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큐 통돼지의 혀, 사장님 입맛에 맞으실까?

[오마이뉴스와 나] 언론사에 대한 나쁜 기억을 잊게 해준 <오마이뉴스>

등록 2005.02.21 12:52수정 2005.02.2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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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28일부터 쓴 기사가 이제 겨우 37개. 잊혀질 만하면, 가끔씩 기사를 올리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시민기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여름, 뉴스게릴라들의 이야기가 묶여 나온 책 <아 유 해피?>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오는 22일에 <오마이뉴스> 창간 다섯돌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사실 <오마이뉴스>에서 저를 초대하지 않아도 '제 발로' 찾아 갈 생각이었습니다. 활동도 변변찮으면서 그새 많이 뻔뻔해진 것 같습니다.

뷔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처음 만난 언론사, 언론인

사실 '언론사' 행사에 참석(?)한 것이 <오마이뉴스>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97년 말 내지 98년 초였던 걸로 기억됩니다. IMF가 터지고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골 아픈' 시기였습니다.

학교의 취업 게시판을 살피다가 '급구'라고 쓰여 있는 아르바이트 소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자친구가 살고 있던 동네의 한 뷔페업체에서 내건 구인 광고였습니다. 문득 그녀에게 맛난 것도 변변히 사 주지 못하던 내 가난한 주머니 사정이 생각났습니다.

그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해당 업체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일반 식당이 아닌 출장 뷔페업체였습니다. 트럭에 몸을 싣고 향한 곳은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한 언론사였습니다. 그곳의 창간 기념 행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참 가져간 음식을 나르고 있던 중 그곳의 담당자인 듯한 분이 나왔습니다.


함께 나간 팀장은 깍듯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불러 주셔서' 고맙다며 큰 인사를 올렸습니다. 흡족한 표정의 '그 분'은 저와 함께 나간 또 한명의 아르바이트생 둘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야"도 아닌 "임마"로 시작해서 "새끼"로 끝나는 명령들이 이어졌습니다. 당연히 듣는 속이 좋진 않았지만 '그러려니'하고 묵묵히 시키는 준비를 해 나갔습니다. 뷔페업체에서 몇 번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긴 했지만 그날의 행사 준비는 몇 갑절 힘들었습니다.


'사장님'께서 오시는데 준비가 이것밖에 안되냐며 어찌나 닥달해 대는지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사장님이" "사장님께서…" 그날 그 말을 백번은 더 들었습니다. 잠시 후, 팀장이 차에서 안내린 음식이 있다며 황급히 가져올 것을 지시했습니다.

음식물을 나르는 카트를 밀고 긴 복도를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그 분이 어디선가 뛰어 나와 "지금 사장님이 내려오시고 계시다"며 빨리 피하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몸을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카트를 밀었는데 그만 문턱에 걸려 "덜커덩"하는 소리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이런 ××새끼가, ××라고 환장을 했나!"

화가 나서라기보다는 보다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뭘 봐? 이 ××, ×같은 새끼야! 확 눈깔을 뽑아 버릴까 보다."

그가 한대 올려 붙일 듯한 기세로 다가왔습니다. 손에 칼이라도 쥐어져 있다면 영화 <친구>의 한장면 마냥 그대로 찌를 듯한 태세였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귀하신' 사장님께서 음식 나르는 아르바이트생을 보면 무슨 큰 일이 생긴다고 저렇게 할까 싶었습니다.

다행히(?) 그는 협박만을 하고 사장님을 '영접'하러 뒤돌아 섰습니다. 한숨을 푹 쉬곤 건물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있으려니 뷔페업체의 '팀장'이 나왔습니다. 그는 좋은 사회 경험 쌓는다고 생각하라며 자신을 봐서 참아 달라고 어깨를 두들겨 줬습니다.

바비큐 통돼지의 혀, 사장님 입맛에 맞으실까?

거기까지만이었다면 지금처럼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진 않았을 겁니다. 사장님이 들어오실 때에 맞춰 제공된 특별 요리는 '통돼지 바비큐 구이'였습니다. 당시로서는 그리 흔하지 않던 '파티 음식'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고기를 나누어 주는 일은 제 담당이었습니다. 매너 있고 자상한 대다수 참석자들의 호의 덕에 잠시 전의 일은 잊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사장님께 맛있는 살코기를 드려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던 그 분이 접시를 들이밀었지만 그저 '별난' 충성심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그렇게 한바퀴 정도 사람이 돌고 난 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려 할 때였습니다. 그 분이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싱글싱글 웃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왜 그러나' 하다가 혹시 아까 일이 미안해서 그런가 싶어 함께 미소를 지었습니다. 참으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의 표정, 제 앞으로 가까이 다가 온 그는 갑자기 혀를 길게 빼어 날름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술 냄새도 나지 않아 '혹시 이 사람이 어떻게 된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는 한참을 어린 아이 마냥 혀를 흔들어 댔습니다.

"저한테 무슨 하실 말씀 있으신 가요?"
"이거 달라고, 새꺄."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혀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아, 그 새끼 말 ×나게 못 알아 듣네. 혓바닥 내놓으라고, 이 새끼야!"

'그 다운' 표정이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한 것은 돼지의 혓바닥이었습니다. 그 귀한 걸 사장님께 바쳐야 한다며, 돼지의 입에 손을 넣어 혀를 뽑을 것을 명령했습니다. 싫다기보다 어떻게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자, 재차 민망한 욕설이 날선 창처럼 날아들었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벌려 손을 넣었습니다. 생각만큼 쉽게 뽑히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그의 입이 거칠게 일그러질 때, 있는 힘을 다해 떼어 냈습니다. 하지만 어린 돼지인 탓에 뽑힌 부분은 손바닥보다도 작았고 그나마 거의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습니다. 건네 받은 그의 표정 역시 검게 타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말라 붙은 혀와 '사장님' 쪽을 번갈아 보던 그는 나지막한 욕설과 함께 혀 조각을 제 얼굴로 던졌습니다.

"에이, ××. 야, 너나 × 먹어라. 이 새끼야."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20대 후반의 젊은 피가 꿈틀거렸습니다. 아르바이트고 뭐고 드라마의 한장면처럼 모든 것을 '뒤집어 엎어' 버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때 "일 끝나고 올 때까지, 오빠 몫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있겠다"던 순박하고 어린 여자 친구가 떠올랐고 그녀에게 오랜만에 맛난 저녁을 사 주겠노라고 새끼손가락을 걸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참았습니다. 분노로 오히려 창백해진 얼굴을 보고 누군가 안부를 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 언론사에 근무하시는 분들에게는 대단히 죄송스럽지만- 오히려 다른 모든 분들은 상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그 일로 뒤로, 한동안 그곳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가졌음을 고백합니다. 유치하게도 단지 그 '한사람' 때문에 그런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특정 언론보다는 언론에 관계된 모든 사람이 싫어졌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어리석은 감정인 줄 알았지만 '적어도' 그때는 그랬습니다.

그 후, 주위 선후배에게 그날의 일을 보태지도 않고 뺄 것도 없이 들려 줬을 때, 모두들 비웃었습니다. "형이 그렇게 성격 좋은 줄 이제 알았다"는 후배부터 "성격 개조 학원에서 인내력 수강 중이냐"는 선배까지, 모두 어이가 없다며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론사니까' '언론사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사에 근무하는 사람이니까'. 감히 '일개 시민'으로서 '언론사의 성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어떻게 해 볼 생각 자체를 못했던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저 독한 술을 찾는 것일 뿐.

"기자도 쫓겨나는구나, 참 안됐네"

그저 '들르기나 하던' <오마이뉴스>에 주목하게 된 건 2001년 초였습니다. 다름 아닌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시민기자가 볼썽 사납게 쫓겨 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기존 언론의 틈바구니에서 서러움을 맛보아야 했던 사정을 읽으며 '에구, 이 사람들도 퍽이나 안 됐구나'싶어 혀를 끌끌 찼고, 왠지 모를 동병상련(?)의 아픔을 본 것 같아 안쓰럽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읽던 중 <오마이뉴스>를 야멸차게 내치는 과정에서 한 언론매체의 기자가 '큰' 몫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때는 위에 언급한 언론의 자회사였던 곳이었습니다. 그날의 '그분'처럼 그도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한대 때릴 듯 달려들었다는 기사를 보곤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이어 격분한 네티즌들이 그곳의 홈페이지에 몰려가 게시판을 초토화시키는 것을 '즐겁고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곳과 아르바이트를 했던 언론사가 별개의 회사로 분리된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치사하게도, '쌤통'이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시민기자' 이전, <오마이뉴스> 독자로서의 솔직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럴 수도 있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견고한 성역의 기존 언론이 그렇게 '된통' 당할 수도 있구나 싶어 신기했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고 배워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 8월 20일. <아유해피> 출판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뉴스게릴라들과 오연호 대표.
2004년 8월 20일. <아유해피> 출판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뉴스게릴라들과 오연호 대표.오마이뉴스
작년 여름, <오마이뉴스>에서 <아 유 해피?>에 글을 실은 시민기자들과 책 출판을 축하하는 조촐한 자리가 있다고 연락이 왔을 때 무척 망설였습니다. 그 이유를 살피다 그것이 '언론사'에서의 초대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럭 부담이 됐던 것입니다. 어쨌건 그곳의 사람들은 조금은 '특별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오마이뉴스>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었습니다. 누가 시민기자이고 상근기자인지 물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고 함께 어울려 밝게 웃는 모습은 기자보다는 동네 담배 가게에서 마주치는 이웃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오가며 웃음을 터뜨리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연호 대표의 모습이었습니다. 편안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술 한잔을 권할 용기까지는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라는 책에 사인을 받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불충(?)스럽게도 대표에게 어떠한 '특별 영접'도 베풀지 않고 편안한 시간을 갖던 여러 직원들,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섞여 앉아 이가 쏟아지게 웃던 모습들, 부딪히던 건배와 진지하고 때론 유쾌한 대화들… 그 밤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따스한 장면들이 나름대로 '선수'인 척 행동했던, 하지만 속으론 상처받을까 두려워하던, 마음의 빗장을 풀어 버린 듯싶었습니다.

개인적 앙금(?)에서 시작한 시민기자 활동

생각해 보면 <오마이뉴스>에 다가서게 된 동기는 이렇게 작은 개인적 앙금(?)에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작은 인연들과 사연들이 모여 만들어 낸 것이 지금의 <오마이뉴스>가 아닐까 합니다.

모든 시민이 기자가 되어 내 마음의 신문고를 울릴 수 있는 곳. 그것이야말로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오마이뉴스>의 매력인 듯합니다. 또 동시에 수많은 시민들을 기자로 '빠져 들게' 만드는 <오마이뉴스> 만의 비결이 아닐까 합니다.

2005년, 예전 한 언론사의 기념식장에서 배부른 욕을 먹던 대학생은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창간 초창기, 가는 곳마다 찬밥 대접을 받던 <오마이뉴스>도 이 땅의 바른 언론으로 굳건히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양쪽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옳지 못한 것을 바라보던 '맑은 눈'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아 나갈 줄 아는 진정한 용기일 듯 싶습니다. 저 자신은 어떤지 모르지만 <오마이뉴스>만큼은 그런 영혼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2월 22일, <오마이뉴스> 창간 다섯돌의 행사. 맛난 음식과 '좋아하는' 술이 있겠지만, 맑은 정신으로 <오마이뉴스> 역사의 한장면을 오롯이 기억하고, 마음 속으로 '취재'하려 합니다. <오마이뉴스>가 "오! 나의 뉴스"라고 생각하는 모든 시민과 기자가 내뿜을 열기가 이미 느껴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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