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열정을 옮겼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등록 2005.03.01 14:21수정 2005.03.0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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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니프와 스커리는 쥐다. 햄과 허는 사람이다. 이들 넷에겐 공통점이 있다. 미로처럼 생긴 치즈 창고에 살고 있단 사실. 또, 이들 넷에게는 차이점이 있다. 종이 다르다는 것.

스니프와 스커리는 항상 새로운 치즈를 찾기 위해 돌아다닌다. 창고에 치즈가 꽉 차 있어도 더 맛있는 치즈를 찾기 위해 새로운 창고를 찾아 돌아다닌다. 반면, 햄과 허는 한 번 눌러 앉으면 일어설 줄 모른다. 치즈가 바닥나도 도무지 발을 떼지 않는다. 그렇게 몇 달, 몇 년이 지나고, 햄과 허의 창고에 있던 그 많던 치즈가 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 많던 치즈는 다 어디로 갔을까?


햄과 허는 불평, 불만이 가득하다. 처음 그들은 누군가 창고에 몰래 들어와서 치즈를 몽땅 훔쳐갔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없어진 치즈가 돌아오길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그러나 치즈는 돌아올 줄 모른다.

그러던 어느날, 허는 새로운 치즈를 찾아야겠다는 맘을 먹게 된다. 햄에게 같이 치즈를 찾아나서자고 했지만, 햄은 외려 콧방귀를 뀌어댈 뿐, 창고에서 꿈적도 않는다. 처음 창고를 떠나는 허는 무섭기 그지 없었다. 창고 밖으로 나가본 게 도대체 몇 년 전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나침반도, 지도도 아무 것도 없다. 그저 그가 아는 건 길은 길로 이어지고, 그 길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끝없는 미로 한 복판에 자신이 서 있단 사실뿐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며칠을 굶었는지, 배꼽이 등에 가서 붙은 기분이었고, 마실 물조차 없어 목구멍이 타들어갔다. 숨은 입까지 차올라 금방이라도 쓰러질 태세였다. 몇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나서야 허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몇 십년은 족히 먹을 만큼 많던 치즈가 바닥나도록 자신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는 어리석은 자신이 떠오른 것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도 이 때였다. 그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뭉클한 뜨거움이 가슴팍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가슴을 저미어오는 이것은 곧 삶의 열정이고, 세상에 대한 도전의 의지였다. 그는 다시 힘을 내 걷기 시작했다. 맛있는 치즈가 넘치는 창고를 꼭 찾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며칠, 아니 몇 달이 지나 그는 새로운 치즈 창고를 찾았다. 그 창고엔 전보다 더 좋은 치즈가 가득 쌓여 있었다.


허는 햄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햄을 데리러 갈 채비를 하던 중 문득 또 다른 생각이 허의 머리 속을 스쳐 지났다.

'햄이 이 창고의 치즈를 보면 분명 행복해 할 거야. 그런데, 이 창고가 또 텅 비게 되면 어떡하지? 그 때도 햄은 창고에 주저앉아 새로운 치즈가 나타나길 기다리겠지? 내가 햄에게 그냥 치즈를 주게 되면 말야.'


허는 그리운 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무척 보고 싶었다. 그러나 허는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치즈를 찾는 건 어디까지나 그의 몫이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 읽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란 책의 내용이다. 여기서 치즈는 돈이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치즈는 우리가 삶에서 진정 바라는 것 중 하나란 사실이다.

지금껏 살면서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우린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 혹시 햄처럼 그저 주저앉아 푸념만 늘어놓지 않았을까?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자기는 계속 같은 자리에 서 있던 건 아닐까.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결국엔 뒤로 물러 설 뿐인데도 말이다.

예전에 김수환 추기경이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것이다."

그렇다. 우린 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변화를 위한 노력이 중요하단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가슴으로 느끼진 못한다.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섰던 허가 느꼈을 그 뜨거운 뭉클함을 느끼긴 쉽지 않다.

인생을 살면서 한두 번, 아니 더 많이 그런 뭉클함을 느껴본 적 있을 터다. 그러나 그 느낌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기억 저편의 한 구석에 수북이 먼지 쌓인 채 있진 않은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변화는 양의 문제가 아니다. 질의 문제다. 철저히 자신의 '종'이 바뀌지 않는 한 진일보한 내일은 있을 수 없다. 스니프와 스커리, 햄과 허. 넷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아니, 적어도 그 누구 한 명처럼은 되지 말라고 한다면, 당신은 누굴 선택하겠는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대답해 보자.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진명출판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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