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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8년 전남 장성 상무대 육군기계화학교로에서 당시 25세의 나이로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후반기 교육을 담당하는 우리부대 대부분의 인원은 조교로 사병, 부소대장, 소대장, 중대장들을 교육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소소한 부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자대배치를 받으면 많은 고참들은 신병의 소소한 신변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묻고 이것 저것에 대한 주의(?)사항을 일러주고 신병의 군생활을 위해 사수(?)를 정해준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함께 부대에 들어온 동기보다 인기를 끌지 못하고 ‘영감’으로 불리게 되었다. 25세의 나이면 제대 말년병장과 같은 나이고 몇몇 부소대장보다도 내가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삼천의 고문(?)
성씨는 말할 수 없고 이름이 삼천이다. 삼천은 삼천포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삼천이라고 했다. 축구를 굉장히 잘했다. 그래서 중대는 물론 대대, 연대에 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내가 신병 때 삼천은 병장이었다. 정말 그는 공을 잘 찼다. 개발(?)인 내 수준에서 삼천의 축구실력은 예술이었다. 그때 한참 뜨는 국가대표 선수와 친구이며 같이 축구를 했다고 했다.
삼천은 허스키한 목소리와 다소 까무잡잡한 피부에 미남 형은 아니다. 삼천은 농을 잘했다. 삼천의 농은 언제나 점호시간에 터진다. 점호시간에 웃기도 힘든 신병인 나에게는 정말 참기 힘든 고문이었다.
일천의 시대
삼천이 병장일 때 일천은 일병이었다. 일천은 일병사령(일병고참을 일컫는 말)일 때 악명(?) 높았다. 내가 신병 때부터 근무해 본 경험에 의하면 우리 부대에 구타나 얼차례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라고 하는 무기는 정말 구타나 얼차례보다도 무서운 것이었다.
일천은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어서 사령의 얼굴표정과 말투는 그야말로 그 밑 사병들에게는 크나큰 고문 그 자체였다. 내가 본 일천은 따듯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른 부대원들이 다 조교인데 반해 일천은 계원(행정병)으로 유류, 총기류, 정비와 관련된 행정일을 맡아서 주간정비 월간정비 때 오일을 같이 타러가는 사람이었다.
말이 별로 없는 일천이 말을 꺼내서 그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때는 참 난감했다. 어디서 웃고 어디서 맞장구를 쳐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만순의 등장
내가 군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갈 무렵, 신병이 부대에 합류했는데 그가 바로 만순이다.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삼천이 일천이에 이어 이제 만순이 까지 왔으니 다음은 억순이 차례 아닌가? 하고 생각만 해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만순은 강원도가 고향이었다. 그의 억양은 언제나 웃음을 자아내게 했고, 흐느적거리는 행동은 언제나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만순이는 참 성실했다. 만순 때문에 지루한 나의 군대생활이 조금은 재미가 있었다.
헉! 정말 억순이 등장하다니...
말하지 않았나 삼천이 일천이 가고 만순이가 왔으니 이제 억순이 차례라고. 그런데 정말 우리에게 억순이가 등장했다. 무거운 더불백과 큰 키의 이등병이 내무실에 있기에 신병이라고 생각하고 툭 건드렸더니 글쎄 “이병 0억순”이라고 하지 않은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내무실에서 뒤짚어졌다. 평소 우리는 삼천 일천 만순이 우리 부대가 맺어준 굉장한 인연이라며 농을 주고 받았으니... 상상해보라! 억순의 등장 자체가 우리에게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겠는가를 말이다. 억순이와 군생활을 많이 하지 못했다. 사회에서 정비를 전공했다고 했으니 부대생활도 잘 했으리라 미루어 짐작해본다.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생각난다. 나이 많은 나를 따듯하게 대해준 많은 고참들과 후임병들이 이 글을 쓰는 순간 스쳐지나간다. 모두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그들 모두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하고 싶다.
국가보안법으로 집행유예와 자격정지 형을 받고 입대한 군대는 나에게는 정말 외로운 곳이었다. 군대에서 나를 멀리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생각해보라 25세의 나이에 선거권이 없다면 어떻게 이해가 되겠는가?
전과자 그것도 군에서 국가보안법의 전과라라면 말 다하지 않았겠는가? 물론 근무기간 사면되었지만 나와 가까이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따듯하게 나를 대해준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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