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차별 시정 일원화 추진

등록 2005.02.17 15:40수정 2005.02.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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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2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 집들이 당시 현판식 장면

2002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 집들이 당시 현판식 장면 ⓒ 인권위 자료사진

출범 2기를 맞은 국가인권위가 새로운 기회와 도전의 상황을 맞았다. 그 역할과 위상이 강화된다는 점에서 국가인권위는 국가인권기구로서의 면모를 더욱 튼튼히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만큼 책임이 함께 커진다는 점에선 만만찮은 과제인 셈이다.

여성부 노동부 차별 시정 기능 통합

이 같은 기회와 도전은 국가인권위가 지난 1월 21일 입법예고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에 담겨 있다. 개정안은 ‘차별 시정 기능의 국가인권위로의 일원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동안 정부의 여러 부처에 나뉘어 있던 차별시정 기능을 국가인권위가 흡수 통합해 그야말로 차별 시정 전담기구가 되는 것이다. 현재 차별 시정은 국가인권위와 여성부의 남녀차별개선위원회, 노동부의 고용평등위원회로 분산되어 있다.

‘일원화’는 차별 시정 기능이 이처럼 여러 기관으로 분산된 상황이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낸 데서 비롯됐다. 우선 국민들로선 차별을 당했을 때, 어느 기관을 이용해야 할지 다소 혼란스러웠다. 또한 유사한 사례에 대해 기관별로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있었다.

또한 차별 유형이 복잡해지면서 늘어나는 ‘복합 차별’에 대한 적절한 대응도 어려웠다. 이를테면 여성 장애인 고용차별 요소가 섞여 있는 경우, 이를 판정하고 시정하는 것은 어느 한쪽 측면만 고려해서는 곤란하다.

이처럼 사회가 다원화하고 차별도 복잡해져 가는 터에 차별 시정도 그에 따라야 할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여러 사정들에 의해 차별시정기구의 일원화 요구가 자연스럽게 제기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국가인권위인가? 무엇보다 차별 문제에 대해 그동안 국가인권위가 축적해 온 역량에 대한 평가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1년 출범한 이래 인권 보호와 개선을 위해 노력한 국가인권위의 활동 영역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자면 인권 침해와 차별 문제로 정리된다.


이 중 차별의 경우 국가인권위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그 유형을 18가지로 분류함으로써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의 정신을 법규와 판단 기준으로 구체화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이 같은 분류에 근거해 차별에 관한 많은 경험과 사례를 축적해 왔다.

차별시정위원회 신설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특징은 차별시정업무의 일원화에 따른 차별 사건을 전담하는 차별시정위원회의 신설과 조정업무의 활성화다. 또한 그간의 경험을 최대한 살리면서 더욱 커진 역할에 맞춰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위원회 체제 개편과 지방사무소 신설 내용도 담고 있다.

또한 차별 시정 업무 수행을 위한 관련 규정을 정비했다. 먼저 차별 사유 및 차별 영역이 확대됐다. 지금까지 18가지였던 평등권 침해(차별) 사유에 ‘학력’이 새로 추가됐다. 학력 차별은 ‘교육 관련 법에서 정한 수학 경력을 이유로 한 차별’로 정의됐다.

a 국가인권위는 현재 차별금지법 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현재 차별금지법 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인권위 자료사진

또 ‘혼인 여부’로만 돼 있던 것을 구체화해 ‘기혼 미혼 별거 이혼 사별 재혼 사실혼 등 혼인 여부’로 규정했으며 ‘가족 상황’도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으로 세분했다. 성별·성희롱·장애·병력·출신지역 등에 대한 정의 규정도 신설됐다.

특히 ‘성희롱’을 차별 영역에 포함하면서 그 정의에 대해 ‘업무 고용 기타 관계에서 공공기관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그 직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기타 요구 등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규정했다.

여기서 국가인권위가 차별 시정 업무를 전담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는 것도 밝혀 둘 필요가 있다. 각 부처에서 특화해 추진하던 업무를 국가인권위로 통합하게 되면 그만큼 전문성이 떨어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특히 소위원회 형태의 차별시정위원회가 차별에 관한 모든 업무를 맡도록 한 것은 차별 시정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11명으로 구성되는 여성부의 남녀차별개선위원회, 15명으로 이뤄진 노동부의 고용평등위원회에 비해 최대 5명에 ‘불과’한 차별시정위원회가 방대한 차별 시정 업무를 모두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우려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한 해답의 하나로 제시할 수 있는 게 차별시정위원회의 전문성 강화다.

개정안에 따르면 차별시정위원회는 성·장애 등 분야별 전문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할 수 있다. 이들 전문위원회에 소속된 전문위원들은 차별 관련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이들로, 차별시정위 위원들이 합리적인 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번 개정안에서 중요한 또 한 가지는 구제기구 기능의 핵심인 ‘조정’의 활성화다. 조정은 국가인권위 출범 때부터 국가인권위법에 포함돼 있었지만 실적이 적었다. 따라서 개정안은 차별시정의 핵심적 수단으로 조정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합의 권고 없이 당사자의 신청이나 직권으로 조정 절차를 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차별 진정에 대해 권고 외에 당사자간 이해 관계를 조율해 다양한 해결 방식이 가능토록 한 것이다. 조정 절차의 개시 요건 완화와 함께 조정위원회 구성도 성·장애 등 분야별로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조정위원단을 구성해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았다.

최영도 국가인권위 위원장은 이와 관련, “국가인권위가 가진 차별과 관련한 풍부한 경험의 바탕 위에 외부 전문가와 협력체계까지 갖춰지면 국가인권위로의 차별 시정 업무 일원화에 대한 우려를 걷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별시정 업무의 국가인권위 일원화는 그러나 국가인권위 내부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숙제를 더욱 무겁게 던져 주고 있다. 흔히 ‘인권 후진국은 침해 사건, 인권 선진국은 차별 사건’이라는 말이 있듯,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차별’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이다.

a 2003년 국가인권위가 제작한 <십시일反> 중 일부

2003년 국가인권위가 제작한 <십시일反> 중 일부 ⓒ 인권위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제도 보완

결국 국가인권위의 차별시정 전담 기구화는 아직도 미개척 영역인 차별 사건에 대한 더욱 많은 분발과 헌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기구와 인력의 확충 등 하드웨어와 함께 이를 운용하는 전문지식의 축적, 관련 규정의 정비 등 소프트웨어의 양 측면에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같은 노력의 하나로 들 수 있는 게 차별금지법 제정일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2003년 1월 차별 관련 단체, 학계, 법조계 등 17인의 전문가로 구성된 차별금지법제정추진위원회를 발족해 꾸준히 법안 마련 작업을 해왔다. 국내외 차별 관련 법령을 비교 검토하고 법안 관련 주요 쟁점을 정리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마련될 법안은 차별시정 업무에 중요한 틀로 기능할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2월에 열리는 임시국회를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 관한 법률’, 남녀고용평등법, 정부조직법 등이 동시에 개정 절차를 밟게 된다.

한편 이번 개정안과 별도로 국회에는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이 안에는 차별 시정 기능 일원화 외에도 국가인권위 독립성 확보, 조사권 강화 등 국가인권위의 위상과 권한을 실질화하기 위한 조항들이 들어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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