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을 이기지 못한 것들을 만나다

함양 안의마을과 농월정

등록 2005.03.03 16:30수정 2005.03.0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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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화림계곡의 절벽을 따라 흐르는 물

화림계곡의 절벽을 따라 흐르는 물 ⓒ 김동희

정확히 8년 전이었다. 유홍준의 <우리문화유산답사 2권>을 가지고 지리산 자락 답사를 했다. 진주를 출발해 산청으로 그리고 함양으로의 답사 길은 안의마을과 농월정으로 마무리 지었다.

대학시절 돈 없던 우리는 함양에서 안의마을로 시외버스를 타고 들어와서 한 시간마다 있을법한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농월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8년의 시간이 나에게 선사한 것은 편안하게 차에 앉아서 이 곳을 쉽게 다시 찾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거창에서 안의마을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길에 대한 기억이 좋은 나는 안의마을을 지나 흐르는 내천과 광풍루를 보자 터미널이 있는 곳을 바로 알아차렸다.

a 잔잔히 흐르는 옥빛 물색이 곱다.

잔잔히 흐르는 옥빛 물색이 곱다. ⓒ 김동희

터미널… 함양에서 탄 버스에서 내리던 곳, 시내버스를 기다리다 탄 곳. 그곳은 8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너무 변한 곳도 없고 그나마 대합실의 의자는 불에 탔는지 시커멓게 그을려있고 유리문은 없어서 바람막을 곳도 없었다. 그 모습이 왠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먼저 허삼둘네 고택으로 하기로 했다. 허삼둘네 고택은 양반집이 아니라 그냥 돈 많은 상민의 집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 구조 또한 여느 양반집과는 다르다. 그 길이 가물가물해 빵 가게에 문을 빼꼼이 열고 길을 물어보았다.

"저기요. 하나 물어봐도 되나요?"

주인아주머니는 매일 겪는 일인 듯 대꾸를 한다.


"뭐요? 여기서 가장 맛있는 갈비집이 어딘지 물어볼라 그래요?"

그랬다. 이곳은 그 유명한 체인점 ‘안의 갈비찜’의 본고장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갈비탕집, 갈비집이 즐비하다. 외지 사람들이 오면 이 많은 집 중에 어느 집이 맛이 있는지 궁금해 할만 하다.


안의초등학교 옆에 위치하고 있어 찾기는 아주 쉬웠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8년 전 허삼둘네 집에 들어가려면 조그만 골목길로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다른 집과 달리 양반집 비슷하게 생긴 허삼둘네 집이 있었다. 골목길 돌담길은 너무나 예스러웠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그 조그만 길이 보이질 않았다. 큰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을 찰라 큰길가에 허삼둘네 집이 서있질 않은가! 그렇다. 그 조그만 길은 포장도로로 큰 차 한 대는 족히 들어갈 정도로 바뀐 것이다. 거기다 대문은 공사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너무 새것으로 바뀌어 그 색이나 모양이 조화롭지도 못하다. 더더욱 놀란 것은 본 건물은 앞부분이 새카맣게 그을려져 있는 게 아닌가.

순간 식은땀이 나고 머리가 핑 돌았다. 아스팔트 도로에서 난 그렇게 너무나 많이 변한 허삼둘네 집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나 기분이 그렇던지 들어가 보지도 않고 애써 회피하여 터미널로 가버렸다.

차에 올라 농월정으로 향했다. 사실 농월정도 불에 소실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던 터라 그 터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터미널, 허삼둘네, 농월정 모두 불에 탔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a 농월정 너럭바위들

농월정 너럭바위들 ⓒ 김동희

농월정에 도착하니 자연은 그대로였다. 화림계곡의 물은 멋지게 휘감아 갈 길을 가고 있었고 너럭바위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물을 보내고 있었다. 언제 와 봐도 좋은 곳이다. 흐르는 물은 너무나 시리고 맑다. 조금만 따뜻했어도 양말을 벗고 너럭바위에 앉아 발을 담갔을 것이다.

너럭바위와 물에 비치는 달을 희롱했다 하는 농월정. 그 이름만큼이나 풍류가 가득한 그곳은 사라졌다. 오직 타버린 잿더미들과 그 옆에 서있었던 표지판이 그곳에 정자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a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의 곡선은 참 아름답다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의 곡선은 참 아름답다 ⓒ 김동희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들은 건 꽤 지난 것 같은데 아직 방치되어 있는 듯하다.이 제 그곳은 그냥 물놀이 장소가 될는지도 모른다. 여름에 비라도 많이 오면 잿더미들은 강을 따라 사라질 것이다. 농월정도 그렇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질까 염려스럽다.

a 잿더미만 남은 농월정. 팻말만이 그곳에 정자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잿더미만 남은 농월정. 팻말만이 그곳에 정자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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