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을 찍었단 말이오"

반가운 매화가 여기 있었네.

등록 2005.02.19 18:50수정 2005.02.19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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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걸음도 가볍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당신 무슨 기분 좋은 일, 있었어요?”
마누라는 옷을 받으며 내 눈치를 살핍니다.
“그래요, 오늘 드디어 매화꽃을 찍었단 말이오. 하, 하.”
나는 기분 좋게 웃습니다.


반가운 매화야
반가운 매화야한성수
어제는 대동강 물도 풀리고 새싹이 돋는다는 우수였으므로, 오늘(토요일) 퇴근길에 나는 꽃망울을 잔뜩 부풀린 목련 나무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그러나 목련꽃 봉오리는 아직 힘만 주고 있을 뿐 여전히 함초롬히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테니스장 옆을 돌아 나옵니다. 그런데 가만! 하이얀 꽃송이와 꽃망울들이 보입니다. 그렇게도 찾던 매화꽃이 바로 코앞에 있었습니다.

테니스장옆 매화
테니스장옆 매화한성수
반가움과 설렘에 서둘러 셔터를 누릅니다. 이제 옆 건물을 도는데, 이쪽 화단에도 매화나무 두 그루에 꽃이 가득 피어 있습니다. 그 옆에는 홍매화의 꽃봉오리들이 싱그러운 봄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습니다. 나는 겨울에 핀 꽃을 찾아서 산으로, 들로 쏘다니면서 그렇게 꽃을 보고자 소망했는데도 없더니만, 우수를 넘긴 따뜻한 태양은 이렇게 눈부신 선물을 가져다줍니다. 인간이란 자연에 비하면 얼마나 초라한지요.

꽃망울을 가득 단 홍매화
꽃망울을 가득 단 홍매화한성수
병풍처럼 둘러친 진해 장복산을 바라보니 머리에는 희끗한 눈을 아직도 두건처럼 머리에 덮어쓰고 있습니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흰 눈을 배경으로 그보다 더욱 단아하고 해맑은 모습에 옛 선비들은 매화를 사군자의 으뜸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나는 차를 타고 집으로 옵니다. 그런데 토요일이라 길이 막혀 창원명지여고 뒤편 산 쪽으로 난 길을 돌아오는데, 여기에도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모습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모습한성수
마누라는 매화꽃도 좋아하지만 그 열매인 매실은 더 좋아합니다. 매년 마누라는 매실을 사서는 설탕과 매실을 반반씩 넣어 매실청을 만들어 두는데, 소화가 되지 않거나 체했을 때는 효과가 그만이라며 약보다는 항상 그 샛노란 액체를 한 숟가락 가득 떠서 내밉니다. 그리고 건져낸 과육은 고아서 받쳐내어 다시 고추장을 담글 때 함께 넣습니다. 마지막으로 잘 말려서 뽀얗고 매끈한 씨는 베개피 속에 넣어 베개를 만드는데, 마누라는 머리를 맑게 해 준다고 선전을 하는 통에, 아이들끼리 매실베개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기도 합니다.

단아한 매화꽃 송이
단아한 매화꽃 송이한성수
마지막으로 평양기생 '매화'가 지은, '매화' 시조 한가락을 읊고 마치겠습니다.


매화 옛등걸에 봄졀이 도라오니 옛 퓌던 가지에 피엄즉도 하다마는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퓔동말동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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