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열린 수요집회 때 경희대학교 학생들에게 받은 사탕 목거리를 걸고 있는 황금주 할머니. 이날 할머니의 표정은 유난히 밝았다.이민우
“대통령이 일본한테 사과하고 배상하라고 한 소리 듣고 내가 울었어요. 너무 좋아서 박수를 치고 벌떡 일어나 않아서 노무현 대통령은 그래도 바른 사람이구나 하는 얘길 혼자하면서. 너무 기뻐서 눈물이 저절로 나와서 훌쩍거리고 울었다니까, 혼자서.”
지난 2일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를 마친 뒤,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 쉼터 '우리집'에서 황금주(86) 할머니가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얘기를 꺼내며 한 말이다.
이때 황 할머니의 말투와 표정은 수요집회에서 언제나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에 대해 거침없이 욕하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할머니는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정부에게 “과거의 진실을 규명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해야 한다”고 말한 걸 여러 차례 언급하며 “정말 잘한 일”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살다 보니 이런 대통령도 나오는구나”
“살다 보니 이런 대통령도 우리 나라에 나오는구나. 고마워. 하여튼 고마워요. 노무현 대통령이 2년 됐잖아요. 이런 사람도 있구나, 진작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됐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우리 정부가 나라를 더 이상 일본놈들한테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되요. 일본이 저희 멋대로 우리 나라를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우리가 힘이 없고 그러니까 그런 거예요. 힘을 길러야 돼.”
평소 집에 있을 때 “혹시나 위안부 문제 해결되는 소식이 나올까 싶어 텔레비전 뉴스만 본다”는 황 할머니는 3월 1일엔 똑같은 뉴스를 보고 또 봐도 좋더라고 했다.
“내가 9번, 11번, 6번 다 봤어요, 뉴스를.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 텔레비전 뉴스 계속 봤다니까. 보는데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 쏟아졌어요.”
노 대통령의 ‘일본 사죄 요구’ 발언에 대한 감동으로 기뻐하던 황 할머니는 갑자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각났는지, 앨범을 꺼내 사진까지 보여 주며 불만을 토로했다.
“대통령 되기 전에 김대중씨를 만났어. 내가, 그때 김대중씨가 자기가 대통령 되면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 먼저 꼭 해결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해결하긴 뭘 해결해? 다 흰소리지. 대통령 되더니 말 한마디 없고, 만나지도 못했어요. 만나 주지도 않아 우릴.”
“난 우리 나라 국회의원들, 정치인들 사람으로 안 봐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곧 자연스레 국회와 정치권으로 이어졌다.
“난 우리 나라 국회의원들, 정치인들 사람으로 안 봐요. 지 나라 백성도 못 지켜 주는 것들인데, 뭐. 일본한테 사죄도 못 받아내는 것들이 무슨 정치를 하고 국회의원을 해 무슨 놈의...”
잠시 숨을 고르던 할머니는 “나이가 먹다 보니 수요집회를 다녀오면 무릎이 시리고 아파 걷지도 못하겠고 빈혈 증세가 있어 어지럽다”며 “노인네들은 자꾸 아프고, 먹지 못하다 보니 쉽게 돌아가는데, 올해만도 벌써 네명이 죽었고, 또 많이 아픈 사람이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내가 팔십여섯이에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어떻게 알어. 몰라요. 나보다 어린 사람도 많이 죽었는데, 하루 빨리 해결해야 되는데. 하지만 오늘 같이 눈온 날도 그렇고, 추위가 몰아쳐도 난 일본대사관에 꼭 가. 죽더라도 거기 가서 죽어야지, 너무 억울하잖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역사를 밝히려고 내가 살고 있는 거예요. 오래 살아서 사죄하는 거 보고 그래야 하는데...”
이어 황 할머니는 “일본이 사죄하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하는 것”이라며 “사죄하고 나서 배상하는 건 알아서 지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난 일본 정부 너희가 사죄는 당연히 해야 할 일라고 말하고 다녀요. 사실 난 일본한테 바라는 건 사죄하는 것뿐이거든. 돈 얘기하는 건 구차하잖아. 그리고 내 청춘을 돌려 달라고 하는 거야. 지 놈들이 내 청춘 뺏어갔는데 돌려 줘야지.”
“박물관 만들게 땅 많고 돈 있는 사람이 힘을 보태줬으면”
할머니는 최근 일본에서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을 만든다고 떠들고, 주일대사가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울분을 토했다.