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인생', 올해는 나아졌으면...

집 앞에서 오징어와 참숭어 회를 파는 아저씨를 보며

등록 2005.02.06 10:18수정 2005.02.0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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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는 속이 출출하다며 오징어회가 먹고 싶다고 조릅니다. 성장기여서 그런지 요즘 유난히 음식에 탐을 냅니다.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서에게 전화를 겁니다.


"황 서방, 낚시 갔다 왔제? 고기 잡은 것 있으면, 가지고 온나!"
"형님, 늑도에 가기는 갔는데, 2시간 동안 입질 한 번 못 받고 왔습니더."
"수온이 아직 안 올라 간 모양이네. 회 사올 테니 집에 온나."

나는 서둘러 점퍼를 입고 모퉁이를 돌아 도로 옆에 서 있는, 물차(수족관을 갖춘 트럭)로 향합니다.

"어서 오이소. 억수로 춥지 예? 뭐 쫌 드리까 예?"
"밀치하고, 오징어 좀 주이소."

익숙한 솜씨로 회를 썰고 있다.
익숙한 솜씨로 회를 썰고 있다.한성수
물차주인은 마흔 안팎으로 보이는데, 언제나 싹싹합니다. 주인은 우선 도마를 수건으로 닦아내고 장갑을 꺼내어 끼고는 트럭 위로 오릅니다. 차 주인은 고기를 잡을 때와 고기를 썰 때 항상 장갑을 갈아 끼는데, 도마에는 물기 하나 없이 반질반질합니다. 회 값이 며칠 전까지는 1㎏에 만 원하더니만 오늘은 1만 2천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밀치라고 부르는 이 고기는 본래 이름이 '참숭어'거든 예. 하동에서 양식을 많이 하는데, 값도 무난하고, 육질도 쫄깃쫄깃하고, 자연산은 뻘내가 나는데, 양식고기는 오히려 담백해서 겨울철 횟감으로는 제일 낫습니더."


주인은 참숭어 2마리와 오징어 2마리를 잡아서 소쿠리에 담아 내려옵니다.

이제 주인은 오징어와 참숭어의 껍질을 벗겨냅니다. 그리고 예리한 칼로 오징어는 가로로 반을 포를 뜨고, 참숭어는 배 부분을 따로 썰어냅니다. 그리고 큰 수건으로 횟감을 둘둘 말아 빨래를 하듯이 물기를 짜 냅니다. 장갑을 다시 갈아 끼고는 이제 익숙한 솜씨로, 썰기 시작합니다.


"고기는 어디서 가져 옵니꺼?"
"부산에서 물건을 해 오지 예. 요새는 오징어가 수온이 바뀌어서 남해안에서도 많이 잡히거든 예. 새벽 2시에 장사 끝내고 정리하고 나서, 바로 부산에 가거든 예. 그라고 물건을 해 오고 나서 아침밥 묵고, 좀 자고 나서 오후 2∼3시부터 다시 장사를 시작하지 예. 한마디로 피곤한 인생입니더. 나도 옛날에는 횟집을 했는데, 참…"

나는 어떻게 하다가 물차를 하게 되었는지 굳이 묻지 않습니다. 물차주인은 오징어 회를 담은 도시락 둘과 참숭어회 도시락 하나를 건네면서 초장과 와사비를 덤으로 건네줍니다. 주인의 정감어린 인사를 받으며, 할인점에 들러 상추와 깻잎을 사서 집으로 향합니다. 상을 차리고 나니 처제 식구가 도착합니다.

오징어 회와 참숭어 회(붉은 색이 감도는 것이 참숭어)
오징어 회와 참숭어 회(붉은 색이 감도는 것이 참숭어)한성수
여덟 식구는 옹기종기 앉아 순식간에 회접시를 비웁니다. 딸아이는 양이 안차는지 '더 사 달라' 합니다. 나는 딸아이에게 눈총을 줍니다. 저렇게 성실한 물차주인이 올해는 번듯한 점포를 갖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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