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일본돈 받은 걸로 돼 있더라"

'위안부' 할머니 폭로... 정대협, 일 정부의 공식배상 촉구

등록 2005.02.16 12:43수정 2005.02.1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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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11월 안면이 있는 친구 남동생의 요구에 따라 통장을 개설하고 '위안부' 피해자 등록증 등 관련 서류를 넘겨줬다. 이게 일본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하 '국민기금')과 관련 있다는 설명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내가 국민기금 수령자로 등록돼있다는 말이 들리고 주변에서 나를 비난했다. 그러나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온 적이 없다."('위안부' 피해자 심달연 할머니)

심달연 할머니.
심달연 할머니.오마이뉴스 김덕련
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 국민기금을 받겠다고 신청한 것으로 접수됐을 뿐 아니라 이미 돈을 지급받은 것으로 국민기금 쪽에 기록돼 있는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기금 재단은 민간 차원에서 기금을 조성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겠다는 명분으로 1995년 설립됐으나 '위안부' 피해자들과 관련 단체들은 그동안 '국민기금은 일본 정부 차원의 사죄와 배상을 피하기 위한 술수'라고 비판해왔다. 국민기금은 지난달 24일 설립 10주년 기자회견에서 2007년에 해산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상임대표 신혜수, 이하 정대협)와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16일 오전 충정로에 있는 정대협 교육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에 사는 '위안부' 피해자 심달연(79) 할머니가 일본 국민기금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국민기금 측에는 이미 지급된 것으로 기록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민기금, 서류만 있으면 본인 확인 없어도 기금 지급"

강혜정 정대협 국제협력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심 할머니는 요코다 유이치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지정해 기금 신청 서류 접수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국민연금 측에 몇 차례 요청했었다"고 밝힌 뒤 "그러나 국민연금 측은 '본인이 와야만 확인해 줄 수 있다'며 확인을 거부해 심 할머니가 14일에 직접 일본으로 갔다"고 말했다. 심 할머니의 국민기금 재단 방문에는 강 위원장과 안이정선 시민모임 운영위원, 요코다 유이치 변호사가 동행했다.

강 위원장은 이어 "그 자리에서 국민기금 관계자들은 심 할머니의 기금 수령 신청 서류가 접수돼 이미 지급했다고 말했으나 심 할머니 통장에는 기금이 들어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심 할머니는 "본인 확인 없이 돈을 지급하느냐고 묻자 그들은 '한국에서의 조사 같은 건 하지 않으며 서류가 접수되면 그에 따라 절차가 진행된다'고만 답했다"며 "서류가 어떻게 접수됐는지, 누구 통장으로 돈이 들어갔는지에 대한 답변은 못 들었으며 자체 조사 후 3월말까지 알려주겠다는 말만 들었다"고 밝혔다.


심 할머니는 그동안의 상황을 이야기한 뒤 "아무것도 모르는 등신 같은 나를 똑똑한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정대협과 시민모임은 이어 "이번 일은 국민기금 측이 기금 수령자를 늘리기 위해 본인 확인 과정도 없이 지급한 데서 비롯됐다"며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적·법적 책임을 회피하고자 만든 국민기금이 기금 지급 과정에서도 비도덕성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국민기금과 연관된 브로커 개입 의혹 제기

신혜수 정대협 상임대표는 이와 관련해 "국민기금 측은 그동안 한국, 필리핀, 대만의 '위안부' 피해자 285명에게 기금을 지급했다고 발표했지만 그 수치가 허구라는 게 드러났다"고 운을 뗀 뒤 "기금 수령자가 나라별로 각각 몇 명씩인지도 밝히지 않는 데서도 당당하지 못한 자세가 묻어난다"고 지적했다.

심 할머니와 정대협·시민모임은 또한 "심 할머니 외에도 기금 전달 과정에서의 의혹들이 다른 피해자들 사이에서 계속 제기돼왔다"며 "국민기금이 중간 브로커를 동원해 신청 서류를 수집하고 그 서류에 따라 본인 확인 절차 없이 돈을 지급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국민기금과 연관된 브로커가 개입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심 할머니와 정대협·시민모임은 "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에 대해 즉각 해명하고 공개 사과하라"고 국민기금 측에 촉구한 뒤 "일본정부는 국민기금 사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법적 배상을 조속히 실시하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과 관련해 "수사기관에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의뢰해 이번 사건의 의혹을 풀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일본 정부와 국민기금의 비도덕성을 국제사회에 폭로하고 '위안부' 문제 해결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이행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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