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에는 홍탁이 최고!

눈 내리는 밤 후배와 한잔했습니다

등록 2005.02.02 09:32수정 2005.02.06 23:1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홍탁 안주와 막걸리


a 홍탁 안주와 막걸리

홍탁 안주와 막걸리 ⓒ 장승현

어제 1일, 사무실에 있는데 날씨가 꾸먹꾸먹하더니 눈발이 내리기 시작했다. 몇 분 만에 금방 눈이 쌓이더니 이젠 왕방울만한 눈발이 되어 창가로 달겨들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갈 정도가 되었다. 사무실에 있던 후배들도 심난한지 창밖을 내다보며 눈 구경을 하고 있었다.

“저기 벌써부터 육교에 차들이 미끌어지고 있는데......”
컴퓨터를 하던 후배가 계속 창문에 매달려 눈발을 구경하고 있었다.

“심난하구먼. 오늘 그냥 집에 들어갈려고 했더니…. 야, 오늘 나랑 막걸리 한잔 할까?”
“좋죠. 저야!”

항상 언제 막걸리 한잔 하자고 해 놓고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한 후배였다. 오늘은 눈도 오고 심난하기도 하고 이 후배와 술 한잔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저기, 홍탁 하는 데 알지?”
“예, 육교 넘어 그 식당 말이죠?”


이 정도 되면 술자리에서 도망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먼저 아내한테 전화를 걸었다. 운전할 아내를 데려다 놓고 먹는 술자리는 부담이 덜했다.

“오늘 드디어 홍탁을 먹는 거요?”
“응, 그 집 홍탁은 죽이지......”


술 중독자들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후배가 언젠가는 날 보고 "형은 알콜중독 중중"이라고 했다. 그 친구 이야기에 의하면, 일주일에 소주 다섯잔만 마셔도 알콜중독현상이 나타나는 거라고 했다. 나야 매일 그것도 거의 마시다시피 하니 그런 말을 들어도 할말은 없다.

그렇지만 난 알콜 의존도, 심리적인 쓸쓸함, 술 먹고 다음날 일에 지장, 손떨림, 기억 상실증, 인간에 대한 애정 결핍증 등 알콜중독 증상 중에 이것저것 따져 보아도 아직은 중중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자가진단으로 말이다. 그러나 내가 제일 자신할 수 없는 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 어쩌구 저쩌구...... 난 사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술을 며칠 동안은 안 마셔도 살 수가 있다.

나의 단골막걸리집 아주머니

a 나의 단골막걸리집 아주머니

나의 단골막걸리집 아주머니 ⓒ 장승현

막걸리집에 들어섰다. 오늘은 손님이 하나도 없어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술꾼이 이렇게 귀한 손님이 되어 술집에 들어서면 우선 그날은 반은 성공한 셈이다. 데리고 간 후배와도 술 약속을 한 지 몇 달 만에 가는 거라 모처럼 후배와의 정담이 기대되는 술자리였다. 아주머니가 막걸리통에서 한주전자를 뜨더니 안주를 물었다.

“물론 홍어회 죠. 삭힌 걸로유.”

이 술집은 아주머니와 아저씨 두분이 하는 선술집인데 목포에서 홍어가 택배로 매일 부쳐온다고 했다.

나의 단골 막걸리집 메뉴

a 나의 단골 막걸리집 메뉴

나의 단골 막걸리집 메뉴 ⓒ 장승현

조금 있다 아내가 차를 끌고와 옆에 자리에 합석했다. 막걸리 두어잔이 탁배기로 목줄기를 타고 두어개 넘어가니 기분이 알딸딸하니 삼삼했다. 역시 막걸리는 이런 맛이었다. 소주나 맥주는 이런 맛이 없고 쓰고 머리가 둔탁하고... 그런데 막걸리는 목마를 때 벌컥벌컥 넘어가는 맛으로 마시는 술이다. 서먹서먹하던 후배와의 관계가 막걸리 두어잔을 주고받고는 근방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밖에는 여전히 주먹만한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길가에는 벌써 하얗게 눈이 쌓였고, 우리들의 술자리는 깊어만 갔다. 우리들은 막걸리 두주전자를 마시고 남은 안주와 막걸리 두주전자를 싸달라고 해 우리 집으로 향했다. 후배를 데리고 우리 집에 가서 나머지 술판을 벌일 셈이었다. 이렇게라도 해서 오늘만은 일찍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옆에서 기다리는 아내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만은 후배와 하룻밤을 자며 술을 마셔야 눈 오는 저녁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일찍 들어와 집에서 술판을 벌이면 어머님도 술 먹고 늦게 들어온다는 말을 안 할 테니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4. 4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5. 5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