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당신의 가방을 만지고 있어요

예니네 가족 텐트메고 유럽가기8

등록 2005.02.06 23:03수정 2005.02.0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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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몇가지 나름대로 규칙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무계획이 상팔자’ 였다. 물론 부지런히 많은 곳을 보고 오자는 욕심은 있었지만 아침 몇시에 일어나서 어디를 방문하고 뭐하고 또 뭐하고 하는등의 구체적인 일정은 아예 짜지도 않았다. 다만 ‘파리에 왔는데 루브르는 봐야 되지 않겠어?’ 하는 정도의 필수 코스만은 염두에 두고 있는 정도였다.

보통 사오일이나 길게 잡아도 일주일 정도의 여행일정에서는 조금 무리를 해도 체력이 버텨주지만 보름이 넘어가고 한달 가까이를 여행하게 되면 피로가 누적이 되어 체력이 떨어지게 되고 그로 인하여 면역력이 약해져서 병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로 무리를 하면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잘먹고 푹자자가 우리 가족의 여행규칙 일호였는데 텐트에서의 첫날밤이 심히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어제 저녁 술을 남기면 버리고 갈 거라며 권하는 바람에 주량보다 과음을 했는데 아침에 숙취가 별로 없었다. 자리만 서울의 삼겹살집에서 파리의 캠핑장으로 바뀌었을 뿐 소주에 고기 먹은 것은 똑같았는데 아마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하였다.

해가 중천에 떠서 일어났는데 아이들은 아직도 침낭속에서 코까지 가볍게 골며 자고 있다. 어제 하루종일 파리를 헤메느라 녹초가 되었을 것이다. 어찌 운전하는 사람만 피곤하겠는가. 어제 하루종일 지도에 코를 박고 애를 쓰던 둘째가 대견해 공연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 안에서나 밖에서나 잠귀가 엷은 아내가 눈을 뜬다.

a 볼로뉴캠핑장에서 모닝커피를...

볼로뉴캠핑장에서 모닝커피를... ⓒ 유원진

텐트를 열고 나오니 옆의 네덜란드 친구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도 안 하고 바로 ‘굿모닝’소리를 들으니 동방예의지국이 머쓱하다. 부지불식 간에 대답도 안 나와서 손을 들어 웃는 걸로 인사를 대신하는데 벌써 아침을 먹었는지 배낭을 메고 있다.

텐트문을 닫으면서 오늘 어디를 갈 거냐고 묻기에 이제부터 생각해볼거라고 하니까 웃으면서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부터 저렇게 환하게 웃는 그가 보기에 좋았다.

다행히 잠자리는 크게 불편하지 않아 보였다. 아무데서나 잘 자는 필자나 애들은 괜찮은데 집밖에서는 호텔에서 자도 불편해 하는지라 아내의 눈치를 슬쩍 보니 조금 추웠던 것 같기는 한데 피곤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이들도 잘 잔 눈치여서 혼자 가슴을 쓸었다.


a 불이 들어온 에펠탑-배가 흔들려서..

불이 들어온 에펠탑-배가 흔들려서.. ⓒ 유원진

캠핑장에서 지하철역까지는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었는데 운행거리나 시간에 비해 요금이 터무니 없이 비쌌다. 일인당 왕복요금이 오천원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루에 4인이면 이만원이나 되는 것이니 십분거리를 가는 요금으로는 엄청 비싼 것이었다.

여기나 거기나 (거기는 물론 아니라고 우기겠지만) 한철 바가지는 어쩔 수 없는 문화인 모양이다. 그러나 자전거로는 몰라도 걸어서는 불가능한 거리라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대중교통도 없었다.


차를 가지고 갈까도 생각해봤으나 주차비는 둘째치고 공연히 헤메다가 시간만 낭비할까 싶어 그냥 셔틀을 타고 다녔다. 파리에 캠핑장이 두 군데 있는데 또 다른 한 군데는 걸어서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까지 간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주소야 아는게 있지만 여기서 광고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상식적으로 검색창에 치면 유럽의 캠핑장은 다나오니 바야흐로 인터넷의 위력은 끝이 없다. 그야말로 낯설은 해외에서는 정보가 곧 돈이다.

나도 그랬지만 인터넷에는 없는게 없어서 유럽전역의 캠핑장 지도는 물론 전화번호 및 홈페이지 등 속이 잘 구비되어 있어서 출발하기전에 모든 것을 다 해결해 놓고 갈 수도 있을 지경이었다. 필자는 가기전에 시간에 너무 쫓겨서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하여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하였고 곧 약간의 손실을 보았다.

a 밀로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 ⓒ 유원진

파리나 런던이나 지하철은 우리나라보다 후지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냉난방이 잘 되어있고 객차도 넓은데다가 진동도 심하지 않은데 런던의 지하철은 소개를 했으되 파리의 지하철은 냉방이 안되어서 그런지 창문을 열어놔서 소음이 심했다.

문제는 소음보다 이상하게 정신이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외국이고 낯설어서 그렇겠지만 분위기가 까닭보다 더 어수선하였다.

우리는 에펠탑을 내려 와서 시간은 아직 남았지만 돌아가기로 하고 지하철을 탔는데 노선을 잘못타서 갈아타야 했다. 오후 다섯시가 조금 넘었다고 기억한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갑자기 사람이 많아진게 확연하게 느껴졌다. 어디서 듣기로는 여름 휴가때 파리는 텅텅 빈다던데...

우리는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타려는 사람들에게 밀려 구석까지 가서야 객차의 벽에 기댈 수가 있었다. 한 남자가 내앞에서 등을 보이고 섰는데 사람들이 자꾸 밀고 들어오니까 나에게 더욱 바짝 등을 밀어붙이는데 사람이 많아서 그런거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꿈에도 소매치기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여행을 오기전에 파리 지하철의 악명은 들은지라 소매치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바로 내 앞에 서있는 그 사람의 자세가 내가 눈먼 장님이 아닌 이상 그짓을 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던 것이다.

꽁지머리를 하고 콧수염을 기른 그 남자의 등어름에서 고약한냄새가 났지만 우리 마늘냄새 같은 것이려니 하고 참고 있는데 필자에게서 두시 방향쯤에 서 있는 서양 여자가 자꾸 그 남자의 눈치를 보면서 나에게 눈짓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a 샹젤리제 거리의 극장가

샹젤리제 거리의 극장가 ⓒ 유원진

그녀의 눈동자가 위에서 내 앞 어딘가로 왕복하는 것을 눈치챈 순간 직감적으로 무슨일이 있구나 하였지만 내려다보는 내 눈앞에 내 가방이 멀쩡하게 있는데 모를 일이었다.

그때 그녀가 “ 그가 당신의 가방을 만지고 있어요 ” 라고 내게 말했다.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몇몇 사람이 돌아보았다. 나는 그래도 실감이 안나서 “ 내 가방이요?” 하고 되물었다.

그녀의 긴 문장은 꽁지머리가 못 알아들었겠지만 아무리 영어와는 담쌓고 산다는 프랑스인이라 해도 세상에 ‘마이 백’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갑자기 꽁지머리가 우리 앞에 있던 인파를 헤치고 문쪽으로 가자 몇 명이 같이 움직였고 그들이 내리자 갑자기 공간이 헐렁해졌다.

들고 있던 짐을 내려 놓고 앞에 차고있던 가방을 만져 보고 열어 보았다. 아무 이상이 없었으나 가방의 밑쪽에 붙여 놓은 몇겹의 테이프에 칼을 댄 흔적이 있었다. 가방하나는 철저하게 만들어 왔지만 역으로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조심을 덜한것도 사실이었다.

a 에펠탑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파리 시내

에펠탑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파리 시내 ⓒ 유원진

“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소매치기를 앞에 두고 그것도 여자가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아내와 아이들도 덩달아 인사를 했고 그녀는 빙긋이 웃으며

“오늘이 파리 첫날이신가요?” 하고 물었다.

“ 그들은 누가 오늘 처음 파리의 지하철을 탔나를 정확히 알거든요. 며칠 더 계실거면 조심하세요.” 하며 웃었다. 캐나다에서 왔는데 그녀들도 오자마자 비슷한 경험을 해서 이제는 아예 가방을 안고 있다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고보니 둘 다 가방을 가슴께까지 올려 들고 있었다.

그 꽁지머리는 어깨로 내 시야를 가려놓고 두손을 뒤로 돌려 칼로 가방밑을 노리고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냄새 때문에 고개까지 들어 천장을 보고 있었으니 그나마 가방 밑바닥을 안팍으로 겹겹이 테이프질을 하지 않았다면 게임은 진작에 끝났을 것이었다.

더욱이 가방의 안쪽에는 얇은 쇠그물까지 겹쳐서 붙여 놓았기 때문에 여간한 칼로는 도모하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나는 생각대로 칼이 안나가는 이유를 모르고 끙끙거렸을 꽁지머리가 고소하여 웃었고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도움을 준 그녀들에게 고마워서 또 웃었다. 아내는 가뜩이나 겁이 많은데 그런 일까지 있고보니 더욱 움츠러드는 듯했다.

a 파리의 연인(?)

파리의 연인(?) ⓒ 유원진

이쯤에서 필자의 가방 이야기를 해야겠다.

어디를 가기만 하면 꼭 뭐하나 잃어버리고 다니는 남편 탓에 아내는 아주 골머리를 앓았다. 정신을 어디다 놓고 다니는지 여행중에 뭐 하나 둘 잃어버리는 것은 새삼스럽지도 않았으나 해외여행중에는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출발하기전에 며칠을 고심을 하였다.

먼저 중요한 것중의 하나인 카메라는 예니에게 전담을 시켰다. 디엔에이 탓에 예니도 아빠 못지 않았으나 그래도 카메라 하나 쯤은 당하리라 믿고 여행의 끝에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으니 목숨을 걸고 지키라고 맡긴 것이다. 둘째에게는 맡긴 것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되 중요도는 덜하나 수시로 확인이 필요한 지도같은 것들을 맡겼다.

더는 맡길 수 없는 여권과 돈을 앞에 놓고 이런거 안들고 여행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쉰소리를 하고 앉아 있는 필자를 걱정스러이 보고 있는 아내에게 걱정말라며 큰소리를 쳐놓고도 불안감은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버리지 않는 이상 소매치기 따위에는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을 가방을 만든 것이다.

먼저 스포츠용품점에서 앞으로 메는 가방을 샀다. 맘에 드는 디자인이 있어서 물어보니 마라톤 동호회 사람들이 주로 쓰는 가방이라며 주인이 마라톤하세요? 하고 물었었다. 앞뒤로 여권이나 지갑을 넣을 수 있음은 물론 가방 옆에는 물통이나 지도 같은 중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손쉽게 넣고 뺄 수 있도록 뚜껑이 없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어깨끈과 함께 허리에도 찰 수 있게 이중으로 탈착장치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등산용품점에 가서 이름은 모르나 등산전문가들이 로프를 연결할 때 쓰는 작은 쇠고리를 샀다. 가방의 쟈크를 어깨끈과 연결해두면 필자가 열려해도 쉽게 열 수가 없어서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 쟈크조차 잠가두면 몰래는 커녕 보는 앞에서 열어보라고 해도 한참을 끙끙거려야 할 판이었다.

a 파리의 소매치기가 울고간 철가방

파리의 소매치기가 울고간 철가방 ⓒ 유원진

가방을 멘 사람을 죽이지 않는 바에야 그 어떤 도구로도 어쩔수가 없는 가방이었다. 그 가방을 앞에 놓고도 안심이 안되어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소매치기들이 버스안에서 칼로 가방밑을 딴다기에 안쪽으로 철망을 대고 안팍으로 테이프를 겹겹이 붙여 놓았는데 그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나는 득의 양양하였다. 이 파리의 도둑놈들아 네놈들이 감히 뉘것을..

유럽을 돌아다니는 동안 환상적인 가방덕에 동전하나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면 무얼 하랴. 제 손으로 갖다 버리는 것을...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드디어는 여권을 누가 훔쳐가지도 않았는데 잃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스스로 생각해도 난감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그때 파리의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이겼다고 의기양양하면서 어찌 꿈이나 꾸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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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꿈으로만 가지고 세월을 보냈다. 스스로 늘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왔으나 그역시 요즘은 '글쎄'가 되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이 고민한다. 오마이에 글쓰기는 그 고민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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