참배가 남았습니다. 아침 맑은 공기 코끝에 담으며 현충사를 산책하듯 돌아봅니다. 넓고 잘 단장된 이곳은 남녘에서 조금 덜 손질된 이순신 사당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남쪽에서 만난 풍경들이 더 살갑게 다가오는 것은 왜인지.

마지막 이순신 장군 묘소에서는 모두 좀 길게 고개 숙여 참배를 합니다. 아이들 가슴에 이순신이라는 시대의 영웅이 어떻게 자리매김될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한 인물에 대해 여행 내내 생각해가며 지역을 다닌다는 것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정을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부쩍부쩍 자라 생각이 굵어지고 있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이 땅에 사는 고마움에 마음도 쓸 것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 이름 없이 역사에서 사라져 갔지만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화려한 역사의 한 페이지도 없다는 작은 깨달음도 있을 것입니다.

이순신의 외로움, 영웅의 외로움은 시간이 흘러도 그를 찾는 후대 사람들 덕분에 가셔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산 당대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이름 없는 장수와 수군들이 그의 뜻을 세워 함께 했을 것이기 때문에 외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겨울 남녘을 주마간산 격으로 돌아 다시 내 살던 중부지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세찬 눈보라도 맞고 비도 맞고 따뜻한 햇살도 마음껏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은 지금 남녘에서부터 꽃소식이 무색의 물에 잉크 퍼지듯 서서히 올라오고 있는 중입니다.

이 겨울 지나면 봄이 올 것을 믿어도 좋겠습니다.

a 남쪽에서 만난 동백, 이제 곧 꽃소식은 바람결에 북으로 북으로 올라올 것을 믿어도 좋다.

남쪽에서 만난 동백, 이제 곧 꽃소식은 바람결에 북으로 북으로 올라올 것을 믿어도 좋다. ⓒ 이우성

덧붙이는 글 | 모처럼 떠난 가족여행입니다. 관광지 나열보다는 가족이 함께 보낸 시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아이들 속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구요. 지금 한창인 이순신 논쟁은 인간적인 면모를 볼라치면 별 것도 아닌 것 아닐까 합니다. 영웅의 신격화된 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본다는 것, 그건 우리와 똑같은 한 사람의 삶을 보는 것이 아닐까요. 잘 본다면 겨울밤, 홍시맛처럼 맛깔나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모처럼 떠난 가족여행입니다. 관광지 나열보다는 가족이 함께 보낸 시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아이들 속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구요. 지금 한창인 이순신 논쟁은 인간적인 면모를 볼라치면 별 것도 아닌 것 아닐까 합니다. 영웅의 신격화된 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본다는 것, 그건 우리와 똑같은 한 사람의 삶을 보는 것이 아닐까요. 잘 본다면 겨울밤, 홍시맛처럼 맛깔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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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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