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머물고 있는 무학산에 오르다

등록 2005.02.28 03:35수정 2005.02.2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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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27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처제 내외와 마산 무학산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행장을 가볍게 꾸리기 위해, 김밥 여섯 줄과 물만 배낭에 넣고 출발을 합니다. 그런데 처제가 올해 정초에 결혼한, 처남 내외를 동참시키자고 합니다. 마침 처남이 사는 아파트가 도중에 있어서 관리실 입구에서 전화를 하니 처남이 부스스하게 내려옵니다.


예고도 없이 방문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처남은 차나 한 잔 하고 가자며 팔을 끕니다. 오래된 아파트지만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어서, 제법 새내기 주부의 야무진 티가 묻어 납니다. 처남댁은 사과와 바나나를 내옵니다. 집들이를 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자, 3월에는 반드시 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우리는 서원곡 입구에 차를 세우고 등산을 시작합니다. 차가 상당히 많이 주차되어 있습니다. 계곡입구에는 얼음이 얼어 있고, 등산로는 얼마 전에 왔던 눈이 녹아서인지 제법 질퍽거립니다. 우리는 약수터 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이제 등산로는 상당히 가파른 길입니다. 처남 내외는 손을 꼭 잡고 천천히 따라 옵니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끊임없이 소곤거립니다. 우리는 처남 내외를 기다리며 너드랑 바위에 엉덩이를 붙입니다.

a 얼어붙은 계곡물

얼어붙은 계곡물 ⓒ 한성수

늦게 도착한 그들에게 마누라는 "언제까지 손을 잡고 다니는지 보자"며 눈을 흘기면서도, 슬며시 내 팔짱을 낍니다. 건너편 산자락에는, 채 녹지 않은 눈이 점점이 묻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마누라가 "쑥범벅이 생각난다"고 하는데, 나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옛날 우리 동네에서는 그걸 ‘쑥털털이’라고 불렀습니다. 조금 오르니 제법 너른 바위가 턱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바로 ‘걱정바위’입니다.

걱정을 풀려는지 등산을 온 아주머니 몇이 구성지게 유행가를 불러 젖힙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박수를 치는데, 걱정바위의 걱정이 며칠은 사라질 것 같습니다. 밑을 내려다보니 아득합니다. 아마 근심 많은 사람들은 뛰어내리고 싶은 위치에 앉아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나 봅니다.

a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다.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다. ⓒ 한성수

다시 길을 재촉해서 올라갑니다. 길가에는 솔방울을 가득 매단 소나무가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의 어렸을 적에, 동네 꼬맹이들과 한쪽 모퉁이가 떨어져 나간 가마니를 들고 솔방울을 주우러 다닌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는 어쩌다가 한 번씩, 불이 붙어서 이글거리며 탁탁 튀는 그 솔방울 위에 간갈치 토막을 구웠는데, 그 냄새만으로 나는 행복했었지요.


그런데 전화가 왔습니다. 마누라는 <오마이뉴스>에서 걸려온 전화라며, 건네줍니다.

“아침에 올린 편지글 중에 문맥이 안 맞는 부분이 있는데요.”


마누라는 일요일인데도 일을 하느냐면서 신기해하고, 다른 일행들도 관심을 보입니다. 나는 적당히 고쳐 주십사는 부탁을 드리고 전화를 끊습니다.

a 솔방울을 가득 단 소나무

솔방울을 가득 단 소나무 ⓒ 한성수

마누라는 '당신이 왜 그렇게 <오마이뉴스>에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기어이 불만어린 한 마디를 툭 내던집니다. 그런 마누라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나는 글을 쓰고 난 후 마누라에게 교정을 부탁하고, 그 내용에 대해 소감을 물어 봅니다. 그러나 대부분 마누라는 불합격을 놓습니다. 우리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이겠지요.

“마누라, 내가 글을 적는다는 것은 현재 한성수가 겪고 느끼는 일기를 적는 셈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어찌 나 혼자만의 것일까요? 그것에는 우리가족이 살아가는 모습과 이 시대 보통사람들의 삶의 한 단면이 담겨 있지요. 또 이런 기록들이 모여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거창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오마이뉴스>의 기사들을 통하여 내 아이들이,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그때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우리의 모습을 느낄 수가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나는 보태거나 빼지 않고, 현재 있는 그대로의 우리생활을 기록하고 싶다오.”

이제 나무계단을 타고 오릅니다. 할아버지 한분이 검은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잔뜩 주워 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요새 사람들이 너무한다며 혀를 끌끌 찹니다. 나는 고개를 숙입니다. ‘서마지기’가 나오고, 정상까지는 340여개의 나무계단이 이어져 있습니다. 옛날에는 학이 나는 형상의 무학산을 ‘두척산(斗尺山)’이라고 했다는데, 아마 이 서마지기 벌판과 관련이 있나 봅니다. 드디어 태극기가 휘날리는 정상에 닿았습니다.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이곳 무학산 정상부근에 박았던 쇠말뚝을 어느 단체가 빼내었다는 뉴스를 오래전에 본 적이 있는데, 그 표시가 된 곳을 찾을 수가 없어 아쉽습니다. 나는 먼 곳에 있는 마산 앞바다를 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예로부터 물이 맑고 좋아서 시인은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푸른 물 눈에 보이네”라고 노래하기도 했고, 물을 주원료로 하는 장류, 주류산업이 발전하기도 했지요.

a 무학산 정상에서 본 마산 앞바다

무학산 정상에서 본 마산 앞바다 ⓒ 한성수

정상을 지나서 조금 내려오니 갈대밭이 있습니다. 우리는 갈대밭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점심을 먹습니다. 바람에 사각 대는 갈대소리에 맞춰 까마귀가 납니다. 옆에 우뚝 솟은 돌탑을 돌고난 후, 우리는 산을 내려옵니다. 이 쪽 길은 가파를뿐더러 얼음이 흙에 살짝 덮여 있어서 몹시 미끄럽습니다. 길가에는 돌무더기가 탑처럼 쌓여 있습니다. 처남은 돌을 하나 올려다 놓고 소원을 비는 모양입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자연에 기대고 싶은 것이 약한 인간의 본성인가 봅니다.

a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돌탑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돌탑 ⓒ 한성수

산죽나무 군락지를 거쳐서, 드디어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 왔습니다. 산불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삼신 할매, 올해는 처남 내외에게 사랑스런 이질(아들이나 딸 상관없이) 하나만 점지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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