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대학의 모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대학 '녹색대학'

삶과 일치된 학문을 목표로 상생의 교육을 실천

등록 2005.02.23 01:17수정 2005.02.2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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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평등, 그리고 상생의 배움터 녹색대학
삶과 일치된 학문을 목표로

우리나라에서 기존 제도권 교육이 가지는 모순점과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생긴 학교가 ‘대안학교’다. 이들은 삶과 분리된 학문 탐구와 비생산적인 교육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교육 체계를 도입해 삶과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학문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 산간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녹색대학’은 이러한 교육방식을 통해 2003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대안학교 중 한 곳이다.

녹색대학은?

녹색대학(이하 녹대)은 2000년부터 기존 대학이 갖는 문제점들에 대해 그 방안을 찾고자 했던 지인들의 관심에서 시작됐다. 당시 올바른 교육과 대안적 삶에 관심 있는 교수들과 사회 각계각층 지사 총 30여명으로 ‘녹창사(녹색대학을 창립하는 사람들)’가 구성된 것이다. 이들은 녹대를 위한 비용충당과 건물설립을 위한 초기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각 지역을 돌며 후원자들을 모았다. 일반 시민단체에서도 후원자를 찾은 결과 초기자본을 마련할 수 있었고 모아진 자본금으로 녹대가 들어설 부지매입과 쓰지 않는 학교건물 리모델링, 그리고 교수채용과 직원 인건비에 사용했다. 현재까지도 녹대의 운영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녹지사(일반 시민 후원자)’들은 전국적으로 약 1200명이나 된다.

녹대는 기존 대학과 마찬가지로 4년간 8학기제로 한 학기 15주 수업을 하고 있다. 1~2학년은 학부과정의 일환으로 교양과목을 이수해야 하고 3~4학년이 되면 ‘녹색문화학, 생명농업학, 녹색살림학, 생태건축학, 풍수풍류학’ 중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공과목을 선택해 전공수업을 듣는다. 기존 대학이 가지는 모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학이지만 기존 대학이 가지는 커리큘럼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정미은(운영위원회 교육학과)대표는 “기존의 분화된 학문체계를 배우는 과정에서 그것을 통합시키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죠”라고 설명했다. 그밖에 2년제 대학원 과정이 있다.

녹대 건물은 쓰지 않던 지역 학교를 리모델링했다. 재학생들의 수업을 위한 ‘열람실과 강의실’, 출판사·개인·단체에서 기증해준 책과 영상물로 이뤄진 ‘도서관’이 1층, 토론을 위한 ‘세미나실’과 기획·재정·홍보를 담당하는 ‘행정실’, 그리고 시청각실은 2층에 자리하고 있다.


기존대학이 가지는 모순점을 극복하기 위해

그럼 도대체 녹대는 어떻게 운영되기에 기존대학과 다르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 우선 녹대의 운영체계에 대해 살펴보자.



1. 기존대학과 같은 입학제도가 없다.

다시 말하면 대안학교에 관심이 있고 함께 생활할 사람이라면 누구나 녹대 학생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학교에 들어오는 기준은 어떻게 되는가? 지원자들은 2박 3일간 녹대 생활을 하게 된다. 그 기간이 끝난 후 학교의 뜻과 맞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학생을 학교 측에서 선발하는 것이다.

2. 제도권 대학에서 시도되지 않는 학문을 목표로 한다.

지난 1월초 기자가 만난 정미은 대표는 녹대의 교육목표에 대해 “물리와 화학, 수학, 철학 그리고 생태학 등 기존 대학의 교과과정과는 비슷하지만 그러한 학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강의를 목표로 해요”라며 “그래서 녹대에는 6명의 전임교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수업이 이러한 교육목표와 부합한다는 판단 하에 뽑은 20여명의 강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죠”라고 설명했다. 또한 녹대에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같은 시험제도가 없다. 대신 ‘패스’, ‘논패스’ 에 의해 학점이 평가된다. 중간고사 기간에 학생들은 그동안 배운 과목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교수들은 거기에 대한 수정점을 적어 다시 학생들에게 돌려준다. 돌려받은 보고서를 수정해 기말고사 기간에 제출하면 교수들은 중간보고서와 비교해 그 성과가 보일시에 패스, 그렇지 못할 때는 논 패스를 주는 것이다.

3. 구성원들은 평행선상에 위치한다.

녹대는 ‘운영위원회’, ‘야단법석’, ‘큰 야단법석’, ‘소위원회’의 4단체에 의해 전반적인 운영이 이루어지는데 각 단체의 조직원에는 학생과 교수, 녹지사, 그리고 지역주민까지 포함돼 있다. 열려있고 평등한 구조의 단체를 통해 등록금 책정과 교수 임금, 그리고 직원들의 급여 책정까지 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녹대의 운영체계에 대해 이무성 운영위원회 위원장은 “운영체계가 투명하고 알기 쉽기 때문에 손쉽게 파악할 수 있죠. 이러한 구조에 문제점도 있지만 저희들은 개인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제도로 보완시키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녹대는 재학생들의 등록금(기존 대학 등록금의 약 1/2)과 녹지사들의 후원금(한달에 최소 1만원)만으로 운영된다.

상생(相生), 그리고 삶과 일치된 학문의 길

그렇다면 녹대의 궁극적인 교육의 근본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른 대안학교가 가지고 있지 않은 녹대만의 문제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

녹대는 문명화 된 현대사회의 문제성을 대학이라는 교육의 문제로 인식했고 그 해결책으로 삶과 공동체가 합일된 학문을 택했다.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자연과 분리되기 전 사회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고 그 종결점이 바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이었다.
녹대의 녹대생들은 실제로 봄에는 논과 밭을 일구고 가을이면 곡식을 거두며 추수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수확물로 먹고 마시며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학문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녹대에 재학 중인 이영준(교양과정 1학년) 학생은 “이론에서 끝나는 학문보다 좀 더 내 삶과 밀접한 학문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녹대에 오게 된 거죠”라고 입학 동기를 말했다.

녹대는 이러한 생활을 위해서 지역연계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말하는 학문과 공동체의 합일이 그것이다. 녹대 주위에는 ‘청미래 마을’이 있다. 청미래 마을은 녹창사들이 녹대를 설립하기 위해 땅을 매입할 당시, 도시로부터 귀농 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터전으로 마련한 부지에 실재로 귀농한 사람들이 와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현재 5가구가 입주해 있고 앞으로 20가구가 입주 예정이다.

청미래 마을 사람들은 앞에서 언급한 녹대 4단체에 그 조직원으로 속해 있으며 그밖에 여러 가지 학교 일을 함께 풀어 나가는 구성원이다. 청미래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이우섭(45)씨는 “오랫동안 도시 생활을 경험했고 각박한 삶에서 더 이상 흥미를 느낄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귀농을 택하게 된거죠”라며 “앞으로도 녹색대학이 변하지 않았으면 해요. 항상 즐겁고 함께 어울리며 살 수 있는 그런 곳이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녹대는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팍팍한 현대 사회 속에서 삶과 공동체가 어우러진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정미은 대표는 “앞으로 이곳을 졸업할 졸업생들과 이곳을 떠날 교수님들이 다른 지역에 그 뿌리를 내리더라도 녹대와 같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 학교의 가장 큰 목표에요”라고 말했다.

녹대는 올해로 개교 3주년을 맞는다. 이제 처음으로 전공과목을 배울 학부생이 나온다는 말이다. 재정적인 어려움과 실질적 난관이 많겠지만 처음 그 교육목표를 잊지 말고 사막에 처음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처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 지표를 만들어 간다면 그 발자국은 다른 이들에 의해 다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아직은 내형, 외형적으로 만들어져가고 있는 미숙한 생명체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뿌리가 깊숙이 박히고 넓게 퍼져 그 열매가 튼실히 맺힐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경원대 신문사 르포 기사(3월 2일 게재 예정)

덧붙이는 글 경원대 신문사 르포 기사(3월 2일 게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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