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춤 끌러 똥 한 덩이 내려놓고

나의 '쉬운 사랑' 이야기

등록 2005.02.21 17:34수정 2005.02.2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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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글쓰기 교실에서 만난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과 톨스토이의 인생론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왜 사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문호의 대답은 아주 간명했다. 사랑하기 위해서. 그런데 사랑이 뭐지? 질문이 떨어지지가 무섭게 한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다.

"에로부인요."

참 조숙한 녀석이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이는 '엘오비이'하고 'love'의 철자를 발음했는데 어른인 내 귀에는 그것이 '에로부인'으로 들린 것이었다. 적이 실망스럽기도 하고 웃음도 났지만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을까? 슬그머니 몸을 돌려 칠판에 자작시 한 편을 써 내려갔다.

뒤가 급하여
풀숲 헤치고 뛰어들어간 산 속에서
바지춤 끌러 똥 한 덩이 내려놓고
긴 날숨 내쉬다가 나는 보았네
보랏빛 감도는 들꽃 한 송이
코끝에 와 닿을 듯
눈앞에서 피어 있는 것을

숲은 고요했네
천지간에 꽃 한 송이 피어 있었네

나는 꽃잎이 다칠까봐
차마 다가서지 못하고
밑도 닦는 둥 마는 둥
뒷걸음을 놓아 도망치듯
숲을 빠져 나왔네.

-시, ‘사랑’ 전문


무슨 상상하고 있는지 키득키득 웃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나는 이렇게 물었다.


"왜 시 제목을 사랑이라고 정했을까요?"

아이들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보아하니 몇 아이는 아직도 눈이 '바지춤 끌러 똥 한 덩이 내려놓고'에서 멈춰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혹시 녀석들은 똥과 사랑의 함수관계를 파헤치느라 머리를 짜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이렇게 우회전술을 써 보았다.

"꽃이 예쁘다고 그 꽃을 꺾는 것이 사랑일까요?"


그 물음에 "아니요"하고 씩씩하게 대답을 한 아이들이나,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 아이들이나, 그 정도면 사랑을 얘기해줄 만하다 싶어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다시 입을 열었다.

"사과를 반으로 쪼개서 큰 쪽과 작은 쪽이 나오면 여러분은 어느 쪽을 먹겠어요? 그야 당연히 큰 쪽이겠지요?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선뜻 큰 쪽을 주고 싶지는 않을 거에요. 그런데 만약 반으로 쪼갠 사과 두 쪽 중에서 큰 쪽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또 앞으로 그런 사람이 생긴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자기 것을 더 많이 챙기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사람의 본심인데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먹은 사과 반쪽도 곧 내가 먹은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굳이 큰 쪽을 욕심내지 않게 되거든요. 결국 반쪽을 먹었지만 사실은 온전한 사과 하나를 다 먹은 셈이 되고요. 그래서 사랑은 희생이지만 꼭 희생이라고 말할 수도 없어요."

이런 신기한 사랑의 원리를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자주 들려주는 편이다. 사랑과 욕망을 혼동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아닌가. 거기에 오로지 자신의 출세와 행복만을 위해서 공부하기를 강요당하는 아이들이라면 어른이 되어서도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다보면 가장 가까운 부부 사이라도 사과 한쪽의 차이를 견주며 싸우다가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다.

사랑은 이론일까? 실천일까? 사랑을 얘기하면서 아이들에게 던지는 물음 중 하나다. 아이들은 금세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실천입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을 한다.

그렇다. 사랑은 실천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문제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닐진대 교사가 학생들에게 이론적으로 들려주는 이런 사랑의 원리가 무슨 실효성이 있겠는가? 더욱이 입시위주 교육의 틀에서는 사랑의 지식조차도 시험 답안으로 써내고 나면 그만인 것을.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아이들을 몸소 사랑하는 것. 사랑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 그리하여 아이들도 그런 사랑을 하고 싶도록 만드는 것. 이것은 쉬운 일일까? 어려운 일일까? 중요한 것은 쉬워야 아이들이 따라한다는 것이다.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워야. 어떻게 하면 사랑을 쉽게 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아주 오래된 습관이 하나 있다. 잠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속옷 바람으로 거실에 나가 기도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급한 볼일이 있어도 기도를 끝낸 뒤에야 일을 본다. 그러다보면 항문에 힘을 잔뜩 주고 고통스럽게(?) 기도를 할 때도 있다.

왜 나는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마냥 평화롭거나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많다.

언젠가 기도 속에서 한 아이가 떠올랐다. 수업시간이면 습관적으로 잠을 자는 아이였다. 책도 공책도 심지어는 볼펜조차 가지고 오지 않아 손바닥으로 등짝을 내리쳐 잠을 깨워놓아도 멍하니 앉아 있기가 일쑤였다.

오랜 습관에 젖어 버린 그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잔소리나 점수상의 불이익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도 없어 수업시간마다 속을 끓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터였다.

그날 아침, 기도 속에 떠오른 그 아이의 모습은 어딘지 낯설어 보였다. 그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지만 그것은 결국 나를 위한 기도였다. 제자를 사랑하는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한 나를 위한 기도. 나는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속을 끓인 날이 많았지만 그를 사랑함으로 괴로웠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것도 그를 아끼는 마음에서라기보다는, 제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교사가 되고 싶은 나의 이기적인 욕망이 작용한 탓이었을 뿐. 이것이 그날 신의 절대적인 거울에 드러난 나의 진면목이었다.

이런 폭풍의 시간이 지나면 나는 사랑이 쉬워진다. 그렇다고 아이들 때문에 속을 끓이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속을 태울망정 이제야 시작한 진짜 사랑을 멈추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긴,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는데 사랑이 쉽지 않고 배기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지 <사과나무>에도 기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지 <사과나무>에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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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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