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그리워지는 정월 대보름

정월 대보름 음식을 일 년 내내 준비하신 어머니

등록 2005.02.22 00:51수정 2005.02.2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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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생각을 더듬으며 어렵게 구한 강정과 부럼
옛 생각을 더듬으며 어렵게 구한 강정과 부럼김훈욱

대보름은 공식적으로 술 먹는 날


제가 여렸을 적 정월 대보름은 설날에 딸린 작은 명절이라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설날이 친척들이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내는 큰 명절이었다면 대보름은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작은 명절이었습니다.

시집살이 하는 누나도 설에는 친정나들이를 하지 못했으나 대보름에는 친정에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보름이 되면 어머니는 밤새 여름부터 산에서 뜯어다 말린 아홉 가지 산나물을 손질하고 오곡밥을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새벽이 되어 음식준비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부엌에서 창호지를 태워 날리면서 가족이 건강하게 해 달라는 기원을 하고 식사를 했습니다.

이 날은 식사를 하면서 나이에 상관없이 공식적으로 술도 한잔씩 먹는 날이었습니다. 정월 보름날에는 귀밝이술을 마십니다.

집에서 술을 담그면 보름날 아침 귀밝이술로 쓰기 위해 어머니는 술독의 위에 맑게 뜨는 청주를 미리 떠서 모아두었다 따라 주셨습니다.
이 귀밝이술을 마시고 얼굴이 발그레한 상태에서 학교에 간적도 있었는데 저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얼굴로 온 걸 보면 대부분의 가정에서 귀밝이술 한잔정도는 마신 것 같습니다.


약과와 강정
약과와 강정김훈욱
어머니는 일 년 내내 대보름 준비

사실 어머니의 정월대보름 준비는 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봄부터 정월 대보름에 쓸 아홉 가지 나물을 준비하기 위해 고사리 같은 산나물을 꺾어다 말리고, 여름이면 가지나 호박을 가늘게 잘라 말린 후 갈무리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잘 익은 밤을 골라 추운 날 얼지 않도록 부엌구석에 땅을 파고 묻어 두는 일도 어머니의 일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준비는 설날에 같이 준비했습니다. 설날이 다가오면 뻥튀기 장수가 이 동네 저 동네로 다니는데 우리 동네에 오면 쌀, 조, 콩, 옥수수 등은 뻥튀기장수에게 튀기고 깨는 집에서 볶았습니다.

옥수수는 튀겨 간식으로 먹기 위한 것이었으나 나머지는 설날용입니다. 설날이 1주일 정도 남으면 조청을 만듭니다. 조청은 강정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지만 여기에 떡을 찍어 먹기도 합니다.

이 조청을 튀긴 쌀과 적당히 버무린 다음 각진 틀에 넣어 방망이로 잘 눌러 얇게 만든 후 찬 곳에 두어 굳게 만드는데 이 때 조청의 농도와 혼합 비율이 아주 중요합니다. 조청이 묽거나 양이 많으면 딱딱하게 굳지 않아 자꾸 녹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저희집에서는 콩,깨,쌀로 강정을 이렇게 얇게 만들었습니다.
저희집에서는 콩,깨,쌀로 강정을 이렇게 얇게 만들었습니다.김훈욱
철모르고 부럼을 훔쳐 먹었던 날

이것이 딱딱하게 굳게 되면 다시 먹기 좋게 잘라 별도의 공기 잘 통하는 부대에 담아 보관 하게 됩니다.

이렇게 만든 강정은 대부분 설날 먹게 되지만 어머니께서는 얼마를 따로 떼어 정월 보름날 쓰기 위해 벽장 깊은 곳에 몰래 감추어 두었습니다.

어떤 해는 이 깊은 뜻을 모르는 어릴 때라 이걸 몰래 훔쳐 먹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때 어머니는 읍내에 나가 다시 뻥튀기를 튀기고 물엿을 사다 그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새로 강정을 만들어 정월 대보름날 저희들에게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철이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보름날의 부럼을 위해 호두, 땅콩 등은 시장에서 사 오셨으나 밤은 가을에 땅에 묻어 두었던 것을 꺼내 깨끗이 씻은 후 부스럼이 나지 않고 이가 튼튼히 자라라는 뜻으로 깨물어 먹었습니다.

이외에도 학교를 가지 않는 형들은 보름날 밥을 먹기 위해 이집 저집 다녔습니다. 이렇게 백 집을 다니면 몸이 건강해진다는 이유였습니다.

저는 달집을 짓기 위해 학교가 파하면 쏜살같이 달려와 낫을 들고 뒷동산에 올라가서 달집놀이를 했는데, 어느 해는 논두렁을 태우다 남의 산소를 태운 일이 있었습니다. 산소가 불에 타면 묘지의 영혼이 도망을 간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짚으로 여물을 썰어 묘지에 곱게 뿌려 주어야 했습니다.

김훈욱
오늘 시장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어렵게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것과 비슷한 형태의 강정과 부름을 몇 가지 사 왔습니다.

올해의 정월 대보름은 평소 그렇게 엄했음에도 불장난하다 남의 산소를 태운 아들을 대신하여 한마디 꾸중도 없이 여물을 뿌리시고, 일 년 내내 가족의 건강을 위해 대보름 음식을 준비하시던 어머니가 무척 그리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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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진작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아름다운 자연과 일반 관광으로 찾기 힘든 관광지, 현지의 풍습과 전통문화 등 여행에 관한 정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생활정보와 현지에서의 사업과 인.허가에 관한 상세 정보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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