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자락의 두부 혁명기지

맛 작가의 잘 나가는 맛 집 이야기 (18)

등록 2005.02.10 02:15수정 2005.02.1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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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손두부 부침개

손두부 부침개 ⓒ 김영주

나는 직업상 다양한 맛 집들을 다니며 맛에 대한 여러 가지 체험을 하곤 한다. 맛에 대한 테마를 정하다 보면 어서 빨리 인터뷰를 해서 먹어보고 싶은 맛이 있는가 하면, 일은 해야 하기 때문에 먹기는 해야겠는데 그다지 내키지 않는 맛들도 있다.

전자의 음식들에는 평소에는 먹을 기회가 별로 없거나 반대로 너무 자주 먹기 때문에 한번쯤은 대가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고 동시에 그 음식에 대해 가슴 한 구석에 호기심이 있었던 것들, 예를 들어 스테이크나 생태찌개, 자장면, 매운탕 등이다.


반면 후자의 음식은 아예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해왔거나 평범함이 극에 달한 것들, 예를 들어 두부가 그렇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피해갈 수는 없는 것, 마침내 두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만든 계기가 찾아온 것이다.

여기서 약간의 오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확실히 해두고 가자면, 두부가 평범한 음식이라는 것은 두부라는 음식에 대한 비하의 의미는 절대 아니다. 오로지 나에게 있어 두부란 먹을거리는 익숙하게 먹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커다란 감흥을 준적은 없었던, 그저 그런 음식이라는 뜻이다.

영화 <그때 그사람들>의 여파인가, 두부에 관한 글을 쓰니까 혹시라도 두부 관계자가 항의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두사모’가 있어 나의 글이 고소가 되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두부에 대한 내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간 단락들 두 군데와 마지막의 두부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해석 부분해서 총 세 곳을 잘라내고 밋밋한 두부 레서피와 가게 전화번호만 남는 게 아닌가 하는 상상도 해본다.

a 비지 찌개

비지 찌개 ⓒ 김영주

그렇다면 이 집 <토속집>에서 두부 맛을 보기 전에 두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떠했는가. 건강식이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맛은 역시 ‘재미없음’이다. 나는 맛이 있고 없고 이전에 재미라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한 입 베어 물면 그 음식이 간직하고 있는 맛들과 만나게 되면서 음식과 나의 오감이 만나는 지점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재미라는 요소가 있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두부라는 음식은 나에게 재미를 주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맛은 두부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테지만, 이상하게도 그냥 두부를 먹든, 순두부를 먹든, 두부 부침개를 먹든, 두부조림을 먹든 대부분이 밋밋함 정도로만 다가왔던 것이다.

어떤 분들은 왜 두부 요리의 대표인 비지를 빼놓았냐고 하실 지도 모르겠는데 비지는 정말 맛있기 힘든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의 어머니는 내가 맛있게 먹지 못하는 걸 아시는지 모르시는 지 유난히 단골로 해주던 음식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중 대표주자가 바로 비지였던 것이다. 이러니 내가 어떻게 비지를 좋아할 수 있겠는가.


주점에 가면 가끔 시켜 먹는 안주 중에 두부김치가 있지만 그것도 두부 맛이라기보다는 볶은 김치 때문에 먹는 것이었다. 결론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 두부는 그저 그런 음식이었다는 얘기다.

이런 나에게 두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한 곳이 있으니! 북한산 자락 구기터널 근처에 있는 손두부 전문점 <토속집>이다. 이곳은 등산객들이 등산을 하고 내려오면서 배고픔을 달래주는 상당히 많은 맛 집들이 있는 곳이고, 유난히 두부 전문점들도 적지 않게 있다.

그런 집들 중에서 이곳은 외관으로만 보면 오래되고 허름한 곳이고 마땅히 주차할 곳도 없는, 그래서 쉽게 들어가게 되진 않을 집인데, 한번 들어가서 두부 맛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없어질 곳이다. 어릴 때부터 맷돌 소녀라 불릴 만큼 두부를 만드는 게 생활 그 자체였던 박영미 사장이 이 자리에서 그대로 21년째 운영을 하고 있다.


a 손두부

손두부 ⓒ 김영주

박 사장의 하루 일과는 아침 4시 30분 기상하여 5시부터 집에서 두부를 만들기 시작하여 10시에 두부가 나오면 가게로 출근한다. 11시 정도부터 점심을 먹으러 손님들이 찾아오는데 90%가 단골손님이다. 이 집은 그날 판매할 분량만 두부를 만들기 때문에 두부가 떨어지는 시간이 문을 닫는 때이다. 대략 어느 정도나 만드는가 물었더니 평일은 70인분, 주말은 120인분이라고 한다.

이 집 두부의 특징은 100% 국산 콩만을 사용하고, 제대로 된 간수를 쓰고, 옛날 방식 그대로 조리를 한다는 데 있다. 국산 콩만 고집하는 이유는 콩 특유의 고소한 맛 때문인데 중국산 콩은 맛이 싱겁다는 것이다. 경기도 산 백태를 쓰는데 국산 콩은 중국산에 비해 잘고 윤기가 난다. 두부를 중국 콩으로 만들면 약간 어두운 색을 띄고 맛도 확실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두부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먼저 콩을 불리는 과정인데 요즘 같은 겨울엔 20시간을 불리고, 여름엔 6시간 정도면 된다. 불린 콩을 맷돌에 갈고 그것을 자루에 담아 짜낸다. 이렇게 해서 짜낸 물을 끓이게 되는데 다 끓으면 간수를 넣어가며 응고를 시켜 가면 되는데 뜨는 게 바로 순두부가 되는 것이고 남은 것을 보자기를 깔고 틀에 넣은 다음 2시간 정도 응고를 시키면 그게 두부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간수로 농도를 맞추는 것이다. 간수가 너무 많으면 딱딱해지고 쓴 맛이 나고 적으면 두부가 힘이 없고 물컹해지는 것이다. 물론 간수는 염전에서 나오는 간수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어떤 두부가 과연 좋은 두부인가? 우선 겉모양으로만 보면 투박하다 싶을 정도의 거친 모습인데, 우리가 흔히 보는 매끄러운 두부는 공장에서 대규모로 만드는 것이다. 이 집은 응고가 되지 않은 것들은 다 버리는데, 공장은 그것도 다 포함해서 두부를 만들기 때문에 양이 많아지고 수분의 함량이 많기 때문에 부드러운 모습의 두부가 나오는 것이다.

거기에 탄력이 있어야 한다. 맛은 고소해야 한다. 두부를 그냥 먹어도 고소한 맛을 흠뻑 느껴야 진짜인 것이다.

내가 먹은 것은 아무것도 조리하지 않은 순수한 손두부와 부침개, 비지찌개, 두부찌개다. 그 중 제일 먼저 먹은 것이 두부 부침개인데, 솔직히 여기에서 난 쓰러졌다. 두부 부침개는 아무리 내가 두부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음식이다.

특히 한정식이라도 먹는 날엔 어김없이 상 한 구석에 누워 있는 놈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 집의 두부 부침개를 먹었을 때 든 느낌은 마치 매일 아침 지하철 정류장에서 보곤 하던 평범한 아가씨가 어느 날 깊숙이 눌러 썼던 모자를 벗으니 미스코리아 뺨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a 두부찌개

두부찌개 ⓒ 김영주

그 다음 먹은 비지찌개. 나에겐 아픔이 있는 음식이었지만, 한 숟갈을 떠서 내 입 속으로 넣은 비지는 내가 알고 있던 그 비지가 아니었다. 비지는 사전에도 ‘두부를 만들 때 두유를 짜고 남은 찌꺼기’라고 되어있듯이 찌꺼기의 대명사이건만, 이 집의 비지는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라 콩을 갈아서 끓인다고 한다. 나는 다시 쓰러졌다.

다음에 먹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고소하기 그지없는 손두부와 된장과 고추장으로 간을 한 두부찌개 역시 두부의 새로운 세계의 발견이었다.

근데 보통 두부 식당에 가면 꼭 있는 두부전골이 없는 게 궁금했다. 굳이 두부전골을 메뉴로 하지 않는 이유는 만원이 넘어가기 때문이란다. 이곳은 어차피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비싼 음식은 팔 수도 없고 만들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인터뷰하는 데 들어온 야쿠르트 아줌마가 이 집의 진가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내가 여러 두부집 다니는데 이 집 두부는 진짜야!” 내가 30여 년이 넘도록 두부의 진가를 모르고 살고 있을 때 이미 이 곳 북한산 자락에서는 두부의 혁명기지가 있어 수많은 두부전사들을 길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토속집> 02-379-1732

덧붙이는 글 <토속집> 02-379-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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