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야지 진짜 같지"

<경찰 오토바이가 오지 않던 날>

등록 2005.02.13 22:34수정 2005.02.1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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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존경하는 선배가 후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남들에게 인정 받으려고 일을 하지는 말아라. 온전히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원해서 그 일을 해내라."


여기서 '그 일을 해내라'라는 말은 허투루 노력해서 되지 않는 뭔가 중요한 일을 의미한다. 중요한 일이니만큼 누군가에게 인정 받으려고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의 의지에 의해 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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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사계절

며칠 전 읽은 사계절출판사에서 내고 고정욱씨가 쓴 <경찰 오토바이가 오지 않던 날>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아주 평범한 장애아 동수가 나온다. 동수는 시골학교에서 서울학교로 전학을 왔다. 서울학교는 예전 학교와는 다르게 동수가 장애아라는 사실이 큰 이슈거리가 되었다. 동수를 사이에 두고 아이들끼리 편을 가르기도 했고, 동수가 아무 거리낌없이 혼자 칠판 앞으로 기어나가 수학 문제를 풀고 들어오는 것도 평범하게 그냥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서울로 온 동수에게 아주 신나는 일 하나가 생겼다. 바로 인근 파출소 경찰관 아저씨가 걷지 못하는 동수를 매일 아침 저녁 멋진 경찰관 오토바이로 등하교를 시켜 주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동수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동수는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맞으면서 쌩쌩 집으로 달려가는 그 길이 한없이 좋았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경찰관의 선행(?)은 신문과 방송에 나오게 되고 동수를 데리고 경찰관의 선행을 담기 위한 갖가지 조작 사진을 찍게 된다.

"잠깐, 잠깐!"
기자 아저씨는 사진 찍는 것을 멈추더니 옆에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얘, 잠깐 가방 좀 빌려 줘."
일학년 꼬마의 가방을 빼앗듯이 받아 온 기자 아저씨는 가방을 동수가 앉은 자리 앞에 끼고 있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야지 진짜 집에 가는 것 같지."
그러더니 또 여러 번 사진을 찍어 댔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경찰관 아저씨는 더이상 오지 않았다. 승진이 되어서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경찰관 아저씨가 다른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지만 동수의 엄마는 거절했다. 동수가 상처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 책에 나온 경찰관 같은 사람이 많다. 그리고 이런 사람 때문에 상처 받는 이들도 생겨난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다 보니 취재 현장에 오지도 않고 우리가 보낸 홍보물만 보고 나를 인터뷰한 문장까지 곁들여서 기사를 쓴 사람도 있었다. 우리 단체에서 어머니들에게 강연회를 개최했을 때 우리의 동의도 묻지 않고 모 시의원이 대뜸 강연 도중 들어와 "시의원 누구누구입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열심히 공부하십시오"하고 나간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온 "이렇게 해야지 진짜 같지"하는 사진기자도 봤다. 정말 우리 주변엔 이런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연출은 하지 말자. 그건 소중한 삶을 사는 우리가 어쩌면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가짜 인생을 살게 할 수도 있는 치명적인 위선의 독이다.

경찰 오토바이가 오지 않던 날

고정욱 지음, 윤정주 그림,
사계절,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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