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대외정책 제자리 잡나

[집중점검] 노 대통령 'LA 발언' 이어 정동영 장관 '베를린 선언'

등록 2005.01.30 15:31수정 2005.01.3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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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장관이 3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폐막연설을 하고 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정 장관의 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3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폐막연설을 하고 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정 장관의 연설을 지켜보고 있다.오마이뉴스 오연호

6자회담과 남북한 당국자 회담이 기약 없이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교착 상태의 타개를 위해 적극적인 구상을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정동영 장관의 베를린 연설은 노무현 대통령의 'LA 발언'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정동영 장관은 6자회담의 재개와 성과 도출을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 모두의 유연성과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북한이 핵 포기 과정에 진입하면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대북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한 북한이 남북 당국자 대화를 재개하면 북한의 농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지원도 약속했다.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타개해보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들이다.

분명해지는 대외정책의 '기조'

작년 11월 13일 노 대통령의 'LA 연설'부터 28일 정 장관의 '베를린 연설'까지 일련의 발언이 관통하고 있는 것은, 비틀거리던 노무현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가 비로소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취임을 전후해 미국에 대해 자주적이고 당당한 발언을 즐겨했던 노무현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는 한미공조에 '올인'하는 반면, 대북관계에는 소홀한 모습을 보여왔다. 대외정책의 기조를 분명히 하면서 대미·대북관계에서 균형을 취하고, 북미 양자를 한국 주도의 평화프로세스로 견인하고자 했던 김대중 정부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와 같은 지난 2년간 노 정부의 대외정책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남북관계는 김영삼 정부 때에 비견될 만큼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 들었고, 원하는 것을 해주면 변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부시 행정부는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했다.


북한으로부터는 외면 받고 미국으로부터는 다루기 쉬운 상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국내외 곳곳에서 '노무현 정부가 햇볕정책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쏟아져 나온 것도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이와 같은 심각한 상황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기 시작한 당사자는 노 대통령이었다. 노 대통령이 참모진이 준비한 연설문을 물리치고 자신이 직접 'LA 연설문'의 작성을 주도한 것은 노 대통령의 문제 의식이 비로소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노 대통령이 2년간의 학습 효과를 거치면서 대외정책에 대해 직접 간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주무부처의 장관이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의장인 정동영이 외교안보팀을 지휘하면서 부처간의 혼선과 주도권 다툼이 줄어든 것도 노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가 분명해지고 있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비로소 방향을 잡기 시작한 대외정책 기조의 일관성을 지키는 일이다. 또 다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면 정책의 신뢰성은 땅에 떨어질 것이고 이에 따라 '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초라한 정치적 구호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험난한,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주도적 역할'

정동영 장관이 남북 당국자 회담이 재개되면 북한의 농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지원에 나서고, 핵문제가 해결 궤도에 진입하면 본격적인 대북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은 그동안 이렇다 할 내용과 전략이 없었던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비로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북한이 올해의 국정 목표로 제시한 농업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표한 것은 그동안 새로운 수요가 없어 남북대화가 공전되었던 상황을 타개해 보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또한 남북대화가 중단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한국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 의식도 깔려있다.

포괄적인 대북지원과 남북경협의 본격화의 시점을 "핵문제가 해결된 이후"에서 "북한이 핵포기 과정에 진입하는 순간부터"로 앞당긴 것 역시 중요한 대목이다. 6자회담의 잘 진행되더라도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북핵 문제가 해결되는데 족히 2~3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북지원 및 경협의 활성화 시점을 "핵문제 해결 이후"로 잡은 것은 노 정부가 핵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야기한 요인이었다.

따라서 대북지원과 경협의 활성화 시점을 핵문제 해결 과정으로 구체화한 것은 핵문제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비로소 정확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유도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도 내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만큼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쉬운 것은 아니다.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이끌어낼 만큼 남북한의 신뢰가 구축된 것도 아니고, 남한이 북한에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도 제한되어 있다. 또한 미국 안팎의 강력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는 아직까지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노 대통령과 정 장관이 약속한 대북지원에 대해 '북한이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약속한 전력 지원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또한 개성공단의 시범단지를 가동하는 데에도 남한이 미국의 전략물자통제체제에 걸려 힘겨운 모습을 보인 사례도 있다.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이 또 다시 '퍼주기' 논란을 부추길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게 정책적 신뢰성을 인식시켜주고, 국내에서는 포괄적인 대북지원에 대한 초당적인 협력과 국민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미국에게는 정책적 단호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위하여

한국이 이와 같은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하고 실질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단선적·단계적 접근을 넘어설 수 있는 입체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입체전략의 핵심은 6자회담과 남북관계를 선순환의 구도로 만드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우라늄 농축 문제 등 핵심 쟁점들과 관련해 치밀하고 설득력 있는 해법을 내놓고, 갈등도 마다하지 않고 미국의 대북정책을 변경시키는 것을 한미공조의 기조로 삼아야 한다. 또, 북일관계을 비롯해 동북아의 갈등과 협력 구조를 활용해 문제 해결의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대북특사파견과 남북정상회담의 추진을 통해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와 같은 네가지 과제는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가질 때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울러 외교정책결정에 있어서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초당적인 협력과 국민적 합의 모색도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회는 한반도 평화 결의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핵문제가 해결되는 맥락에서 포괄적인 대북지원을 지지·협력하고 남북정상회담의 추진을 촉구하는 것을 요지로 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면, 남북한 정부와 국제사회에 대단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국회 결의안은 초당적인 협력과 국민적인 합의를 추구하는 데 시금석이 될 수 있으며, 이는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남북관계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대북특사파견과 정상회담에 대해 정부 내, 정부와 여당 사이의 혼선을 해소하고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이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선 특사회담을 통해 중단된 당국자 회담을 재개하고 북한이 핵 카드를 고수하는 것보다 전략적 결단을 내리는 것이 왜 '비교우위'에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기실 6자회담을 통해 북한에 제시되고 있는 인센티브는 '그림의 떡'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말하고 있는 '포괄적 대북지원' 역시 북한으로서는 전적으로 신뢰하기 힘들다.

특사회담과 뒤이은 남북정상회담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두 회담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직간접으로 북한의 핵 포기시 6자회담 구조에서 얻게 될 경제적·안보적 인센티브를 상세히 설명하고 남북관계 차원에서는 '포괄적 대북지원'을 확약하면,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훨씬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평화네트워크에서는 2월 1일 오전 한국의 주도적 역할 하에 핵문제 해결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www.peacekorea.org)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평화네트워크에서는 2월 1일 오전 한국의 주도적 역할 하에 핵문제 해결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www.peacekorea.org)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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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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