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화장실 변기 틈에 몇 시간동안 끼어있었던 엄마

등록 2005.04.24 19:44수정 2005.04.2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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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무슨 일이 난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엄마와 벌써 다섯 시간째 통화가 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조카 재형이가 나간 후 2시경 통화를 마지막으로 엄마와의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엄마가 치매에 걸린 이후, 나는 엄마 혼자 있는 시간에는 30분 간격으로 전화를 하여 안전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전화를 수시로 해대는 내게 언니나 동생은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냐며 늘 타박을 하고는 했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은 깊은 잠에 빠져 그러는데 전화를 하여 오히려 잠을 방해한다는 정황 논리를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 판단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엄마에게 사고는 '순간'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늘 마음을 불안하게 했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경우 많은 경우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져 뼈가 부러지는 경우를 많이 보고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토요일 내가 출근을 하고 동생과 조카 재형이도 친구 약속으로 엄마 혼자만 집에 남게 되었다. 내가 일이 있어 출근을 하면서 다른 이들의 일을 부정할 수 없기에 불안한 마음을 애써 참아야 했다.

재형이가 나간 직후 2시 통화를 마지막으로 20~30분 간격으로 전화를 하였지만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주무시겠지' '또 예전처럼 전화기 코드를 뽑아 놓았겠지' '아니면 보따리 싸느라 전화 벨 소리를 듣지 못했겠지'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려고만 했다.

2층 승아 엄마에게 엄마의 안전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주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데 방해하는 것 같아 이 또한 참고 또 참았다.


나는 지난해 연말부터 화훼 일을 시작하여 봄철 이런저런 이벤트 행사로 야근과 철야를 하며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엄마와 함께 할 시간이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손과 옷에 흙을 묻혀 땀까지 흘려가며 일을 하는 중에도 엄마와의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자 30분에서 20분 간격으로, 20분에서 10분 간격으로 전화를 했지만 엄마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5시가 되고 7시가 되었다. 엄마와 통화가 한 지가 다섯 시간이나 지난 것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승아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려 전화를 하니 마음씨 고운 승아엄마는 즉시 우리 집으로 내려와 내게 전화를 했다.

"언니, 할머니가 화장실에 쓰러져 계세요."

"아니, 어디에? 어떻게요?. 다치진 않았나요?"

"이따 다시 전화드릴게요. 승아아빠 왔으니까, 언니 전화 다시 할게요."

승아아빠까지 내려왔다는 승아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에 무슨 일인가 생겼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비는 듯 아득해 졌다. 난 승아엄마의 전화를 기다릴 수 없어 다시 전화를 했다.

"언니, 할머니가 화장실 변기와 화장지 걸이 사이에 끼어 쓰러져 계신데 잘못 일으켜 세우다 다치실까봐 119를 불렀어요. 지금 기다리고 있는데 할머니가 언제부터 이렇게 계셨는지 모르겠어요. 옷에 똥이랑 오줌을 싸기는 하셨지만, 의식은 있으시고 말씀도 하시니까 괜찮기는 한 것 같은데…."

승아엄마는 마치 자신의 부모가 일을 당한 듯 불안한 목소리로 상황을 내게 전해왔다.

아니, 변기 사이에 어떻게 사람이 끼어있었다는 거지? 20cm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인데 - 도대체 엄마는 언제 그 곳에 쓰러져 있었을까? 2시 이후부터 7시 지금까지 그렇게 쓰러져 계셨다는 말일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한꺼번에 와글와글 떠올라 멍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토요일이라 고속도로는 버스전용차로 외에는 꽉 막혀 있었다.

"엄마,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울며불며 버스전용차로로 정신없이 운전을 하며 오직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그 좁은 공간에서 몇 시간동안 끼어 있었다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다는 절망감에 또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궁내동 톨게이트에 다다랐을 때 119가 와서 엄마를 무사히 꺼냈다는 승아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언제부터 그렇게 쓰러져 계셨는지 손에 멍이 드셨는데 그것 외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 병원에 모시고 가야하는지…. 외상이나 큰 이상은 없으니 병원보다는 집에서 안정을 취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승아엄마의 말에 한편 안심은 되었지만 손에 멍이 들 정도로 오랜 시간 변기 사이에 끼어있었을 엄마가 안쓰럽고 불쌍해 또 눈물범벅이 되어버렸다.

집에 도착해보니 엄마는 잠들어 있었다. 손과 팔에 시퍼렇게 피멍든 자욱이 엄마가 좁은 공간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힘들게 있었는지 증명하는 듯 했다.

난 또 꺼억꺼억 울음이 나왔다.

그때까지 엄마 곁에 있던 승아엄마는 "언니, 할머니 괜찮으신 것 같으니까 진정하세요. 아까 말씀도 잘 하셨고 주무시고 나서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세요. 아니, 할머니가 전화 안받으시면 진작에 연락을 하시지, 앞으로 언제라도 연락하세요"라며 집으로 돌아갔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승아엄마가 너무나 고마워 눈물 바람으로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나는 행여 그 충격으로 엄마에게 후유증을 염려하였으나 얼마 후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화장실 별관 틈에 끼었던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엄마, 아까 화장실 틈에 언제부터 넘어져 있었어?"
"응? 내가 언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자신이 겪었던 신변의 위험 상황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가 안타까워 가슴이 저려왔다.

엄마는 왼쪽 다리와 몸에 힘이 없어 늘 몸이 왼쪽으로 기울고는 했는데 혼자서 화장실 볼일을 보시고 옷을 추스르다 힘이 없어 쓰러진 상태였던 것 같았다.

혼자서 일어서려 갖은 안간힘과 애를 썼을 생각을 하니 난 또 목이 메어왔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건강한 사람도 밀폐된 공간에 단 한 시간만 갇혀 있어도 두렵고 공포감이 들었을 터인데….'

엄마가 갇혀 있던 시간만큼 난 울고 또 울었다. 엄마에게 밥을 먹여드리면서도 눈물이 났고 엄마를 목욕시키면서도 눈물이 났다. 이글을 쓰는 지금도 난 목이 메고 눈물이 난다.

한 힘없는 노인이 겪었을 고통과 두려움의 시간….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갇혀 있을 때의 두려움은 어떤 것일까?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며 그 긴 시간을 보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 똥을 싸고 오줌도 싸고…. 자신의 몸을 정신을 스스로 포기해야하는 절망감은 또 어떤 느낌이었을까?

엄마가 한없이 가엾고 끊임없는 분노에 피가 끓어올랐다. 도대체 그녀가 그렇게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을 때 그녀의 자식들은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자신의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갖고 있었을까? 저녁식사를 하고 TV를 보고 있었을까? 친구들을 만나며 웃고 떠들고 있었을까? 아니면 여행을 하고 있었을까?

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고 다른 형제들 또한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을 포기하고 엄마와 온전히 종일 함께 있을 수 없다면 앞으로도 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책이 필요했지만 뾰족한 대안이 나올 수 도 없는 상황이었다.

얼마 전 병원에서 이상 소견을 받아 수술을 받게 될 지도 모를 큰언니는 이러저러한 상황과 맞물려 자신이 아픈 것을 알아주지 않은 동생들에게 시위하듯 낮 시간 엄마돌보기를 중단하고 말았던 것이다. 상황은 심각해졌다.

재수학원을 다니려던 조카 재형이가 학원가기를 중단하고 낮시간 집에서 '할머니를 지키는 파수꾼' 노릇을 하게 되었다. 재형이가 살갑게 할머니와 놀아줄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화장실 가기와 점심식사 챙기기(시켜먹는 일이 더 많지만) 등의 일은 열심히 수행하였다.

무뚝뚝한 재형이라도 집에 있어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만이 뎅그러니 엄마 혼자 남아 있지 않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지만 놀아주는 사람 없는 엄마는 종일 심심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재수를 해야 할 재형이의 상황 역시 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할머니 때문에 마음대로 밖을 나다니지도 못하는 녀석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회사를 다닐 때 역시 혼자 있는 엄마 때문에 늘 노심초사했던 시간들이 또 돌아온 것이다. 엄마에게 하루에도 열 번도 넘게 전화를 해 댔고 이 전화를 먼저 받아야 하는 재형에게는 전화 받는 일 역시 스트레스일 뿐이었다.

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엄마가 그저 안쓰럽고 안타까워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눈물이 나고는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재형이는 재형이 대로 또 엄마는 엄마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에 터진 사고였다.

이틀 후 구원병이 나타났다. 엄마의 친구이신 아저씨가 오신 것이다. 당분간 아저씨의 온전한 보호를 받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든든해 졌다.

과거에도 내가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 아저씨는 엄마의 온전한 보호자 노릇을 충실히 하여 주셨다. 아저씨를 내가 은인으로까지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승아엄마처럼 마음 고운 이웃이 있다는 것과 엄마에게 아저씨와 같은 진정한 친구가 계시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 가까운 이웃이, 진정한 벗이 마음이 부족한 자식보다 낫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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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오마이뉴스의 정신에 공감하여 시민 기자로 가입하였으며 이 사회에서 약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글로 고발함으로써 이 사회가 평등한 사회가 되는 날을 앞당기는 역할을 작게나마 하고 싶었습니다. 여성문제, 노인문제등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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