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어깨끈은 끊어지고, 아이젠 고리는 풀리고

사면초가 사패산 산행기

등록 2005.02.21 08:22수정 2005.02.2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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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토요일, 느지막히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 시간은 오전 11시쯤. 전철을 타고 망월사역을 지날 때쯤에서야 전철역에 등산용 스틱을 그대로 두고 온 사실을 알았다. "그냥 갈까?" "아냐! 4만원이나 주고 산 건데..." 온 길을 다시 돌아와 보니 다행이 스틱이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목적지인 국철 회룡역에 도착한 것은 이미 30여분을 허비한 후였다. 초행길이라 여기저기를 둘러보기도 하고 묻기도 해 회룡골 매표소에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간편한 옷차림이었으나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내려가는 것을 감안해 준비해 온 두꺼운 옷을 입었다. 그리고 다시 배낭을 메는데 이게 웬일! 배낭의 어깨끈이 "툭" 끊어져 버렸다. 에휴! '싼 게 비지떡'이라고 만원인가를 주고 산 중국산이라 조마조마했는데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러나 어이하랴! 그대로 가는 수밖에. 대충 수습을 해서 산을 올랐다.


얼마 가지 않아 눈과 빙판길이 나타났다. 다시 준비해 온 아이젠을 착용했다. 미끄러질 걱정 없이 가뿐하게 몇 걸음을 옮기는데 어라! 이건 또 뭐야! 아이젠의 고리가 자꾸 풀린다. 이건 할인점에서 제일 비싼 걸로 사온 건데... 몇 걸음을 가다가는 고리가 풀어져 다시 채워야 하고 몇 걸음을 가서는 다시 또 그래야 하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세 개의 고리 중 두 개를 아예 떼어 버리고 한 개만으로 지탱했더니 풀어지지 않는다. 오늘은 왜 이렇게 모든 일이 꼬이는 걸까?

신산스런 마음을 애써 감추며 발을 옮긴다. "뽀드득!" "뽀드득!" 하얀 눈을 밟으며 산길을 오르는 맛이 아주 일품이다. 나는 위험하다는 생각에 겨울에는 잘 산에 오지 않는데 준비만 잘하고 오면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능선을 타고 서울 북부와 의정부의 전경을 감상하며 걸음을 재촉하자 어느새 정상. 약간 가파른 바위를 오르자 제법 넓직한 마당이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도봉산과 북한산의 모습이 북쪽으로는 송추, 서쪽으로 의정부와 수락산, 불암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차가운 바람이 사람의 몸을 밀어낼 정도로 매섭게 불어대는 와중에서도 나는 이 모든 전경을 조심스럽게 마음과 카메라에 담았다.

a 사패산 정상에서 바라본 수락산과 불암산쪽 전경

사패산 정상에서 바라본 수락산과 불암산쪽 전경 ⓒ 이양훈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준비해 온 컵라면을 꺼냈는데 아!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젓가락이 없다. 어쩔 것인가! 나뭇가지로 대신하는 수밖에. 오늘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그래도 허기를 반찬 삼아 국물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컵라면을 깨끗이 비웠다. 물론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기특한 마음도 함께 있었다.

혹시 산에서 길을 잃으면 쓰라고 아들 녀석이 챙겨준 나침반을 들고 이리저리 방향을 재 보았다. 그저 짐작으로 저쪽이 북쪽이고 저쪽이 남쪽일 것이라는 그동안의 어설픈 해석과 달리 정북을 재보고 정남을 바라보는 느낌도 새롭기만하다. 아들 녀석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올라온 길과는 다르게 안골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사전 조사에 의해 시간은 약간 더 걸릴 수도 있겠으나 올라온 회룡골 코스보다 계곡미가 뛰어나다고 하니 한번 보아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도 미끄럼을 방지해 주는 아이젠이 있어 두렵지 않다. 터벅 터벅 아무도 없는 산길을 내려온 지 30~40분이나 되었을까.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의 큰 길이 나타났다. 물론 콘크리트로 포장까지 되어 있다. 주위를 둘러 보니 역시 길을 따라 암자가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럼 그렇지..." 이쯤 되면 하산길의 고즈넉한 정취는 그야말로 끝이다. 깨끗이 포기하고 터덜터널 '차 길'을 따라 내려온다.


하늘 위로 고가도로가 보인다. 바로 말 많고 탈 많았던 사패산 터널로 이어지는 도로다. 예상 가능한 '경제적 효용'을 위해 국립공원의 속살을 뚫고 터널을 만들겠다고 해서 여러 시민단체와 건설사간에 치열한 공방이 오고갔던 바로 그 현장이다. 이 싸움엔 집사람도 열성적으로 참여했었다. 그 길을 따라 내려오는 마음이 예사로울 리 없다.

사패산(賜牌山)

남북으로 길게 뻗은 북한산 국립공원의 북쪽 끝,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 송추와 의정부시에 맞닿아 있는 높이 552m의 그리 높지도 험하지도 않은 곳이 바로 '사패산'이다.

이 산은 얼마 전까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일반인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데다 북한산과 도봉산의 명성에 가려져 등산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미의 속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도 1급수에서만 사는 가재와 날도래, 강도래 등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사패산(賜牌山)이란 산의 명칭은 조선시대 선조의 여섯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에게 시집올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이양훈 기자
안골길은 회룡골보다 큰 계곡을 끼고 있고 수량도 풍부하다고 하니 여름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 것 같다. 여기저기에 소개되어 있듯이 운이 좋으면 그 계곡 속에서 어린 시절에 잡고 놀았던 '가재'를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안골길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는 배드민턴장이나 굿당, 음식점들의 모습 또한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는다. 내년에, 내후년에 다시 이 길을 찾았을 때 제발 지금만큼만이라도 사패산이 보호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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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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