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대한민국을 꿈꾸는 행복콩, 노무현의 인생 고백

<여보, 나좀 도와줘>를 읽고

등록 2005.01.30 10:15수정 2005.01.3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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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만에 가까운 다양한 마음, 색깔을 뿌려 5년여 기간 동안 공들여 그린 아름다운 그림을 상상해 본다. 보는 사람이 “어떤 배경을 지닌 종족이냐?”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행복케 하는 아름다운 작품.

한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선물하기 위해, 아크릴 물감을 재료로 밤을 지새워 그림(예수님이 어린 양을 안고 있는 모습)을 완성한 적이 있다.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 며칠 동안 공을 들여 완성한 그림은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떨리는 마음으로, 당시 유행하던(?) 조그만 ‘독서대’와 함께 그 작품(?)을 한 여고생에게 건넸다.

“그냥 졸업(고등학교) 선물로 주는 거야, 받으소. 내가 직접 그렸네.”

그림에는 그린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법. 만약 그림 하나 속에 담긴 어떤 예술가의 마음까지 읽어내, 그림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넘어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다면, 그는 그림을 제대로 본 사람일 게다.

책을 통해 한 사람을 읽고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 그림을 감상하듯, 가까이에서 또는 멀리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살핀다면, 편견을 해체하고 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꿈꾸는 사람, 비전을 그리는 사람, 인간 노무현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여보, 나좀 도와줘>라는 책을 들었다. 몇 권의 저서 가운데서 무엇을 읽을까 생각하다 눈길을 끄는 제목을 고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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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좀 도와줘> ⓒ 새터

1994년 세상에 얼굴을 내민 책이니,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대통령 당선을 포함해 더 실토할(?) 고백들도 왕창 늘었을 것이다.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에 담기는 시민기자들의 진솔한 삶을 읽는 것처럼, 마치 내 이야기(?)를 읽는 듯한 착각 속에서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을 즐겁게 읽었다.

“논길을 걷노라면, 벼이삭에 맺힌 이슬이 달빛에 반사되어 들판 가득히 은구슬을 뿌려 놓은 것만 같았다. 마치 동화 속의 세계 같은 그 속을 거닐며 아내는 곧잘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 우리는 2년 가까이 커피 한 잔 값 안 들이고 순전히 맨입으로 연애를 했지만, 누구보다도 행복했고 아름다운 추억을 쌓았다.”

잘 만들어진 영화, 드라마처럼 극적인 대역전과 반전의 인생, 극과 극을 오가는 화려한(?) 인생 경력, 인간 극장 주인공 노무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아직도 식지 않은 꿈, 노무현 대통령이 곧잘 언급하고 강조하는 비전의 실체(?)는 뭘까?

“여보, 나 좀 도와줘. 나는 꿈이 있어. 나는 꼭 그 꿈을 실현하고 싶어. 정치를 하려면 미쳐야 된대. 여보 양숙 씨. 우리 한번 미쳐 보자. 응?”

새로운 세상, 평화와 번영을 누리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 이런 큰 그림은 변화가 없을 테지만, 토담집에서 고시를 준비하던 때, 변호사 시절, 이 책을 썼던 94년, 대통령이 된 뒤의 꿈엔 확실히 많은 변화가 생겼을 게다. 꿈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교류와 소통을 통해 변화하고 보완되고 다듬어져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니.

“사회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 건설된다는데, 인간의 본성에 자리 잡은 그런 욕심들이 과연 이성으로 다스려질 수 있을 것인가? 가난에 대한 상처, 그 상처는 나의 잠재의식 속에 어떻게 해서라도 나만은 가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열망과 함께 모두가 가난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동시에 심어졌던 것 같다.

가난에 대한 상처, 모두가 가난하지 않은 세상, 어찌 보면 상반된 이 두 가지 생각이야말로 지금까지 지출 줄 모르며 나의 삶을 오늘날까지 몰고 온 내 마음 속의 풍차였는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한 사람을 평가할 때, 한컷의 이미지로 또는 한 문장으로 딱 끊어 묶으려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한 사람이 지닌 복잡 다양한 세계를 낱말 몇 개로 담아낼 수 있겠는가? 청문회 스타, 서민의 대변자, 승부사 또는 돌콩 노무현이라는 별명은 많은 사람들 눈과 귀에 익은 말들이다. 그러나 한 사람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별로 도움은 안 된다.

처음엔 노 대통령을 전 방향에서(?) 읽고, 국가 비전과 철학, 세계관을 짚어보려고 국어사전까지 옆에 두고, 정신을 집중,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고백 에세이'인지라, 신경을 예민하게 할 만큼 복잡하지 않고 담백하다. 평가가 양분된 한 사람, 인간 노무현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주로 언론의 홍보 내용만을 덮어쓴(?) 상태에서, 책을 통해 저자와 마음의 거리가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다.

“아내는 나를 보고 웃는다. 정치를 그만 두고 변호사를 하면 될 일을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다.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나에게는 그만한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이상과 포부가 있다.”

한 조직을 휘어잡고 끌고 가는 카리스마, 두목(보스)은 크고 작은 조직들 속에 널려 있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과 설득으로 구성원의 마음을 모아 참여와 교류와 소통을 기반으로 함께 꿈과 비전을 다듬어가는 지도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땀과 노력을 대가로 지불하고 대성한 사람, 자수성가한 사람, 입지전적인 분들은 많다. 그러나 밑바닥 정서와 윗바닥 정서, 그 마음들 한 그림에 담아내는 지도자를 발견하기 어렵다.

"남보다 앞서 생각하고 남을 다스려야 할 입장에 있는 지도자라면 상당히 체계화된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정도의 철학을 갖추려면 이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다방면에 걸쳐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철학이 없는 정치인은 두목이라는 말은 들을 수 있어도, 지도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정치, 경제에 관해서 지식을 빌리는 경우에도 지도자는 무엇을 빌려야 하는 것인지, 또 누구한테 빌려야 할지 그런 것을 판단할 줄 아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농부가 밭을 갈러 가는데, 호미를 빌려야 하는지, 괭이를 빌려야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훌륭한 정치 지도자의 3대 요건으로 권력 장악 능력, 살림살이 솜씨, 그리고 역사의식을 꼽는다."


"일어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또 <힘은 있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라는 책도 있다. 조심해야 할 힘 한번 지녀본 이력이 없는 사람(?), 밑바닥 인생들은 “그게 뭔 소리여? 뭔 힘?”하겠지만, 힘 있는 사람들은 마음에 새겨야 할 문장이다.

권력, 재력, 지력, 정보력 등 힘이 생기면 사람들은 오만과 독선에 눈이 가려 약자를 함부로 다루기 쉽다. 아니 더 무서운 것은 약자에 대한 ‘무관심’일 것이다. 그는 아무리 재주가 뛰어날 지라도, 군림하는 보스는 될지언정, 봉사자의 마음으로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을 섬기는 지도자는 아닐 것이다. 노 대통령은 어떨까? 약자의 마음, 밑바닥 정서, 실패와 좌절과 서글픔의 경험을 잊지 않고, 지금도 저 아랫동네 심정에 변함없이 공감할까?

"돈에 탐 안 내고, 인권 변호사로 오로지 사회 정의를 위해 헌신해 온 사람이라고 신문이나 잡지에 기사가 나갈 때마다, 어디선가 그 아주머니가 그 글을 읽고 있지나 않을까, 나는 가슴을 조이곤 했다.

나는 지금부터 시작하려 하는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도 지금쯤은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을 그 아주머니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내 삶의 영욕과 진실을 담보로 하여 따뜻한 용서를 받고 싶다."


밑바닥(?), 서민 출신 대통령을 언급하며 아직까지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무현씨, 그 사람, 기득권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세상을 확 뒤집어 엎자는 것인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쌓인 한을 풀어보자는 심보 아닌가?” 아직도 마음을 닫고, 등을 돌리고 오해의 울타리에 갇혀 적대 감정, 대립 감정부터 앞세워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체가 아닌 부분, 전 방향이 아닌 어느 한 각도에서만 보고 평가하길 고집하기 때문일 게다. 편견을 덮어쓴 까닭에 주의해서 읽지 않고, 경청해서 듣지 않고, 보고 듣고 싶은 부분에만 집중하니, 핵심과 중점을 놓치는 게다. 그 말과 글과 마음에 대해 계속 그릇된 평가만 반복하고, 진심을 왜곡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여보, 나좀 도와줘>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나이(33)에 “늦었지만 나도 고시에 한번 도전해 볼까?”하며 ‘사법고시’에 대한 유혹(?)을 잠깐 받긴 했지만, 내겐 나만의 다른 소박한 꿈이 있다. 사명은 각자 각자다. 오랫동안 세상사에 무관심한 채 기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살았지만, 이젠 나도 울타리 밖으로 목소리를 토할 권리는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지혜롭게 판단하도록, 목소리(조언)를 반영할 자유와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은가? 그곳이 정치판이든 종교판이든 개나 고양이판(?)이든 어디든.

나는 노 대통령에게 고용된 사람도 청와대 대변인도 아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왜곡 또는 확대해석(침소봉대)하거나 억지 주장들을 펼치는 분들에게 “이젠 안심하고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쓴 소리도 필요하지만, 이제 그만 오해와 편견과 비난의 누더기를 벗으십시오. 너그럽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칭찬하며 사랑과 지혜를 공급해 도울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이젠 ‘욕심과 편견 모드’(?)에서 '나눔과 참여 모드'로 전환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지혜와 대안과 조언으로 참여하고, 도우미가 되어 협력하는 게 그리 불편하고 어려운가요?

“오늘날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는 대충 해결된 대신에 환경 파괴, 쓰레기, 소비자 문제, 청소년 범죄, 마약, 에이즈 등 사회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제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가 기아와 질병, 전쟁의 공포, 자원의 고갈, 환경의 파괴, 도덕의 타락 등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젠 개인의 문제보다 ‘공동체 의식’과 ‘시민 정신’을 교육해야 할 때가 아닐까.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의 문제, 나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번득이는 천재성을 지닌 예술가 한 사람이 광적인 영감(?)을 발휘해, 혼신을 기울여 완성한 그림 한 폭도, 보는 사람이 그 속으로 끌려들어갈 것만큼 아름답다. 하물며 5천만에 가까운 남녀노소 마음들이 5년여 동안 다양한 색으로 참여해 그려낼 작품은 어떨까?

대통령 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소수의 독주가 아닌 국민 참여로 아름답게 발전하는 국가 비전, 그리고 그 비전이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열매로 나타나는 그림이다. 각 분야에 조용히 숨어있는 대가들뿐만 아니라 종교, 소득, 학력, 지역, 남녀의 차이를 초월, 약자나 강자나 함께 참여해 협력한다면, 온 세상이 감탄할 만한 빛나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단지 책 한권을 읽고 소감과 조언을 덧붙이는 작은 도우미에 불과하지만, 참여 정부가 남은 기간 동안 대화와 타협과 관용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 돌리고 있는 사람들도 침을 토하며 설득해 동행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그리길 소망한다.

동서화합, 지방분권, 전국 균형발전,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담은 그림, 이 비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반도 울타리를 넘어 온 세상에 사랑을 나누며 섬기는 봉사자의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 공동체를 상상해 본다. 한 많은 고난의 땅, 대한민국의 꿈과 비전에 참여해 함께 걷고 뛰고 날고 싶어서다.

덧붙이는 글 | <여보, 나좀 도와줘> 새터, 8500원

덧붙이는 글 <여보, 나좀 도와줘> 새터, 8500원

여보, 나좀 도와줘 - 노무현의 첫 자전 에세이, 개정증보판

노무현 지음,
새터,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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