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가장 '짰던' 한달, 이렇게 보냈습니다

1월 동안 꾸려본 '작심삼일' 극복 다이어리

등록 2005.02.06 20:21수정 2005.02.0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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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심삼일' 극복 다이어리

1월 말에는 표시된 동그라미 수가 적다. 2월로 은근슬쩍 이월 시키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1월 말에는 표시된 동그라미 수가 적다. 2월로 은근슬쩍 이월 시키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김수원
이번 이야기는 '작심삼일'까지 극복한 그 뒤에서부터 이어진다. 이런 이야기가 뜬금 없다는 분이 있더라도 기사에 순순히 따라오다 보면 지난 기사 내용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 기사를 보고 주위에서 "3일마다 작심삼일을 반복해라"는 고전적인 비법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내 다이어리는 펼쳤을 때 일주일간의 계획을 짜도록 설계되어 있다. 매일매일 해결해야 할 일도 꼼꼼히 적지만 일주일 안에 반드시 해치워야 할 아니, 매일 머리 속에 수시로 자극을 주면서 처리해야 할 일도 기록하고 있다. 그것들을 모두 일일이 쪼갰다. 그 수십 가지의 미션을 하나 하나씩 수행할 때마다 동그라미를 그렸다. 다이어리를 가득 메운 동그라미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매일 해결해야 하는 다섯가지 임무. 하루 완전한 수행도를 150%로 둠으로써 스스로에게 너무 관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매일 해결해야 하는 다섯가지 임무. 하루 완전한 수행도를 150%로 둠으로써 스스로에게 너무 관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김수원
악착 같이 모은 포인트. 집안으로 유입되는 모든 상품은 나에게 '검열' 당했다.
악착 같이 모은 포인트. 집안으로 유입되는 모든 상품은 나에게 '검열' 당했다.김수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수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다섯 가지 임무에는 100% 수행도를 150%로 두었다. 왜냐? '빡셨기' 때문이다. 사실 말하기 부끄럽다. 3단계 검은 동그라미를 30%로 두고 계산했다. 100%가 넘지 않은 날이 많았지만 '100% 만족스러운 인생이 어디 있나?' '젊은 시절에는 안되는 일이 더 많다' '삶은 뜻대로 되지 않기에 더욱 살 만하다' 등 어디서 주워 들은 삶의 철학들을 마음에 새기며 위로했다.

자, 이제 한 달간 나의 희로애락의 응집체인 가계부 이야기를 꺼내 본다. 마음의 준비를 좀 해야겠다.

아껴 써야 했다. 절약해야 했다. 되도록 쓰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쓰지 않고 살 수는 없었다. 교통비 지출이 그랬다. 운동 삼아 몇 시간씩 걸어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스파이더맨'이 부러웠다. 핸드폰 요금도 마찬가지였다.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뭔가가 간절히 필요했다. 오케이캐시백 같은 포인트 적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가위도 가지고 다녔다. 칼도 가지고 다녔다. 눈에 띄는 대로 오렸다. 집 안으로 유입되는 모든 상품은 뜯기기도 전에 나에게 검열 당해야 했다. 이렇게 모인 적립 포인트는 도서 구입, 핸드폰 무료 통화 충전에 이용되었다.

인터넷에서 쓰고 찢어 버린 문화상품권.
인터넷에서 쓰고 찢어 버린 문화상품권.김수원
그동안 잘 모르고 있던 문화상품권 이용 범위가 확대되었다는 정보도 얻었다. 핸드폰 무료 통화 충전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 곧바로 문화상품권 확보를 위한 운동에 돌입했다. 생일이나 기념 등 선물 받을 일이 생겼을 때 "뭘 갖고 싶냐?" 물으면 "문화상품권으로 주세요. 요즘 읽고 싶은 책이 많거든요"라고 능글맞게 대답했다.


문화상품권을 경품으로 주는 각종 퀴즈 이벤트, 공모에도 손을 뻗었다. 퀴즈 이벤트는 갖고 싶은 경품을 선택하기도 한다. 한두 명만 주고 제세 공과금까지 내야 하는 고가 경품에는 관심도 없었다. 개인정보 유출을 감안해야 하는 점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식구 이름까지 끌어들이진 않았다. 너무 유명한 곳의 이벤트는 멀리했다. 참여가 그나마 적을 것 같은 지역 공공기관이 표적이 되었다.

공모도 비슷했다. 너무 큰 자본이 뒤를 받치고 있는 공모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소규모 단체에서 주최하는, 그것도 그 중에 주로 문화상품권이 걸린 참가상 같은 3등을 노렸다.


한달간 다이어리를 이용해 쓴 가계부
한달간 다이어리를 이용해 쓴 가계부김수원
한 달간 다이어리를 쓰면서 게으른 자신을 다루는 일이 정말 힘들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이것이 남들이 그렇게 얘기하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듯했다. 자신의 일은 자기가 책임을 진다는 '성인'이 된 지 오래지만 아직도 어른 노릇은 서툴기만 하다.

그래도 작년과 조금은 달라 보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또 하루를 깨작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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