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 구경, 정말 재미있습니다

등록 2005.01.31 11:03수정 2005.01.3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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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직장 생활을 하는 이곳 음성은 아직도 5일장이 섭니다. 2일과 7일이 장날인데 장날이 되면 장구경을 가끔씩 나가 봅니다. 시골장이 다 그저 그런 모습이겠지만, 도시에서 대형 마트나 상설시장을 이용하다가 시골 5일장의 모습을 보면 어린 시절 엄마손을 잡고 장구경을 나섰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a 장구경 나온 아이들이 강아지와 놀고 있습니다.

장구경 나온 아이들이 강아지와 놀고 있습니다. ⓒ 전향화

여전히 음성장 날엔 우리 어린시절의 장처럼 먹을거리, 구경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싸구려 물건들도 많구요. 저는 대형마트도 쇼핑몰도 이용해 보지만 이곳처럼 마음 편하고 재밌게 쇼핑을 하지는 않습니다.

고급 백화점에 들어서서 가격에 기가 눌리는 물건들보다 내 지갑 사정에 맞는, 어떤 것은 우스운 가격의 물건들이 저의 마음을 편하게 하나 봅니다. 몇 십만원씩하는 고급 핸드백보다는 장날 살 수 있는 9천원하는 핸드백이 편한 것을 보면 영락없는 촌놈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긴 큰 쇼핑몰을 돌아다니다 출구를 잘 찾지 못하는 저에게는 아주 단순한 '-자형 5일장' 구조가 아주 딱 맞습니다.

a 겨울 동안 강아지가 훌쩍 커버렸습니다.

겨울 동안 강아지가 훌쩍 커버렸습니다. ⓒ 전향화

날씨가 따뜻해지면 음성장엔 강아지와 토끼, 고양이들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모여서 강아지와 노는 것을 보니 따뜻해지긴 한 모양입니다. 하긴 상인들도 훨씬 여유있어 보이고 시장에 나온 사람들도 바쁘게 필요한 건만 얼른 사서 가야겠다는 태도로 어깨를 움츠리고 걷기보다 아주 천천히 이것 저것 구경을 하며 움직입니다.

겨울 동안 강아지가 너무 많이 커 버려서 아주 작고 귀여운 강아지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강아지 2만원, 토끼가 만원이라고 하네요. 조금 더 따뜻한 봄이 오면 병아리와 오리새끼가 나옵니다. 얼마나 예쁜지…. 노란 모습이 봄에 피는 개나리와 민들레같습니다. 어쩜 어린 눈망울은 꽃보다 더 예쁜지도 모르겠습니다.

a 후추향이 솔솔~. 금방 맷돌에 갈아 드립니다.

후추향이 솔솔~. 금방 맷돌에 갈아 드립니다. ⓒ 전향화

구정을 앞둔 장을 대목장이라고 합니다. 후추를 맷돌에 돌돌 갈아서 팔고 있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병에 든 후추는 향이 이 후추만 못 합니다. 설날 떡국에 뿌려 먹으면 좋다고 하십니다.


a 도장 파는 아저씨

도장 파는 아저씨 ⓒ 전향화

후추 파는 아저씨가 옆에 있는 도장 파는 아저씨를 꼭 찍으라고 하십니다. 20년 넘게 한다면서…. 아저씨는 나는 찍지 말고 골판지에 써 놓은 문구가 중요하니까 꼭 찍으라고 하십니다. 가격은 보통 막도장의 50%입니다.

a 동태 포를 뜨기위해 껍집을 벗기는 모습

동태 포를 뜨기위해 껍집을 벗기는 모습 ⓒ 전향화

명절을 앞둔 장에서 어머니들이 꼭 하는 일이 있는데 동태포를 뜨는 일입니다. 제사상에도 올리고 맛있는 전을 식구들에게도 먹이기 위해서인데, 5000원에 3마리를 주면서 포 뜨는 값은 (원래 따로 받아야 하지만) 따로 받지 않으신답니다.


a 소금과 후추를 뿌려 밀가루와 계란을 묻혀 전을 부치면 맛있습니다.

소금과 후추를 뿌려 밀가루와 계란을 묻혀 전을 부치면 맛있습니다. ⓒ 전향화

장날엔 천막 안에서 파는 순대국밥과 막걸리가 정말 맛있습니다. 그외에 호떡, 튀밥(아직도 "펑"소리를 내며 튀겨대는데 요즘은 펑소리 내기 전에 아저씨가 호르라기를 크게 불어서 사람들이 놀라는 것을 방지합니다), 기타 먹을 것이 매우 많은데 몇 천원만 있으면 군것질로 기분이 흐뭇해집니다.

a 맛있어 보이죠? 4개에 천원입니다.

맛있어 보이죠? 4개에 천원입니다. ⓒ 전향화


a 없는 게 없습니다.

없는 게 없습니다. ⓒ 전향화


a 치수만 맞는다면 횡재하는 거겠죠?

치수만 맞는다면 횡재하는 거겠죠? ⓒ 전향화

이 신발은 제 가격에 팔다가 치수가 많이 빠져서 아주 싸게 파는 신발입니다. 운좋게 맞는 치수를 고르면 1,2 만원은 번 기분입니다.

a 잘 찾으면 예쁜 양말이 500원

잘 찾으면 예쁜 양말이 500원 ⓒ 전향화

500원하는 양말을 어떻게 신을까? 할 수도 있지만 그런 대로 품질이 좋아서 한 계절은 넉넉히 버텨줍니다.

이렇게 시장을 돌다보면 까만 비닐 봉지에 이것 저것, 두 손에 가득합니다. 아이들 양말과 어머니 털신, 간식으로 옥수수 튀밥 한 봉지, 찬거리, 이렇게 들고 저녁에 현관을 들어서면 어머니와 아이들이 봉지를 뒤집니다. 아마 보물 찾는 기분일 것 같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저는 행복해집니다. 제가 돈을 벌어서 가족들에게 뭔가 사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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