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효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편찬사업의 하나로 펴낸 <일제강점기 인명록 1-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를 쓴 김경현(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씨가 한 말이다. 3.1절을 맞아 첫 인명록이 나왔는데, 민족문제연구소측은 진주를 시작으로 인명록 출판은 전국으로 번져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 진주지역과 관련된 3400여명의 행적이 실려 있다. 이 책은 곧 발간을 목표로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인명록은 당시 신문과 문헌자료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과 그들의 행적을 사전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진주에서 한 때 관공리(공무원)를 지냈거나 면 협의회·읍회·부회·도회·상공회의소·경방단 등 친일관변단체에서 사회활동을 했던 인물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 수록되었다고 해서 다 친일파로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 당시 진주에서 일제 식민통치와 관련된 인물이라면 모두 실린 셈이다.
김경현씨는 "지역에서 떠도는 소문을 철저히 문헌을 통해 확인했다"면서 "자료를 수집하는데 한계를 느낄 때마다 조국광복에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심정으로 스스로를 다그쳤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섞인 수많은 인명들 가운에 옥석을 가리고 친일행적을 드러내는 작업은 앞으로도 지속될 시효가 없는 작업이 될 것"이라면서 "이 책은 그동안 은폐돼 왔던 지역의 친일연구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부족한 자료와 지역사회 기득권 세력의 적대적이고 냉소적인 시선 등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고 방대한 역저를 완성한 저자의 오랜 작업이 얼마나 고단하였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 행적에 대해서도 함께 기록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 지역에서 관공리 등을 지낸 이들이 해방 이후 어떻게 지역과 우리나라에서 실세로 자리잡았는지도 함께 살폈다. 몇몇 주요 인물을 더듬어보면 다음과 같다.
일제 때 진주역장을 지난 '김석관'은 해방 후 교통부장관, 일제 때 진주부청 내무과 소속이었던 '이계순'은 해방 후 농림부장관을 각각 지냈다. 해방 후 내무부장관까지 지낸 '김현옥'은 일제 때 진주에서 청년훈련소 군사교관 보조수를 지낸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일제 때 진주법원에서 판임관 견습으로 관료를 시작한 '정창운'은 해방 후 검찰총장을 역임했다. 초대 대구시장을 역임한 '허억'은 일제 때 경상합동은행 진주지점장을 지내면서 진주경찰서 연무장에서 결성된 조선특별지원병 진주후원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허억은 대구시장을 지낼 때 박정희와 육영수의 결혼식 때 주례를 선 인물이다.
대기업 LG그룹 창업주 '구인회'는 일제 때 진주상공회의소 의원을 지냈으며, 식산은행 진주지점에서 찾은 돈으로 토지매입에 투자해 대지주가 되었고, 해방 후 이 돈으로 기업경영을 하는데 자본의 밑천을 삼았다.
해방 후 초대 진주시장을 역임한 '정종철'은 일제 때 진주부청에서 국민총력계 주임을 지냈고, 이후 2대 부산시장 9대 경남도지사 그리고 서울시장 직무대리로 승승장구했다. 그가 일제 때 근무했던 국민총력계는 징용 등 황국신민화정책을 담당한 부서이다.
초대 진양군수를 지낸 '김찬식'은 일제 때 진양군청 내무과장을 지낸 바 있다. 해방 후 진주경찰서 경무주임으로 초대 진주경찰서장 역할을 담당했던 '천기준'은 일제 때 순사부장을 지냈고, 초대 진주소방서장 '김봉규'는 일제 때 진주경방단 부단장을 역임했다.
교육계에서는 경상대의 전신인 진주농과대 초대학장 '황운성'이 일제 때 진양군수를 지냈다. 또 정치계는 진주부청 내무과 소속의 갱생원에서 지도원을 지냈던 '이강우'가 해방 후 진주에서 제헌국회의원이 되었고, 일제 때 진양군 농회 서기를 지냈던 '황윤호'가 진양군에서 역시 제헌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일제때 진주지역 3400명 행적 기록한 책 나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