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선물 해 보신 적 있나요?

후배에게 선물할 책 한 권을 마련하고

등록 2005.03.01 23:14수정 2005.03.02 12:3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책을 선물한 선배가 남겨놓은 글
책을 선물한 선배가 남겨놓은 글박성필
지난 주말 필자는 책 한 권을 찾기 위해 방안 구석구석을 꽤 오랜 시간 뒤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눈앞의 물건도 찾으려면 잘 보이지 않는다더니 찾던 책은 결국 필자의 책꽂이에서 발견되었다. 그것도 책을 찾는데 쏟은 시간이 허망할 만큼 나름의 분류 원칙에 의해 정리되어 있는 책꽂이에 반듯하게 꽂혀 있는 것이었다.


필자가 찾은 책은 시집 한 권이다. 이미 오래 전에 읽은 바 있는 그 시집을 다시 찾은 것은 새롭게 검토할 필요도 있었지만, 여느 다른 책보다도 필자가 아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 시집에는 한 선배의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3년 전 따스한 봄날 오후였다. '한 번 보자'라는 선배의 요청으로 교정에서 선배를 만났다. 선배와 간이의자에 걸터앉아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한창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그 선배는 가방 속에서 시집 한 권을 꺼내 필자에게 내밀었다.

젊은 시인지망생들에게는 우상과 같았던 고 기형도 시인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었다. 책의 상태로 보아 서점에서 방금 사온 책은 아닌 것 같아 '기왕이면 새 책을 사주지'라는 조금은 섭섭한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 그러나 그 시집에는 필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선배의 따뜻한 글이 적혀 있었다.

더럽고 기쁜
이 세상에서의
만남과 사랑을
위하여


선배가 그 자리를 뜨고도 한참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 시집의 책장을 펼쳤다 닫았다 하면서 몇 차례 그 선배가 써 놓은 짧은 글을 읽고 또 읽었다.


필자의 방에는 꽤 많은 책이 꽂혀 있다. 그 책들의 대부분은 필자가 구입한 책들이고 일부는 그 시집과 같이 선물 받은 책들이다. 또 몇 권의 책들은 평소 친분이 있는 저자들이 직접 서명을 남겨 선물한 것들이다.

물론 가치를 따지자면 책의 저자들이 직접 서명을 해 준 책들이 더 가치 있는 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책들을 보면 대부분 '저자 증정'혹은 '박성필 군에게'라는 메시지와 저자의 서명뿐이다. 모두가 그 마음에 감사드릴 만한 좋은 선물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은 쉽게 퇴색되고 만다.


몇 줄의 글이 필자를 감동시킨 탓만은 아닐 것인데 아무튼 시인 기형도의 시들은 올해 작성하게 될 필자의 졸업논문 주제가 되었다. 시인 기형도를 둘러싼 신비감 때문인지 아직도 수많은 논문들이 쏟아지고 있어 논문을 쓰는 입장에서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이 논문을 쓰겠노라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은 3년 전 필자에게 그 시집을 선물했던 선배에게 진 마음의 빚 때문이다. 사실 그 시집을 선물 받은 후에 '나도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책 선물을 자주 하겠다'고 몇 차례 스스로 다짐을 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것이 실행된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스스로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필자의 '책 욕심'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다. 또 필자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만큼 책을 좋아하는 후배를 만나지 못했다. 혹은 책을 좋아하는 후배를 필자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후배들의 입학식을 하루 앞두고 필자는 서점에 다녀왔다. 필요한 몇 권의 책을 사면서 시집 한 권을 더 구입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책을 사랑할 줄 아는 후배'를 위한 시집이다.

필자는 여러 차례 책을 선물 받으며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하였다. 꽃은 시들어 버려도 책은 우리 곁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적어도 유효기간만을 따지자면 책은 소유한 자가 버리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는 우리 삶에서 쉽게 멀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 책 한 권은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이 그들의 삶을 책 한 권이 바꾸었다고 말한 바와 같이 책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아직 그러한 책의 힘을 느끼지 못했지만 선물 받은 몇몇 책들은 적어도 필자의 책 고르는 습관만큼은 크게 바꾸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선물이 쉽지 않다. 책이 구하기 어려워서도 값이 비싸서도 아니다. 책을 건네받을 이에게 책이 얼마나 효험이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아직까지 필자는 좋은 작가와 나쁜 작가, 혹은 그러한 책들을 선별할 수 있는 판단력이 없다.

그래서 어쩌면 필자가 '책을 사랑할 줄 아는 후배'를 위해 준비한 책은 필자의 취향에나 맞는 책을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런 후배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먼저 행복하기만 하다. '더럽고(?) 기쁜 이 세상에서의 만남과 사랑'에 대한 기대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