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체 게바라'가 가장 잘 팔린다

[세계사회포럼] 축제와 상업화의 빛과 그림자

등록 2005.01.30 07:23수정 2005.01.3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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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세계사회포럼이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계속 열리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모임보다는 하나의 상품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포럼 행사장 앞에 자리잡은 노점상들.

세계사회포럼이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계속 열리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모임보다는 하나의 상품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포럼 행사장 앞에 자리잡은 노점상들. ⓒ 오마이뉴스 김영균

"아구아(AGUA)! 아구아! 웅 헤알레"(물, 물 팝니다. 1헤알.)

29일 오후, 브라질의 십대 소년들이 포르토 알레그레의 리오 과이바(Rio Guaiba) 강변을 따라 늘어선 흰 천막 노점상들 사이에서 손님을 부르면서 목청을 높이고 있다. 붉은 런닝셔츠에 핫팬츠를 입고, 낡은 샌들을 신은 두 소년의 손에는 가게에서 흔히 파는 작은 생수통이 들려 있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브라질 날씨는 매우 더웠지만, 여러 개의 생수통이 담긴 소년들의 아이스박스를 찾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주변에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중년의 여자와 수염을 기른 노인 등 대여섯 명이 벌써 생수와 맥주를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로 생수 파는 자리를 잡으려는 또 다른 남자가 손수레에 아이스박스를 담아 끌고 있다.

브라질 세계사회포럼 개막 나흘째. 매일 수십개의 포럼이 동시에 열리고 있는 리오 과이바 강변에는 크고 작은 노점상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거대한 시장을 이루고 있는 중이다. 포럼 첫날부터 조금씩 몰려들기 시작한 노점상들은 이제 너무 많이 늘어나, 뒤늦게 온 사람은 물건 팔 자리를 잡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파는 물건도 셀 수 없이 많다. 낡은 포르투갈어 서적에서부터 브라질 공산당 팸플릿, 선글라스, 전통음식, 수공예품, 티셔츠와 옷가지, 모자, 코코아…. 이 중에서도 물과 맥주가 가장 잘 팔리고 이를 파는 노점도 제일 많다. 더운 날씨 탓이다.

"브라질 세계사회포럼은 이제 확실한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됐다."

한국에서 온 한 참가자는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네 번째로 열리는 세계사회포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장사치들로 가득 찬 행사장을 둘러보면, 그의 말도 틀리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축제도 좋지만... 지나친 '관광 상품화' 고민

세계사회포럼이 관광 상품화 돼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은 장사치들뿐만이 아니다. 포럼 참가자들도 절반의 목적은 관광과 축제를 즐기기 위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a 브라질 전통무예 시범을 구경하는 포럼 참가자들.

브라질 전통무예 시범을 구경하는 포럼 참가자들. ⓒ 오마이뉴스 김영균

세계사회포럼 사무국의 추정대로라면, 행사가 끝나는 1월 31일까지 포르토 알레그레에는 연인원 10만명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사무국에 등록한 수만명의 포럼 참가자들 중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리오 과이바 강변에 텐트촌을 이뤄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낮 시간 자유롭게 자신들이 원하는 포럼과 행사에 참가하면서도 남는 시간과 저녁에는 일광욕이나 축제를 즐긴다. 강변의 대형 무대와 텐트촌 입구의 잔디밭에서는 매일 저녁 브라질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공연이나 연극 공연이 열리고, 참가자들은 공연을 보며 맥주를 마시거나 춤을 춘다. 포럼과 관계가 없어 보이는 브라질 젊은이들도 밤이 되면 강변으로 몰려든다.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브라질 정부의 배려도 대단하다. 브라질 정부는 세계사회포럼 기간 동안 수백명의 경찰을 배치해 행사 현장을 관리하고, 매시간 화장실과 쓰레기를 치울 정도로 위생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브라질 정부가 이처럼 세계사회포럼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단순히 현 정부가 '좌파'이기 때문만은 아닌 듯 하다. 10만여명의 참가자들이 행사 기간 동안 뿌리고 가는 돈만 해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에서는 브라질에서 열리는 세계사회포럼의 '상업화'에 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미 나오고 있다. 이는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기치를 내걸고, 무자비한 자본의 세계화를 막기 위해 시작한 포럼이 단지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다른 문제도 있다. 매년 브라질에서 개최된 탓에 포럼이 대부분 브라질과 남미 국가들의 문제로 집중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은 올해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올해 포럼에서는 영어권 참가자들을 위한 통역조차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고, 안내문과 포스터 역시 대부분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로 만들어졌다.

이런 문제점들은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비판("논의는 활발하지만, 구체적 행동이 없다")과 맞물리면서,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찾는 전세계 활동가들이 풀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현재 세계사회포럼 내부에서는 상업화나 특정 지역에 대한 집중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개최지를 바꾸자는 얘기가 나온다. 또 2년에 한번씩 개최하는 방안이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

'체'의 삶은 여전히 추앙되다

a 체를 비롯한 혁명가들의 초상은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다.

체를 비롯한 혁명가들의 초상은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하지만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세계사회포럼의 앞날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보인다.

세계사회포럼에서 '물'과 함께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은 체 게바라와 레닌, 엥겔스 등 혁명가들의 얼굴이다.

'체'의 얼굴을 담은 티셔츠와 책자, 사진 등은 거리 곳곳에서 포럼 참석자들에게 팔리고 있다. 포럼 행사장 어디서나 '체'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다.

이는 혁명가들조차 상품의 하나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체'와 같은 혁명가들의 정신과 사상이 여전히 인기가 있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다. 아울러 그들의 삶이 전세계 활동가들에게 아직도 추앙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포럼 참가자들도 단순히 놀고먹는 축제를 즐기지 만은 않는다. 참가자들의 공연과 갖가지 분장은 반전과 평화, 인권 등 자신들의 주장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아울러 많은 참가자들은 문화 공연을 좋아하면서도 매일 다른 장소에서 열리는 갖가지 포럼에 능동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국적과 관심사에 관계없이 모든 회의에서 적극적인 발언권을 얻고, 활동가들의 연대와 행동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사회포럼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은 것은, 포럼을 이끌어 가는 활동가들 스스로가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아시아민중회의'에 참석해 쓰나미 피해국가에 대한 지원을 호소한 한 태국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시간이 없다고 덮어 둘 순 없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행동할 때이다."

국내 활동가들 "정신대 문제 해결·이라크 침공 반대"

▲ WSF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 중단을 호소하고 있는 다함께 활동가들.
26일부터 열리고 있는 세계사회포럼에는 국내 정당과 시민단체, 노총 등 활동가 120여명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양대 노총, WTO반대국민행동 등 단체 소속 50여명은 지난 28일 홍콩과 태국, 말레이시아, 일본 등 아시아 각국 활동가들을 모아 '아시아민중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남아시아 쓰나미 피해국가의 지원 문제가 적극적으로 논의됐다. 민주노동당 등은 31일 아시아 각 단체들과 함께 전쟁과 세계화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 민주노동당 등은 이와 별도로 정신대 문제 해결과 아시아 각국간의 WTO 체결을 저지하기 위한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 정신대 피해 여성들의 자료를 준비해 행사장에서 전시하고 있으며, 포럼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백만인 서명도 받고 있다.

국내 반전운동단체인 '다함께'도 70여명이 참석해 반전 운동을 펼치고 있다.

다함께 활동가들은 이라크 침공 2주년이 되는 3월 19일과 21일, 전세계 주요도시에서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집회를 개최하자고 호소하는 중이다.

현역 의원으로는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심 의원은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하면서 브라질 집권당인 노동자당 의원들을 만나 교류 방안을 논의하고 28일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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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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