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 도살장에 끌려간 우리소가 그립다

등록 2005.03.02 17:24수정 2005.03.0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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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소의 요령 소리


맑은 여름밤 소는 대부분 마구간에서 나와 마당에서 밤을 보낸다. 소마다 꼭 요령을 단다. 요령은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 가장 중요한 효과는 소를 잃어버렸을 때 찾기 위한 것이다. 소는 아무리 쳐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지는 지 일만 할 뿐이다. 그래서 요령을 달아놓으면 가까이 갔을 때 그 소리가 들리고 그래서 찾기가 훨씬 쉽다. 소를 잃어버렸을 때 찾다가 아련히 들리는 요령소리는 매우 반갑다. 소를 찾아 돌아다니다 가끔씩 조용히 귀를 쫑긋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여름밤 마당에 매어 놓으면 소는 밤새 요령을 흔들며 밤을 지낸다. 마당엔 아버지가 논일에서 돌아오시다 베어 오신 소꼴이 한 짐 풀어져 있다. 산에서 그렇게 하루 종일 풀을 뜯은데도 불구하고 또 풀을 먹어댄다. 요령을 쩔렁거리면서. 이때 가끔은 삽을 들고 소 사타구니를 쓸어준다.

여름에 소에게 가장 귀찮은 존재는 까부던지다. 제대로 된 이름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 이놈은 풀에 붙어 있다가 지나가거나 풀뜯는 소에 달라붙는다. 그때부터 소 피를 빨아 먹고 살아간다. 얼마나 소의 피를 빨아대는지 나중에는 똥똥해진다. 좁쌀만하고 홀쪽하던 놈이 직경 5mm 정도까지 똥똥하게 성장한다. 배설은 전혀 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래서 오랫동안 똥 안누고 참는 애를 “니 까부던지 아이가?”라고 놀린다.

이 까분던지를 삽으로 털어주면 소는 매우 좋아한다. 삽으로 쓸면 까부던지 큰 놈은 대부분 떨어진다. 소는 삽을 들고 가까이 가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지 가만히 서 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이 연방 들리는 듯 하다.

이 까부던지 털기 시작하면 또 좋아하는 놈들이 닭이다. 땅에 떨어진 까부던지는 그대로 좋은 닭모이가 된다. 닭들도 모여든다. 한바탕 까부던지 파티가 열리는 셈이다. 이때는 소 닭보듯 한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겨울에 소가 누워 되새김질 할 때 주위에 있는 닭은 그야말로 관심 밖이다. 등에 올라타든 발가락 사이를 할퀴든 도대체 관심이 없다. 겨울 마당에서 소 닭보는 장면이 연출된다.


여름밤이 시작되면 소가 누워있는 바로 옆에 모깃불을 피운다. 부엌 부근에는 여름오기 직전에 이미 아버지가 야외 솥단지를 걸어두었다. 백철솥에 불을 때고 누나가 수제비를 빚어 넣고 있다.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감자도 쓸어 넣는다.

마당 한가운데 평상이 펼쳐져 있다. 상은 두 가지. 아버지와 막내가 함께하는 겸상 하나, 나머지 식구가 함께 먹는 둘레상 하나. 나는 언제나 둘레상 차지였다. 내 동생이 하나 있었으므로. 온 식구가 평상에 올라 앉아 밥을 먹는다. 밥보다도 수제비 혹은 국수가 더 맛있었다. 배가 터지게 먹는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은 듯 했다.


이때 먹은 수제비와 국수는 이제 참으로 먹기 힘들다. 가난한 집에는 미국 원조 밀가루가 배급되었다. 악수하는 그림이 그려진 종이 푸대에 담겨져 있었다. 우리는 아주 가난하지는 않아 배급대상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수제비는 우리 논에서 생산한 밀가루로 만든 것이었다. 색깔이 거무튀튀했다. 어릴 때 다른 집에서 먹는 하얀 밀가루로 만든 하얀 수제비가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지금은 어릴 때 누나가 끓인 평상에서 먹었던 그 수제비가 억수로 먹고 싶다.

여름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진다. 내리 쏟아 붓는다고 해야 맞다. 구름처럼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 질러 있다.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오리온은 아는데 나머지는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아지지 않았다. 소 요령 소리는 간간히 들린다. 소가 파리 쫓으려 머리를 휘두를 때마다 요령은 더 크게 들린다.

한가롭기 짝이 없는 소의 되새김질

소가 앉을 때는 앞뒤다리를 구부린다. 그러나 한참 있다 보면 다리가 아픈지 다리를 쭉 앞뒤로 내뻗어있다. 소는 이때가 한가한 때인가 보다. 되새김질이 시작된다. 낮에 일단 먹었던 먹이는 1차 위에 들어가 있다. 아랫배에 힘을 한번 주어 ‘끄윽’하면, 울컥 일단 먹었던 먹이가 입으로 올라온다.

a 소가 겨울에 마당에 나와 앉아 되새김질을 하는 모습. 뒷다리를 쭉뻗고 최고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염없이 눈도 지긋이 감고 되새김질하는 모습은 한가로움 그 자체다.

소가 겨울에 마당에 나와 앉아 되새김질을 하는 모습. 뒷다리를 쭉뻗고 최고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염없이 눈도 지긋이 감고 되새김질하는 모습은 한가로움 그 자체다. ⓒ 신병철

소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차례로 자근자근 씹어 조금씩 조금씩 2차 위로 보낸다. 이때 먹이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꼴딱 꼴딱 넘어간다.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되새김질을 한다. 한번 올린 1차 먹이가 다 없어지면 다시 한번 울컥한다. 고개를 흔들 때마다 요령은 땡그렁 땡그렁 소리를 낸다. 이 소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초저녁잠이 많으신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주무시고, 나는 평상에 앉아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의 별이 좋아서 쳐다본 것이 아니고 할 일이 없어서 그냥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별똥별 하나가 휙 선을 그으며 날아가다 사라진다. 간간이 일어나는 일이다.

도시에서 자란 친구들이 시골에서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고 감탄할 때마다 나는 코웃음 친다. 원래 별은 그렇게 많은 것인데 괜히 그런다고 핀잔을 준다. 그것은 나의 어릴 때 본 별들 때문이다.

소는 주인이 있어도 소똥은 주인이 없다.

소는 똥을 가릴 줄 모른다. 아무데나 누고 싶을 때 눠버린다. 참는 법도 없다. 참으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소똥은 세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설사에 가까운 묽은 똥, 조금 쫀득쫀득한 똥, 조금 단단한 똥. 조금 단단한 똥이 가장 건강한 똥이다. 겨울에 마구간에서 소는 똥을 누고 그 똥을 깔아뭉개고 잔다. 소똥을 자주 치워주지 않으면 소는 온몸에 똥칠하고 다닌다. 소가 온몸에 똥칠하고 다니면 그 주인은 게으른 사람이 된다.

소똥은 매우 중요한 거름이다. 소가 사는 마당 한구석에는 언제나 소똥말리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처리되지 않은 소똥은 거름이 될 수가 없다. 소가 많이 다니는 곳에 소똥을 수집하러 가기도 한다. 일단 한 곳에 소똥을 모아 말린다. 말린 똥은 지게에 지고 내려오기에 가볍기 때문이고 보관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누군가 모아 놓은 똥은 절대 가져가는 법이 없다. 한 번도 남의 소똥 집어가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것이 들키는 날이면 그 동네에서 존재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동네 길거리에 소똥이 보이면 급히 집으로 가서 소쿠리와 삽을 들고 나와 똥을 가져간다. 남이 가져가기 전에 빨리 가져가야 주인이 된다.

괜스레 타 보았나요?

가을에 벼타작이 끝나면 보리를 논에 간다. 고랑을 만들고 그 고랑에 아버지가 거름을 소쿠리에 담아 뿌리고 뒤이어 어머니가 보리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흙을 덮으면 보리파종은 끝난다. 나중에야 이런 방법이 견종법인 줄 알았다. 밭갈이의 견종법은 논갈이의 이앙법과 마찬가지로 노동력을 엄청 줄이는 파종법이라고 했다.

흙을 덮을 때 소를 이용한다. 뗏목 같은 농기구, 그것을 괜스레라고 했다. 괜스레에 적당한 무게의 돌을 올려 그것을 소가 끌고 온 논을 헤매고 다니면 흙이 자연스레 덮인다. 돌 대신에 애들을 태우고 다니기도 했다. 일년에 몇 번 안 되는 매우 중요한 힘 안들이고 타고 노는 기회였다. 보리 파종 때만 되면 애들은 괜스레 타기를 기다린다.

괜스레 탈 때 항상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니다. 소가 끌고 가다 똥을 누기 시작하면 이것은 고통이 된다. 그래도 애들은 참는다. 특히 소가 설사똥을 싸댈 때면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냄새와 튀는 똥과 어울려 하나의 장관을 연출한다. 동네 입구에 보리파종 논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 아버지가 나와 동생을 차례를 바꿔가면서 괜스레를 태워주셨다.

동생이 타고 내 차례가 되었다. 그 때 부근에 사는 나보다 한 살 아래 사촌동생이 나타났고, 아버지는 나 대신 사촌동생을 태워주고 말았다. 기대가 무너진 나는 엄청 울었나보다. 사촌동생 태워줘야 하는 것이 순리임을 아버지께서 타일렀고, 나도 충분히 이해했지만, 울음은 어느새 흐느낌으로 변했다. 아무리 그치려고 해도 그쳐지지가 않았다. “아무리 그치려고 해도 울음이 자꾸만 나온다” 그때 내가 한 말이란다. 크면서 몇 번이나 들었던 내가 한 유명한 말이다. 이것은 우리 가족이면 모두가 인정하는 나의 유명한 말이다.

우리소 덕분에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우리소는 우리집의 보배였다. 성깔은 좀 있었지만 우리소는 힘이 좋았고 새끼를 잘 낳았다. 두형과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 다닐 때 우리 소는 봄에 꼭 송아지를 한 마리씩 낳았다. 그것도 꼭 황태기로. 암송아지와 수송아지 중에서 수송아지를 황태기라고 하는데, 황태기가 암송아지보다 값이 더 나갔다. 황태기는 어른이 될 때까지 키우지 않는다. 새끼를 낳지 않기 때문이고 암소로도 농사일을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농부의 자식들이 당시 사립대학에 가기란 힘들었다. 두 형과 나는 모두 국립대학에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황태기 한 마리가 50만원 가까이 했다. 2학기 등록금은 이 황태기를 팔면 셋의 등록금이 가능했다. 1학기 등록금은 수매한 벼값이 있었다. 3년을 우리소는 봄마다 황태기를 낳았다. 우리는 3년 동안 셋이서 대학을 다녔다.

송아지는 정말로 골치 아픈 존재다. 코뚜레가 아직 없기 때문에 우리 뜻대로 몰 수가 없다. 송아지는 정말 엉뚱한 짓을 너무나 많이 한다. 어미소와 꼭 붙어서 갈 때는 잘 따라다닌다. 송아지는 아주 어릴 때만 어미에게 꼭 붙어서 다닌다. 조금 자라면 지 맘대로다. 어미소를 끌고 가면 뒤따라 오다 장난치거나 지 할 일 하면서 따라오지 않는다. 그러다 아예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린다.

어미소는 금방 송아지를 찾지 않는다. 한참을 가다 새끼가 없음을 알고는 울어댄다. “움머어, 움머어” 한참을 울어대면 송아지가 저 멀리서 “앰매애, 앰매애” 운다. 겨우 소재는 알게 된 셈이다. 그렇다고 금방 쫓아오는 게 아니다. 어미소를 놔두고 송아지를 찾아 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송아지는 정말 말 안 듣는다. 사람들이 송아지를 부르는 소리가 “워월미”다. 송아지는 아마 자기 부르는 소리인 줄 절대 모를 거다. 그래도 우리는 송아지를 찾을 때 끊임없이 “워얼미” “워얼미” 라고 쳐불러 댄다. 엉덩이에 뿔이 안 나도 송아지는 모두 못됐다.

소가 놀랄 때가 있을까? 스스로 놀라는 경우를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소도 놀란다. 매우 미련하게 놀란다. 내가 놀라면 소도 따라 놀란다. 소죽을 끓이면 소가 멀뚱히 쳐다본다. 다 큰 송아지와 함께 쳐다본다. 그럴 때 깜짝 놀라는 시늉을 거짓으로 하면 소는 정말 놀란다. 10초 쯤 있다가 또 거짓 놀라면 소는 또 진짜 놀란다. 몇 번을 반복해도 소는 언제나 놀란다. 그래서 소를 미련하다고 하나 보다. 두 마리가 한꺼번에 깜짝 깜짝 놀란다. 그것도 서너번 하고 나면 재미없어 그만 두고 만다. 소는 나에게 일거리이기도 했지만, 장난감이기도 했다.

a 이중섭의 소 그림, 황소가  웃는 듯한 모습이다. 소는 웃지 않는다.  그냥 웃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소가 웃는다고 말하면 그것이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기 때문이다. [이중섭] 특별전의 도록, 1999년 갤러리 현대 발행

이중섭의 소 그림, 황소가 웃는 듯한 모습이다. 소는 웃지 않는다. 그냥 웃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소가 웃는다고 말하면 그것이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기 때문이다. [이중섭] 특별전의 도록, 1999년 갤러리 현대 발행 ⓒ 이중섭

소가 웃을까? 모른다. 소에게 즐거움의 감정이 있을까? 즐겁다고 그것을 웃음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모른다. 소가 고개를 들고 입을 다물고 입술을 조금 뒤집어 이빨을 드러내어 웃을 때가 있다. 발정의 초기 단계에 옆에 있는 소의 엉덩이 냄새를 맡고는 3초 정도 입을 뒤집고 웃는다.

괜히 우리도 기분이 좋아진다. 목을 빼고 씨익 웃는 모습이 재밌다. 웃는 게 아닐 것이다. “나 연애 감정이 솟구치는데 이상해도 좀 봐 줘” 라는 표현 같다. 웃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계면쩍어 하는 모습 같다. 소도 정말로 웃는다고? 그건 소가 웃을 일이다.

너무 늙어서 도살장에 끌려간 우리소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쯤 고마운 우리소는 너무 늙어 버렸다. 송아지도 해마다 낳지 못했다. 그때쯤 소는 농사일에서도 소용이 많이 줄었다. 소보다 훨씬 힘도 좋고 말도 잘 듣는 경운기가 등장했다.

소는 잔일이 엄청 많다. 겨우내 신나게 놀다가 쇠죽 끓어주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기는 정말 싫다. 그러나 누군가 하나는 와야 한다. 쇠죽은 여름에 말린 풀과 콩깍지와 겨와 여물을 섞어서 가마솥에 끓인다. 그러려면 여름 내내 좋은 풀을 베어 와서 골라 말려야 한다. 볏집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작두에 쓸어야 한다. 작두는 안전장치가 없어 매우 위험하다.

나의 작은 형은 어릴 때 작두에 짚단을 매기다가 손가락을 잘리고 말았다. 작두를 누르는 것은 힘만 있으면 되지만 짚을 매기는 것은 요령이 있어야 한다. 여물을 쓸 때마다 부모님께 주의를 항상 들었다. 작은 형은 어른이 쉽게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어른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았나 보다.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작두날이 내려치는 곳에 올려놓고 신호를 보내고 말았다. 검지손가락 한마디 없는 내 작은 형의 뭉뚱한 손가락도 우리소와 관련깊다.

소를 키우는 일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항상 소가 사는 환경을 정리해줘야 한다. 똥도 치워줘야 하고 마구간을 짬짬이 청소해 주고 새 짚으로 깔아주어야 한다. 경운기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경제적 효용성에서 소는 밀려나고 있었다.

동네 소가 거의 없어질 때까지 우리소는 우리와 함께 살았다. 일하지 않아 편했는지는 몰라도 곧 사라져야 할 때가 가까워 옴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 소장사가 와서 값을 흥정하더니 소를 끌고 가 버렸다. 늙어 고기값도 다른 소만 못하다고 했다. 고기값으로 무게를 달아서 팔려갔다. 도살장으로 간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하셨는지 아무도 모른다.

잘 생긴 우리소가 한번 보고 싶다. 일하기 싫다고 씩씩거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망게순을 받아 먹기 위해 살그머니 가까이 오는 우리소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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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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