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여론이 특검이 구속한 6·15를 사면 복권시켰다"

DJ 18년 '그림자 보좌' 김한정 비서관의 사임 e-메일

등록 2005.01.29 17:06수정 2005.01.2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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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말 퇴임 후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해 상경길에 장성 백양사에 들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그리고 김한정 비서관(이 여사 오른쪽).
지난해 10월말 퇴임 후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해 상경길에 장성 백양사에 들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그리고 김한정 비서관(이 여사 오른쪽).오마이뉴스 김당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을 이끌어온 김한정 비서관이 김 전 대통령 곁을 떠난다. 그동안 미루어온 학업(박사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김 비서관은 오는 2월 4일 미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18년 동안 김 전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보좌해온 소회를 담은 e-메일을 지인들에게 보냈다.

김 비서관은 e-메일에서 우선 "대통령님은 퇴임하신 첫해에 몸도 마음도 많이 아프셨다"면서 "재임기간의 누적된 과로 때문에 초췌하신 모습으로 사저로 돌아왔고 일생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와 건강이 악화되었고 결국 입원까지 하셨다"고 퇴임 첫해를 회고했다.

"6·15 3주년은 우울했지만, 이듬해의 4주년은 성대했다"

김 비서관은 특히 "대북송금 특검 정국은 큰 고통이었다"면서 "업적이 훼손되고 명예가 실추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 아니라 분단 50년 증오와 적대로 이어온 남북관계를 이제 겨우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물꼬를 바꿔 놓았는데, 이 공든 탑이 무너지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절박감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이때는 박지원 전 비서실장의 구속까지 겹쳐 정치적으로도 곤경에 처해 비서실의 전체 분위기가 침울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무렵 김한정 비서관에게 "장래가 창창한 젊은 사람이 괜히 나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며 "다른 할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내 곁을 떠나도 좋다"고 말해, 김 비서관은 "왜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시냐"며 함께 눈시울 붉힌 일도 있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얼마 안가 병석을 훌훌 털고 일어났다. 아니 북한핵 등 어려운 시국이 김 전 대통령의 '자리보전'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김 비서관의 지적대로 "특검은 결코 햇볕정책과 6·15 공동선언을 좌절시키지 못했다". 김 비서관은 "오히려 국민의 여론이 6·15를 사면 복권시켰다"면서 "그래서 6·15 3주년은 우울했지만, 이듬해의 2004년의 4주년은 성대했다"고 회고했다.

김 비서관은 "특검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초라해졌고, 6·15 남북공동선언은 부활했으며 참여정부는 햇볕정책의 계승을 다짐했다"면서 "북측 대표가 참석해서 6·15 정신으로 협력해 나가자고 강조했으며 야당 대표도 참석해서 남북정상회담은 역사적 결단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김대중도서관이 6·15 남북 정상회담 4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국제토론회에 노무현 대통령과 리종혁 북한 조평통 부위원장, 그리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이 참석해 축사를 한 것을 가리킨다.


김 비서관은 또 "한편 정치 일생을 두고 이끌어온 민주 정당이 쪼개지는 아픔도 목격하셨다"면서 김 전 대통령이 정치 불간여 약속을 지켜낸 것에 대한 소회도 털어놓았다.

김 비서관은 "'도와 달라, 한 말씀만 해주시라'는 간곡하고 거듭된 요청에 끝까지 응하지 않았고 정치 불관여 약속을 지켰다"면서 "그래서 정파를 초월해서 모든 정치인의 귀감과 사표가 되셨다"고 썼다. 김 비서관은 "어떤 언론인은 '지난 총선의 진정한 승리자는 김 전 대통령이시다'라고 썼다"고 소개했다.

김 비서관은 이어 "그래서 2004년 지난해에는 더 이상 아프시지 않으셨다"면서 "몸을 완전히 회복하셔서 과거의 얼굴과 목소리를 찾으셨다"고 회고했다.

"2004년 지난해에는 더이상 아프시지 않으셨다"

지난해 6.15 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에서 나란히 앉아 리종혁 북한 조평통 부위원장의 축사를 경청하는 김대중-노무현 전현직 대통령.
지난해 6.15 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에서 나란히 앉아 리종혁 북한 조평통 부위원장의 축사를 경청하는 김대중-노무현 전현직 대통령.오마이뉴스 김당
기력을 되찾은 김 전 대통령은 유럽을 두차례 방문하여 OECD, WHO, 노벨연구소, 노벨평화상 수상자 국제회의 등에서 연설한 바 있다. 그때마다 수행했던 김 비서관은 "가시는 곳마다 최고의 존경과 예우를 받으셨고, 세계는 김 대통령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다"고 전했다.

김 비서관은 "해외를 방문하면, 김 대통령 곁에 서면 얼마나 뿌듯해지는지를, 우리 대통령님께서 대한민국의 위신을 얼마나 높여 놓으셨는지를 더욱 잘 알게 된다"면서 "북유럽의 한 현직 총리는 자신이 퇴임하면 김 대통령님과 같이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김 비서관은 이어 "더욱 고무적인 것은 국내에서도 이런 여론이 우리 국민 사이에 자리 잡게 되었다는 사실"이라면서 "퇴임 대통령의 업적을 정당히 평가하고 칭찬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우리 역사에 미처 보지 못한 현상이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김 비서관은 "이런 대통령님을 재임기간 동안에, 그리고 퇴임해서도 지금까지 미력이나마 조력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이고 보람이었다"면서 "그동안 이리저리 기웃거리지 않고 김 대통령님 곁에서 배우고 심부름할 수 있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진다"고 밝혔다.

김 비서관은 경남 마산 출신으로 지난 87년 김대중 대통령후보와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줄곧 비서실과 부속실 등 지근거리에서 김 전 대통령을 보좌해왔다. 김 전 대통령의 재임중 청와대 부속실장을 지낸 김 비서관은 대통령 퇴임후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대북송금 특검수사로 비서실장 역할을 못함에 따라 사실상 비서실장 역할을 해왔다.

다음은 김한정 비서관이 보낸 e-메일의 전문이다.

비서실을 떠나면서 인사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미루어온 학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2월 4일 미국으로 떠납니다. 일일이 인사드리지 못하고 떠나 미안한 심정입니다. 제 소회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통령님이 퇴임하신 지도 벌써 2년이 되어 갑니다. 대통령님은 퇴임하신 첫해에 몸도 마음도 많이 아프셨습니다. 재임기간의 누적된 과로 때문에 초췌하신 모습으로 사저로 돌아왔습니다. 일생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와 건강이 악화되었고 결국 입원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가호와 대통령님의 의지, 그리고 의료진의 헌신적인 치료로 잘 이겨내셨습니다.

대북송금 특검 정국은 큰 고통이었습니다. 업적이 훼손되고 명예가 실추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분단 50년 증오와 적대로 이어온 남북관계를 이제 겨우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물꼬를 바꿔 놓았는데, 이 공든 탑이 무너지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절박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특검은 결코 햇볕정책과 6·15 공동선언을 좌절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국민의 여론이 6·15를 사면 복권시켰습니다. 그래서 6·15 3주년은 우울했지만, 이듬해의 2004년의 4주년은 성대했습니다. 특검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초라해졌고, 6·15 남북공동선언은 부활했습니다. 참여정부는 햇볕정책의 계승을 다짐했습니다. 북측 대표가 참석해서 6·15 정신으로 협력해 나가자고 강조했습니다. 야당 대표도 참석해서 남북정상회담은 역사적 결단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정치 일생을 두고 이끌어온 민주 정당이 쪼개지는 아픔도 목격하셨습니다. '도와 달라, 한 말씀만 해주시라'는 간곡하고 거듭된 요청에 끝까지 응하지 않았고 정치 불관여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정파를 초월해서 모든 정치인의 귀감과 사표가 되셨습니다. 어떤 언론인은 "지난 총선의 진정한 승리자는 김 전 대통령이시다"라고 썼습니다.

김대중도서관이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열었습니다. 세계 30여 개국의 전직 현직 정상들과 노벨 관계자들이 진심 어린 축하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현직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모두 참석해서 축하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성공한 전직 대통령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대통령의 업적과 사상을 연구하고 기리는 대통령도서관을 갖게 된 것입니다. 외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대통령, 분단 50년만에 처음으로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기틀을 만든 대통령, 일생을 인권과 민주화, 화해와 평화를 위해 바친 노벨평화상 수상자 대통령을 만나러 세계에서 김대중도서관으로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2004년 지난해에는 더이상 아프시지 않으셨습니다. 몸을 완전히 회복하셔서 과거의 얼굴과 목소리를 찾으셨습니다. 유럽을 두차례 방문하여 OECD, WHO, 노벨연구소, 노벨평화상 수상자 국제회의 등에서 연설하셨습니다. 유럽 정상들을 만나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역설했습니다. 중국과 말레이시아를 가서 동아시아 협력체의 원대한 꿈과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가시는 곳마다 최고의 존경과 예우를 받으셨고, 세계는 김 대통령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해외를 방문하면 더욱 잘 알게 됩니다. 김 대통령 곁에 서면 얼마나 뿌듯해지는지를. 우리 대통령님께서 대한민국의 위신을 얼마나 높여 놓으셨는지를. 북유럽의 한 현직 총리는 자신이 퇴임하면 김 대통령님과 같이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도서관 헌정식에 참석한 저에게 '내가 김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햇볕정책이 올바른 길이었음은 세월이 갈수록 자명해질 것이고 김 대통령의 용기는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시라크 대통령은 편지에 썼습니다. 이 말은 이제 어느 나라를 가도 듣게 되는 평가입니다. 비단 해외만이 아닙니다. 평양과 금강산을 방문해 본 사람들은 북측 동포들이 김 대통령님을 어떻게 여기는지 아실 것입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국내에서도 이런 여론이 우리 국민 사이에 자리 잡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햇볕정책을 비롯한 김 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 비판적이던 국내의 일부 정치권도 태도를 대전환했다는 것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김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원로로서, 그 말씀을 듣고 싶은 어른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밀려드는 언론사들의 회견 요청과 대학과 유명단체들의 강연 요청이 이를 입증해 줍니다. 퇴임 대통령의 업적을 정당히 평가하고 칭찬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우리 역사에 미처 보지 못한 현상입니다. 언론은 기록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전직대통령 문화를 바꿔놓았다"고.

이런 대통령님을 재임기간 동안에, 그리고 퇴임해서도 지금까지 미력이나마 조력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이고 보람이었습니다. 이런 대통령님 곁을 떠나게 되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제가 미국 유학행을 결심한 데에는 두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간 학위 논문에 진척이 없어 마무리를 위해서는 당분간 학업에만 전념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세계 흐름에 대한 안목도 넓히고 자신을 재충전을 해야 할 필요성도 절감했습니다. 과거에 다니던 미국의 대학에서 선뜻 기회를 주었습니다. 앞으로 일 이년 동안, 사회주의 붕괴 이후 지난 10여 년간 북한이 체제유지를 위해 취한 대내외 정책과 그 변화의 동인에 대해 연구할 생각입니다.

둘째는, 이제 비서실이 안정되어 개개인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운영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비서실에는 실력 있고 헌신적인 비서분들이 계시고, 의욕적인 도서관장이 새로 부임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위안이 됩니다. 대통령님께서 부족한 제게 비서실을 이끄는 과분한 임무를 주셨는데, 다행히도 지난 2년간 큰 과오 없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동료 선후배 여러분들의 협력과 지원이 없었다면 어찌 가능하였겠습니까?

저는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선생님과 처음 인연을 맺고 그 후 비서로 입문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력서에 '비서' 외에는 별로 써넣을 경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이리저리 기웃거리지 않고 김 대통령님 곁에서 배우고 심부름할 수 있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실수도 많이 하고 일을 잘못 처리했을 때에도 대통령님께서는 큰 질책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할 일이 많은데…" 하시면서도 유학을 허락해 주신 대통령님께 더욱 존경과 감사의 뜻을 품게 됩니다. 아무쪼록 대통령님, 여사님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퇴임 이후에도 민족의 안녕을 노심초사하시고 평화를 위해 쉼 없이 노력하시는 두 분을 지켜보면서 절로 머리 숙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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