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특정 정파·집단 위한 개악"

천기흥 신임 변협 회장, 취임사서 사법 개혁안 비판 '파문'

등록 2005.02.21 21:29수정 2005.02.2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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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는 21일 서울 메리어트  호텔에서 제43회 정기총회를 열고 신임 회장으로 천기흥(사시8회)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선출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1일 서울 메리어트 호텔에서 제43회 정기총회를 열고 신임 회장으로 천기흥(사시8회)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선출했다.연합뉴스
"변호사를 포함한 우리 법조사회 전체는 요사이 사법개혁의 회오리에 휘말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힘든 상황이다. 국민을 위한 개혁에는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국민의 이름을 빌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취하거나 대중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왜곡된 개혁이라면 반대하겠다."

새로운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천기흥(62·사법시험 8회)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이 21일 서울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제43회 대한변협 정기총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천 신임 회장의 이날 발언은 그동안 국민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추진돼 온 사법개혁 방향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향후 사법개혁 추진 문제를 놓고 정부와의 갈등을 예고했다.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천 신임 회장의 이번 발언에 대해 변호사회 내부 진보 성향 변호사들과 시민단체는 우려하고 있다.

"천 회장 발언은 법조계 전체 의견 아니다...
사법개혁에 대한 '발목잡기'일 뿐"


천 신임 회장은 사법개혁위원회(이하 사개위)가 도입키로 결정한 법학대학원 제도(이른바 로스쿨)에 대해 "7년제 법과대학을 만들어야 국제 경쟁력이 생기는가"라며 "변호사 대량 생산 목적을 위해 엉뚱하게 미국식 로스쿨 제도를 가정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개혁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고 반대의 칼날을 날카롭게 세웠다.

또 그는 사개위 활동의 성과로 평가받고 있는 '국민의 사법참여'와 '법조일원화', '법률시장 개방' 등도 비판하면서 사개위의 사법개혁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천 신임 회장은 "(사개위의 추진 사항이) 진행된다면 그것은 결국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고 어느 정파나 집단의 이익을 위한 개악의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뿐"이라며 "정당하고 합리적인 개혁에는 동의하고 협조할 것이지만 진정 국민을 위한 길이 아니라고 평가할 때나 부당하고 불합리한 개혁은 단호히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 대한변협 집행부 소속이었던 모 변호사는 "국민들의 기대 속에서 각계 인사가 참여해 활동한 사법개혁위원회는 국민의 사법참여와 법조일원화 등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며 "이 부분에 대해 천 신임 회장이 정치적인 입장에서 반대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국민들의 정서와 바람에서 동떨어진 일방적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천 신임 회장의 발언은 변호사를 포함한 법조계 전체의 의견은 아니다"라며 "로스쿨 도입과 관련해 (법조계) 일부에서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모든 변호사들의 의견으로) 싸잡아서 반대하는 것은 사법개혁에 대한 '발목잡기'이자 '제동걸기'"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무엇보다 사개위의 논의결과에 대해 국민들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천 신임 회장의 입장은 국민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과거회귀식 발상"이라고 말했다.

천 회장, '변호사 생존권 보장' 강조... 시민단체 "사법개혁 방향 바뀌지 않을 것"

천 신임 회장은 "국가가 변호사들의 공익적인 헌신만큼 그 지위와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앞으로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추진할 사법개혁 과정에서 변호사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또 천 신임 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법관 제청 문제와 관련해 "대법관 제청 때마다 언론에서 보수, 개혁을 먼저 따지는데 어떤 기준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판결 몇 개 이상하게 썼다고 해서, 젊다고 해서, 여성이라서 대법관이 돼야 한다는 사고에는 반대한다"면서 일부 시민단체, 재야 법조계와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외에도 천 신임 회장은 변호사 수 증원 등 사법개혁 방향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관계자는 "변협 회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동안 추진해온 사법개혁의 방향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천 신임 회장의 선출로 인해 변협의 성격이 보수로 퇴행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변협의 의견이) 긍정적인 비판이라면 받아들일 것"이라며 "그러나 이미 합의된 (사법개혁) 내용에 대해 (변호사들의) 이기주의에 토대를 두고 비판을 한다면 변호사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천 신임 변협 회장 반대한 민변 포용할까?

한편 천 신임 회장은 지난달 31일 변협 회장 후보 선출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회원들이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김성기(64·사시 16회) 변호사와 표대결에서 64표란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를 놓고 법조계에서는 참여정부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민변과 대립각을 세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천 신임 회장은 일단 "지난번 후보 선출 때 민변의 유력 변호사들이 상대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게 민변 전체의 뜻이라고는 해석하지 말아달라"면서 모든 변호사 단체를 끌어안고 가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민변 소속 모 변호사는 "이전 (박재승 전임 회장 체제의) 변협 지도부에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대거 진출해 개혁적인 성향을 보여왔다"며 "결과적으로 천 변호사가 신임 변협 회장에 선출된 것은 (이전 지도부에) 반발한 보수적인 회원들에게 부메랑을 맞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천 신임 회장와 지도부에 대해) 지금 뭐라고 평가하기 보다 향후 활동을 지켜보면서 평가나 비판을 가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천기흥 신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천기흥 신임 변협 회장은 지난 1973년 부산지방검찰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으로 법조계에 들어섰다. 이어 사법연수원 교수와 법무부 섭외법무심의관, 서울지검 형사부장, 총무부장을 역임했다. 그는 1991년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2003년 서울변호사회 회장을 맡았다.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이번 43대 변협 회장선거에 단독 출마했으며, 정기총회에 참석한 대의원 133명의 박수로 신임 협회장 자리에 올랐다.

천 신임 회장은 지난해 대통령 탄핵사태가 발생하자, 변협의 즉각적인 탄핵반대 성명에 대해 "탄핵반대가 전체 변호사들의 의견인 것처럼 국민들에게 전달되고 있다"며 당시 제42대 변협 집행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그는 또 최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이사장직을 사퇴한 '정수장학회' 이사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천 신임 회장을 도와 활동할 부회장 5명과 상임이사 등 새로운 지도부도 선출됐다. 부회장은 유정주 유정주(서울회), 조영진(수원회), 서정석(대구회), 황익(부산회), 이정희(광주회) 변호사 등 5명이 맡게 됐으며, 상임이사로는 오욱환(총무이사), 이욱제(인권이사), 민병식(법제이사), 신현호(교육이사) 등 10명의 변호사가 선출됐다.

한편 천 신임 회장을 중심으로 구성된 지도부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앞선 42기 지도부보다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사법개혁과 대법관 교체 등 민감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변협 내부의 적잖은 의견충돌이 발생하는 등 순탄치 않은 전선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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