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태조 이성계의 태실을 보며

탯줄 또한 부모님이 주신 것이다

등록 2005.02.22 09:04수정 2005.02.2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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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태조 이성계의 태실을 찾아 간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 주신다.

옛날에 어느 양반 부잣집에 아주 건강하고 잘 생긴 외동아들이 하나 있었단다. 글공부도 열심히 해서 이 집의 즐거움이자 희망이기도 했지.


그러던 어느 날 입성이 누추해 보이는 한 사내가 찾아와서는 하는 말이

"보아하니 이 집은 행복이 넘쳐 나는 것 같구려. 불행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어요. 그러나 내가 이 집에 우환이 생기게 할 수도 있고 망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그에 합당하는 금전적인 보상을 해 주시오!"

물론 집 주인은 "웬 미친놈이냐!"며 두들겨 내쫓았단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뒤부터 과연 그 건강하고 잘 생겼던 외동아들이 갑자기 눈이 아프다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급기야 숨을 놓고야 말았단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지.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튼튼하기만 했던 아들이 백약이 무효로 원인조차 알 수 없이 저 세상으로 가 버리자 그만 정신이 나가고 말았던 거야.

바로 그 때! 지난 날 이 집에 와서 허무맹랑한 협박을 늘어놓던 사내가 다시 찾아 왔어. 집주인은 버선발로 뛰어나가 아이를 살려 달라고 애원을 했지. 사내가 다시 얘기했단다.


"아들을 살려 줄 터이니 재산의 반을 내놓으시겠소?"

집주인은 당연히 그러마고 했다. 사내는 휘적휘적 발을 놀려 마을의 뒷산으로 올라갔다. 이 집의 선산이기도 했던 그곳에는 외동아들의 태를 묻어 놓은 곳이 있었는데 바로 그 아래에 조그만 연못이 있었단다. 사내는 그 연못 속에 있던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 올려서는 물고기의 눈에 박혀있던 조그만 가시 하나를 뽑아내었다. 그리고는 자리를 함께 한 집주인에게 나지막이 얘기했어.


"이 물고기가 바로 귀하디귀한 당신 아들의 현신이오."

"이 물고기의 눈에 바늘을 꽂아 눈이 아프게 했고 그로 인해 목숨까지 잃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오!"

"이것은 내가 당신의 재산이 탐이 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들 귀한 줄만 알고 그 귀한 아들의 정기를 품고 있는 '태'를 허술히 한 것에 대한 경고요"

"옛 부터 크게 될 사람의 태에서는 이렇듯 물이 나와서 스스로 연못을 만들고 자신의 분신으로 물고기 한 마리를 기르게 되어 있소."

"저 물고기가 잘 자라야 당신의 아들도 본래의 운명을 잘 찾아 귀하게 될 수 있소."

"당신아들은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야 할 사람이니 부디 이 태실과 연못의 물고기를 잘 관리하시기를 바라오!"

그리고는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단다. 집에 돌아와 보니 놀랍게도 죽었던 아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살아나 있었다는 게야. 크게 깨달은 집주인은 그동안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던 태실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소중하게 관리를 했고 이 아들은 나중에 사내의 예언대로 나라의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한 큰 인물이 되었단다.

"네가 태실에 간다고 하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하는 얘기다!"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났다. 하지만 구수한 어머니의 옛날이야기 속에 내포되어 있듯이 '탯줄'에 대해 조심스럽고 성스럽게 생각해 왔던 선조들의 그 애틋한 마음은 내내 내 가슴을 떠나지 못했다.

우리 민족은 이렇게 예부터 사람의 태를 함부로 생각하지 않고 소중히 여겨왔다. 일반의 사가에서도 이러할 진데 그것이 왕가의 것! 특히나 한 나라를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것이라면 그 대우가 어떠했을 지 짐작하기가 과히 어렵지 않다.

태조 이성계의 태실은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秋富面) 마전리에 있다.

조선 초기, 한 시인이 만인산을 보고 산세가 깊고 중첩한 산봉우리는 연꽃이 만발한 것 같고 99산의 물이 한곳으로 모여든다고 찬양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실이 이곳에 태조의 태실을 축조하였고, 옥계부사를 두어 관리하도록 하였다. 지금도 추부면 장대리에 ‘玉溪府使都’라는 고적이 남아 있고, 비례리(備禮里)의 이름도 그 지점부터 예를 갖추고 태실에 참배하였다는 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태봉산'이라는 산의 이름 역시 원래는 '만인산'이라 불렀으나 태조의 태를 묻었다 하여 태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태실은 처음 함경도 본궁(本宮)의 용연(龍淵)에 안치되어 있던 것을 무학대사의 지시로 이곳으로 옮기고 태실비를 세웠다고도 한다.

그 뒤 오백여년간이나 변함없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태조의 태실은 1928년 조선총독부에서 관리의 용이성을 들어 전국 각지의 '명당자리'에 산재해 있던 역대 왕들의 태묘를 한 곳으로 옮기는 와중에서 부서지고 허물어져 석비와 석조물만이 남아 원형을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그 뒤 1993년 현 위치인 추부면 마전리 산 1-66번지에 복원했다고 한다. 원래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다.

a 복원되어 있는 조선 태조대왕 태실

복원되어 있는 조선 태조대왕 태실 ⓒ 이양훈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이 만행은 사실 역대 왕들의 '태'를 봉안했던, 당시까지 온 나라의 도자기 기술이 총집결된 아름다운 '조선백자'를 탐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고 그 만행에 의해 지금, 조선 역대 왕들의 태묘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경기도 원당, 서삼릉의 한 귀퉁이에 마치 공동묘지처럼 반 평 남짓한 자리를 겨우 얻어 줄지어 서 있을 뿐이다.

눈 덮인 조선태조 이성계의 태실 앞에 서서, 그야말로 '탯줄' 하나까지도 소중히 여겨왔던 조상들의 차원 높은 정신세계를 잠시나마 가늠해 보면서도 씁쓸한 마음 지울 수가 없다.

a 눈을 뒤집어 쓰고있는 거북이의 모습이 처량하다

눈을 뒤집어 쓰고있는 거북이의 모습이 처량하다 ⓒ 이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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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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