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집 옥상에서 바라본 성남시 태평동 일대의 전경최관묵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이웃사촌의 정
아하, 그렇다! 그리고 보면 늦은 밤 이웃끼리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오늘 밤처럼 잠을 자다가 제사떡을 얻어먹었던 경험이 많았다. 특히 군것질거리가 귀했던 터라 늦은 밤, 잠을 자다 일어나 먹던 제사떡 맛은 요즘의 햄버거나 피자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당시 내가 맛있게 떡을 먹고 있노라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놈아! 어른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고 하지 않더냐?"라며 웃음을 짓곤 하셨다.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의미로 '부모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는 옛 속담은 아마도 이웃과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던 모습에서 유래된 것은 아닐까?
70대를 바라보고 계신 우리 주인집 아저씨, 아주머니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까지 서울의 도시개발 붐에 밀린 이주민들이 옮겨와 정착하던 시기에 이곳 성남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30여년을 사셨다고 한다. 당시에는 우리 부모님 세대 대부분이 생활고가 심하셨던 것처럼 우리 주인집 아저씨, 아주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토록 어려운 삶 속에서도 아저씨, 아주머니는 이웃과 정을 나누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씨만은 아직까지도 그대로 간직해 오신 듯하다.
아저씨, 아주머니의 이웃에 대한 따듯한 배려의 마음은 오늘 밤처럼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가 옥상에 빨래를 널어놓고 출근한 후 간혹 한낮에 갑작스런 비가 온다거나 퇴근시간이 좀 늦을 것 같으면 아주머니는 어느새 빨래를 걷어 부모님의 손길과도 같은 정성으로 곱게 개어놓았다가 퇴근하는 우리 부부에게 건넨다.
또한 유치원에 다니는 5살, 7살 난 우리 아이들은 오후 5시 전후가 되면 귀가를 하기 때문에 우리 부부가 퇴근하기 전까지는 누군가가 돌봐줘야 한다.
따라서 집 인근에 유료로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에 부탁하려고 하면 굳이 당신들께서 돌봐주시겠다고 한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조금이 남아 금전적인 성의표시를 할라치면 "젊은 사람들이 빨리 돈을 모아서 집이라도 장만할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돈을 써서는 안 된다"면서 극구 사양하신다. 그리고는 맞벌이 하는 우리 부부가 고생한다며 아이들 저녁식사를 챙겨주시는 것은 물론 여름엔 목욕까지 시켜서 당신들의 손부채 바람으로 아이들을 잠재워 놓곤 하신다. '이웃사촌'이란 말로는 부족할 만큼 우리 부부에게는 부모님과도 같으신 분들이다.
"음식을 나눠먹은 그릇을 돌려보낼 때는 빈 그릇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가르쳐 주셨던 부모님의 말씀이 생각나 냉장고 안에 귤과 사과를 수북이 담아 아내에게 그릇을 돌려보내고 나니 새삼 '요즘 같은 세상에 아직도 이런 분들이 계시는구나'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필자가 살고 있는 이곳 성남시 태평동 일대는 요즘 아파트 재개발이 붐을 이루면서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다. 시대가 변해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편리함과 이성적 판단이 우선시 되는 사회의 변화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어려웠던 생활환경 속에서도 자그마한 것에서조차 이웃과 정을 나누던 따뜻한 배려의 마음만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