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말 퇴임 후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해 상경길에 장성 백양사에 들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그리고 김한정 비서관(이 여사 오른쪽).오마이뉴스 김당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을 이끌어온 김한정 비서관이 김 전 대통령 곁을 떠난다. 그동안 미루어온 학업(박사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김 비서관은 오는 2월 4일 미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18년 동안 김 전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보좌해온 소회를 담은 e-메일을 지인들에게 보냈다.
김 비서관은 e-메일에서 우선 "대통령님은 퇴임하신 첫해에 몸도 마음도 많이 아프셨다"면서 "재임기간의 누적된 과로 때문에 초췌하신 모습으로 사저로 돌아왔고 일생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와 건강이 악화되었고 결국 입원까지 하셨다"고 퇴임 첫해를 회고했다.
"6·15 3주년은 우울했지만, 이듬해의 4주년은 성대했다"
김 비서관은 특히 "대북송금 특검 정국은 큰 고통이었다"면서 "업적이 훼손되고 명예가 실추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 아니라 분단 50년 증오와 적대로 이어온 남북관계를 이제 겨우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물꼬를 바꿔 놓았는데, 이 공든 탑이 무너지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절박감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이때는 박지원 전 비서실장의 구속까지 겹쳐 정치적으로도 곤경에 처해 비서실의 전체 분위기가 침울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무렵 김한정 비서관에게 "장래가 창창한 젊은 사람이 괜히 나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며 "다른 할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내 곁을 떠나도 좋다"고 말해, 김 비서관은 "왜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시냐"며 함께 눈시울 붉힌 일도 있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얼마 안가 병석을 훌훌 털고 일어났다. 아니 북한핵 등 어려운 시국이 김 전 대통령의 '자리보전'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김 비서관의 지적대로 "특검은 결코 햇볕정책과 6·15 공동선언을 좌절시키지 못했다". 김 비서관은 "오히려 국민의 여론이 6·15를 사면 복권시켰다"면서 "그래서 6·15 3주년은 우울했지만, 이듬해의 2004년의 4주년은 성대했다"고 회고했다.
김 비서관은 "특검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초라해졌고, 6·15 남북공동선언은 부활했으며 참여정부는 햇볕정책의 계승을 다짐했다"면서 "북측 대표가 참석해서 6·15 정신으로 협력해 나가자고 강조했으며 야당 대표도 참석해서 남북정상회담은 역사적 결단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김대중도서관이 6·15 남북 정상회담 4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국제토론회에 노무현 대통령과 리종혁 북한 조평통 부위원장, 그리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이 참석해 축사를 한 것을 가리킨다.
김 비서관은 또 "한편 정치 일생을 두고 이끌어온 민주 정당이 쪼개지는 아픔도 목격하셨다"면서 김 전 대통령이 정치 불간여 약속을 지켜낸 것에 대한 소회도 털어놓았다.
김 비서관은 "'도와 달라, 한 말씀만 해주시라'는 간곡하고 거듭된 요청에 끝까지 응하지 않았고 정치 불관여 약속을 지켰다"면서 "그래서 정파를 초월해서 모든 정치인의 귀감과 사표가 되셨다"고 썼다. 김 비서관은 "어떤 언론인은 '지난 총선의 진정한 승리자는 김 전 대통령이시다'라고 썼다"고 소개했다.
김 비서관은 이어 "그래서 2004년 지난해에는 더 이상 아프시지 않으셨다"면서 "몸을 완전히 회복하셔서 과거의 얼굴과 목소리를 찾으셨다"고 회고했다.
"2004년 지난해에는 더이상 아프시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