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 중화동에서 … 힘들게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지금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지만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누가 옆에서 부축만 해준다면 목발 없이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등하교는 어머니가 도와주셨고, 학교에 있을 때는 저 혼자 벽을 짚으며 다녔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작은 턱 하나도 저에게는 커다란 벽이었습니다. 학교 규칙상 모든 학생은 실내화를 신어야 했지만 저의 발은 실내화를 신을 수 없도록 뒤틀려 6년 내내 맨발로 다녀야 했습니다. 또 좌변기가 설치되지 않은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려면 다른 친구들보다 두세 배의 시간이 걸렸고 게다가 저는 맨발이었기 때문에 화장실 문 앞에서 신발을 신고 벗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저는 수업 내용을 놓치기 일쑤였습니다. 또한 다른 친구들보다 손놀림이 느렸던 저는 수업 내용을 제대로 필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뒤처지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교사들은 저의 장애와 속도에 대해 아무런 배려도 해주지 않았고, 주위 친구들 또한 무관심하여 그 모든 짐을 홀로 져야만 했습니다…”
이 글은 장애인교육권연대에서 발표한 '2004 장애인학생 사례별 교육차별 실태조사'에 게재된 뇌병변 2급인 24세 여성의 사례를 요약, 정리해 기사화 한 것이다.
장애인 교육은 국가의 의무
대부분의 개인에게 교육은 인간적인 성숙과 완성의 기회이며,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과 능력을 습득함으로써 사회 구성원의 자격을 획득해가는 과정이다. 특히, 교육을 통해 교양과 직업적 지식을 구비하는 것은 개인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이런 이유로 국가는 교육을 개인의 권리이자 의무로 선언하고 적극적으로 개인을 제도적 교육과정 속에 편입시키고 있다.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능력에 따른’ 교육이라 함은 정신적·육체적 능력에 상응한 적절한 교육을 의미하며, ‘균등한 교육’이라 함은 성별·종교·사회적 신분 등에 관계없이 취학과 수학할 기회를 차별받지 아니하고 모든 국민이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의 외적조건의 정비를 요구할 수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국가는 능력에 차이가 있는 이를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실질적 평등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정책을 실현해야 한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국민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장애인은 능력에 상응하게 교육받을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장애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적어도 ‘헌법 교과서’적으로는 그렇다.
그렇다면 실제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교육받을 권리를 얼마만큼 보장받고 있을까.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는 세 차례에 걸쳐 장애인 교육권 토론회를 열었다. 장애인 교육기회와 교육환경 등에 대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장애인 교육권이 그 자체로서 기본적 인권임과 동시에 장애인의 사회통합과 생존권 보장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는 판단에 따라, 장애인 교육제도의 개선방안을 시급히 마련하고자 한 것이었다. 앞서 본 24세 여성의 삶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는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 준다. 그의 삶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그렇게 힘들게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교 진학은 더 큰 문제였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중화동에 있는 모든 중학교는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할 만큼 저희 집과는 먼 거리에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먼 거리까지 저의 등하교를 도와주는 것은 무리였고 무엇보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초등학교를 다녀야 했던 저에게 더 이상의 학교생활은 생각만으로도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만 지냈습니다.”
제도교육 못 받은 장애인, 비문해자로 방치
우리 정부는 특수교육진흥법의 제정과 시행, 특수교육발전 종합계획 등 장애인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이 막상 부딪혀야 하는 교육 현장의 현실은 위 사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수교육 대상 아동이 적절한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장애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그 결과에 따른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선천적인 장애를 지닌 아동들이 장애가 발견되는 즉시 적절한 진단 절차를 거쳐 치료와 교육을 받는 경우 아동의 발달지체와 2차적 장애를 예방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아동이 사회에 통합돼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된다.
장애인 조기교육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특수교육 대상자 선정을 위한 진단과 평가 시스템이 다양하지 못하고 또한 정교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현행법상 3세 미만의 장애영아는 특수교육 대상자에서 제외되어 공교육적인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이들의 교육은 주로 사설 조기교육기관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사설 조기교육기관은 일반적인 교육과정의 틀이 없고 장학이나 관리가 이루어지 않는다. 따라서 기관별로 교육의 질과 비용이 매우 다르며, 장애아의 보호자는 장애별로 적합한 기관이나 교육방법에 대한 체계적 정보를 어디에서도 얻기 어렵다.
장애인은 어린이집, 유치원의 취원이나 초·중등학교, 대학교의 입학 등 공교육 체계에 진입하는 데도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다. 특수교육진흥법에서는 장애아동의 입학 거부를 금지하고 있지만, 입학하고자 하는 교육기관에서 교육조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하거나 전학 등을 종용할 경우,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일반 학교뿐만 아니라 특수학교도 수요자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자료에 의하면, 2004년 현재 1일 통학시간이 4시간 이상인 특수학교 재학생은 전국 685명에 달한다. 대학의 경우 장애인 입학특별전형 제도를 마련,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은 입학 전 상담을 거쳐야 한다.
또한 대학별로 정해진 선발기준에 따라 입학 여부가 자의적으로 결정되는 등 선발과정에서부터 배제당하고 있다. 학령기에 제도교육을 받지 못한 장애인들 중 상당수가 현재 비문해자(非文解者)로 방치되고 있다. 이들은 야학 등의 성인교육 기회 또한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신체·정신 장애가 학습 장애 되지 않는 환경
교육에 있어 진정한 기회의 평등이란 곧 능력에 따른 교육이 이루어질 때 보장된다. 비장애인과의 통합교육은 장애인 교육에서 가장 바람직한 교육방법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때의 ‘통합’은 단순히 일반 학급에서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함께 생활하는 기계적·장소적 통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도움 없이 장애아동이 일반 교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업 내용을 이해하고 교육과정을 따라갈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는 대학이나 사회교육의 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장애아동에게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체장애, 뇌병변 장애, 발달장애 혹은 정신장애, 시각이나 청각장애 등 그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든지 특수학교 또는 일반 학교 내의 특수학급이나 일반 교실 등 장애 정도와 상황에 적당하다고 판단하여 자유롭게 선택한 교육장소에서 능력에 맞는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장애 유형에 맞는 개별적 교육내용과 자료, 기자재와 보조교사의 도움, 선생님과 동료들의 따뜻한 지지가 뒤따라야 한다.
장애아동은 안전사고 등을 이유로 예체능, 과학실험과 같은 특정 교과 시간이나 수학여행, 체험학습 등의 행사에 참여를 제한받고 있으며, 대학에서도 신체장애를 가진 이가 입학하려고 하면 학교에 아무런 교육시설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각서나 합의서를 요구받기도 한다. 역시 통합교육 환경과 장애인의 일반 학교 접근권이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결과다.
장애에 상응하는 개별적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장애인은 교육받을 권리를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셈하기 등에서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가진 장애인이 전체의 51.6%에 달한다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2000), 일반 아동에 비해 낮은 장애아동의 상급학교 진학률, 특별전형을 통해 입학한 대학생의 중도포기율 증가 등은 장애인이 교육받기에 적절한 교육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음을 잘 대변해 준다.
장애인이 교육받을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기 위해서는, 교사나 교수 등 가르치는 이가 장애인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통합교육’이나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
학교장이나 대학의 책임자는 장애인 교육에 대한 관심과 책무를 인식하고 일정한 노력과 재원을 투자할 태도를 지녀야 한다. 또한 이들을 끊임없이 교육하고 감독하며, 비용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정부와 시·도교육청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 기관이 업무수행에 필요한 적정한 인력과 예산이 배정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장애인 자식 둔 부모는 싸움닭 된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포기하지 않은 부모는 사회와 정부를 향해 싸움닭이 될 수밖에 없다. 도무지 정부는 소리 높여 외치고, 삭발하고, 단식하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장애인교육권 토론회에 참석한 한 학부모의 토로다. 이제 장애인과 그 부모의 절규에 의해서가 아닌 정부의 적극적 노력과 의지에 의해서, 현실적 자원과 조건을 재배치하고 조정해야 할 때다. 따라서 앞으로 발표될 장애인 교육권의 사례는 다음과 같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교육 의무가 무색하지 않을 것이다.
“저는 서울 중화동에서 태어나 줄곧 살고 있으며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지금은 약간 불편하기는 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걸을 수 있지만 초등학교에 다닐 당시만 해도 옆에서 다른 사람이 부축해 주어야 걸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태어난 후 곧 뇌병변 장애 진단을 받고 집 근처의 장애 영·유아 교육센터에서 무료로 장애영아 조기치료 및 교육을 받기 시작했으며, 통합유치원을 다니면서 비장애 친구들과 같이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도 통합학급에서 공부하는 어려움을 별로 느낄 수 없었고, 공부나 화장실 등 제가 학교생활 속에서 어려울 수도 있는 점들은 장애아 보조 선생님께서 잘 도와주셨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도 저의 장애를 잘 이해하고 배려해 주었습니다. 물론 학교에서는 치료교사가 배치되어 언어치료는 물론 보행훈련 등 치료교육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의 등하교는 장애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스쿨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고, 책상과 의자는 물론 화장실 변기도 제 신체 상황에 맞게 잘 제작되어 학교에서 생활하기에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 후 대학에서는 제가 공부하는 데 필요한 노트북은 물론 녹음기 등 느린 학습 속도를 보완해 줄 수 있는 학습기자재를 지원해 주었으며, 지도교수와 도우미친구 배치까지 여러 가지 제도와 장치들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현재 배움의 기회를 놓친 장애인들을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야학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있으며 취업을 위한 준비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장애인 학생들에 대한 취업상담도 잘 해주고 있기 때문에 취업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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