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안에 있어야 자식이라"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87) 아들을 떠나보내며

등록 2005.02.28 12:36수정 2005.02.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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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입은 골절상으로 깁스를 풀 때까지 서울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낼 참이다. 오랜만에 다섯 식구(고양이 카사 포함)가 한 지붕 아래 지내고 있다. 혈육이란 떨어져서 그리운 것만큼 다시 만나면 더 반갑다.


아들 졸업식날(2003년 2월)
아들 졸업식날(2003년 2월)박도
다섯 식구가 한 달 남짓 같이 지낼 줄 알았는데 아들이 내일 집을 떠난다고 한다.

얼마 전 아들이, 자기가 다니던 직장이 종로5가에서 구로동으로 옮기기에 교통 문제로 회사 근처에다 원룸을 얻어서 살겠다고 여러 번 간청하기에 승낙해 주고 말았다.

그 녀석은 청소년 시절부터 야행성이라 늘 아침마다 늦잠을 자서 무던히 속을 썩였다.

아침잠이 많아서 직장생활도 못 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이태째 잘 다니고 있다. 나도 제 어미도 그 점에 대견해 하고 있다. 그런데 거의 매일 출근시간에 쩔쩔 매고 있다.

아침은 우유나 미숫가루 한 잔 마시고 허겁지겁 뛰어간다. 아마도 내 집 아이만 그런 게 아닐 것 같다.


집과 직장이 같은 종로구에서도 이런데, 직장을 구로구로 옮긴다는 데도 그대로 산동네서 다니라고 한다면 그 녀석에게는 직장을 그만 두라는 말로 들릴 게다.

10여년 전 파리에 갔을 때다. 그곳 젊은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혼자 산다는 말을 듣고 의아스러워했는데, 그런 풍조가 이미 우리나라에도 널리 퍼진 것 같다. 앞으로 이런 풍조는 당분간 더 번질 것 같다.


사실 내가 안흥으로 내려가면서도, 이번에 아들을 내보내면서도, 가족 해체를 가장 아파했는데 오히려 아내는 마음 정리를 빨리 했다.

아내는 "품 안에 있어야 자식"이라며 "어차피 떠나야 할 아이들을 스물이 넘었는데도 왜 주리 끼려느냐, 하루라도 빨리 독립시키는 게 서로 좋다"고 말한다.

곰곰 생각해 보면 아내 말이 맞다. 부모 자식 간, 부부 간도 언젠가 인연이 다하면 헤어지기 마련이다.

그럴 바에야 자식이 독립할 수 있을 적당한 때에 독립하는 게 자립심도 키워 줄 수 있어 좋다. 그 적당한 때가 지난 날에는 결혼이었는데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기울어지는 듯하다.

그래서 혼자 살 수 있는 능력만 되면 내보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듯하다. 서른 마흔이 넘도록 자식을 주리 끼고 사는 것은 자식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성년만 되면 무조건 독립시킨다고 하지 않은가.

연전에 만난 선배가 손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얘기를 듣고, 그게 부러워서 딸 아들에게 넌지시 내 뜻을 전했다. 그랬더니 딸 아들 모두 "아버지, 당분간 그런 꿈은 꾸지 마세요"라고 한다. 누군가 그랬다. "자식 교육과 화투 패는 마음대로 안 된다"고.

요즘은 도시나 시골 가리지 않고 혼자 살거나 부부만 사는 집이 많다. 3대 4대가 한 집안에서 옹기종기 살던 대가족 제도는 점차 까마득한 옛 일이 되고 있다. 이미 소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급물살을 탔고 독신 세대가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모든 생명체는, 원초적으로 고독하다. 혼자 태어나서 혼자 떠난다. 요즘 아내는 나에게 틈틈이 혼자 사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부부가 한날한시에 떠날 수 없는 일이고, 누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니 미리 대비하라는 말이다.

하기는 요즘 공원이나 거리에 홀로 맥없이 하늘만 바라보는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국민 소득이 높아질수록 선진화가 될수록 혼자 사는 노인이 늘어만 간다.

필라델피아 거리의 노숙자, 그에게도 한때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필라델피아 거리의 노숙자, 그에게도 한때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박도
제 할 일을 다 끝내면 별이 새벽녘에 사라지듯이 알맞은 때에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나는 게 자연의 순리이리라.

사는 날까지는 건강하게 살아야겠지만 오래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닐 게다.

딸 아들이 새 가정을 이루고 제 몫을 다하며 사는 게 구닥다리 아비의 간절하고도 가장 큰 소망이다.

집을 떠나는 아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덧붙이는 글 | 필자 사정으로 당분간 서울에서 띄웁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 사정으로 당분간 서울에서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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