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 위에 떡 한 쪼가리. 옛날 생각이 나네요.박철
설날이 낼 모레, 까치가 아침부터 떼를 지어 몰려와 '깍깍'하고 요란하게 울어댑니다. 이틀 동안 제법 많은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사람들이 꼼짝 안 하고 집에만 틀어 박혀 있나 봅니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설날이 낼 모레인데 경제가 어려워서 그런가? 설 분위기가 별로인 듯싶습니다. 옛날 생각이 납니다. 그 시절에는 모두 가난했어도 설밑에는 온 동네가 들썩 거렸지요. 동네 조무래기 녀석들은 꽁꽁 언 개울에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타면서 설날 어른들께 세배 인사를 올리고 세뱃돈을 얼마나 타낼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거리였습니다. 그럴 때는 친척이 많은 집 아이들 목소리가 커집니다.
더러 타관에 돈 벌러 떠난 형들이 있는 집 애들은 동구 밖 신작로에 나가서 버스를 기다립니다.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동네 입구에 서면 말쑥하게 빼입은 형들이 한손에는 선물 꾸러미, 한 손에는 정종 병을 들고 나타납니다. 그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집집마다 설맞을 채비로 분주합니다. 가마솥 뚜껑에 수수 부침개를 부치기도 하고, 엿을 만들기 위해 하루 종일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기도 합니다. 여자애들은 엄마를 따라 읍네 떡 방앗간에 떡을 뽑으러 따라가기도 합니다. 설날 하루 전 동네 아이들은 긴 가래떡을 하나씩 들고 나와 누구 떡이 긴지 자랑을 하기도 하고 미리 설빔을 차려입고 나와 연을 날리기도 합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우리집이 강원도 화천 논미리에서 화천읍내로 이사 오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푸근한 설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다가 아버지가 집안의 가장으로 복귀하고 나서 우리집도 설날에 떡을 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처음으로 떡 방앗간을 갔는데, 떡 방앗간 풍경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